최근 에세이 ‘선생 박주정과 707명의 아이들’(김영사)을 펴낸 박주정 광주 진남중 교장(60)은 8일 전화 인터뷰에서 아이들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박 교장은 1993∼2003년 광주 자신의 집에서 가난과 학교폭력 등으로 학업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과 함께 살았던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아이들과의 첫 만남은 1993년 6월 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2년차 교사였던 그의 집에 학생 8명이 들이닥쳤다. 그가 담임을 맡은 광주의 실업계고 학급의 ‘문제아’들이었다. 술 냄새가 났다. 오밤중에 아이들을 내쫓을 수 없어 받아줬는데, 그렇게 4개월이 흘렀다. 그는 “33㎡ 집에서 세 식구 살기도 빠듯했지만 가족마저 외면한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내쫓을 수 없었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시작한 동거가 아이들을 바꿨다. 그와 함께 산 학생들이 기말고사에서 전교 1∼7등을 차지한 것. 박 교장은 “‘문제아’들인 줄 알았는데, 사실 강한 삶의 의지를 갖고 있었다”고 했다. 꿈이 생긴 아이들은 그해 10월 박 교장의 집을 떠나며 오토바이 절도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던 학생 무리를 데려왔다. “이젠 이놈들 사람 만들어 달라”면서. 박 교장은 결국 4000만 원을 대출받아 학교 근처에 방 다섯 칸짜리 전셋집을 얻었다.
“10년간 그 집을 거쳐 간 학생들이 707명입니다. 제가 선택해 집으로 데려온 아이는 한 명도 없었어요. 아이들 스스로 자기와 닮은 아이들을 데려왔습니다.”
진수(가명)는 그에게 주먹을 휘둘렀던 학생이었다. 어느 날 새벽 곁에 말없이 앉아 아이가 쏟아내는 폭언을 4시간 동안 들어주자 그제야 속내를 털어놨다.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자신을 학대하는 할아버지와 살며 자살충동에 사로잡혔다는 얘기였다. 그는 “붙들고 같이 울어준 것밖에 없는데, 진수는 그날 이후 마음을 다잡고 학업에 열중해 대학을 졸업한 뒤 지금은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며 “아이들의 몸부림엔 ‘살려 달라’는 외침이 담겨 있었다”고 했다.
박 교장은 2004년부터 광주시교육청 장학사로 근무하며 학교 부적응 학생을 위한 단기 위탁교육시설 ‘금란교실’을 개설했고, 2008년엔 대안학교 ‘용연학교’를 설립했다. “제도를 만들어 사회와 함께 아이들을 지키고 싶어서”였다.
약 20년간 장학사로 일하며 교권 침해 현장을 봤던 그는 후배 교사를 향해 이렇게 당부했다. “교권 침해로 괴로운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하지만 어떤 때에도 교사의 책임과 의무는 변하지 않아요. 우리의 한마디가 한 아이에게 평생의 원망이 될 수도, 희망이 될 수도 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