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한국국학진흥원서 학술대회
“한 치의 땅도 한 명의 백성도 폐하의 사유물이 아닙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어찌 독단으로 나라를 주고받는 일을 필부필부가 밭과 농산물을 사고팔 듯 하실 수 있습니까.”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때 척암 김도화(1825∼1912)가 고종에게 올린 ‘합병하지 말 것을 청하는 상소’의 일부다. 당시 85세였던 척암은 대문 앞에 ‘合邦大反對之家(합방대반대지가·합방을 크게 반대하는 집)’라는 현판을 내걸고 스스로 자택 문을 걸어 잠갔다. 이후 일제의 감시를 받다가 2년 뒤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시와 글로 일제의 침략에 맞선 유림이자 문장가였다.
경북 안동시 한국국학진흥원에서 22일 오후 2시 ‘척암 김도화의 학문과 애국활동’을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린다. 한국국학진흥원 한문교육원은 한일합방에 분개한 척암의 시와 서간, 상소문 등이 수록된 문집 총 55권을 국역해 올해 전자책으로 펴냈다. 이번 학술대회는 지난 4년간의 국역 성과물을 토대로 마련했다. 척암은 을미사변(1895년 10월 8일) 이후 1896년 1월 안동의 의병을 규합해 안동의진(安東義陣)을 결성했고 2대 의병장으로 추대됐다. 1905년 을사늑약 직후에는 ‘을사늑약을 당장 폐기하라’는 내용의 상소문 ‘청파오조약소(請破五條約疏)’를 올렸다. 이 상소문에서 척암은 을사오적을 두고 “그들을 용서하지 못할 죄가 셋 있으니 첫째는 나라를 팔아먹은 죄요, 둘째는 외적과 은밀히 통한 죄요, 셋째는 임금을 협박한 죄”라고 썼다. 1983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됐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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