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부. 국어사전에는 ‘같은 편’, 나아가 ‘어떤 경우라도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보충 설명이 달려 있습니다. 제아무리 모든 것을 갖춘 인생도 건전한 교감을 나누는 평생의 벗이 없다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미국 하버드 의대 로버트 월딩어 교수는 동아일보 신년 인터뷰에서 “행복을 결정하는 결정적 요인은 부도, 명예도, 학벌도 아닌 사람들과 따뜻하게 의지할 수 있는 관계”라고 했습니다. 좋은 인간관계는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깐부들 사이에 피어나는 ‘같이의 가치’를 소개합니다.
“이 감독님이 극장용 다큐멘터리를 준비하신다는데 그냥 딴 생각하지 마시고 ‘무릎과 무릎 사이 2’(속편)를 다시 찍으셨으면 좋겠어요. 전 무조건 그 영화 보고 싶습니다.”
상대방의 말문을 닫아버린 ‘사이다’직격이다. 독특한 캐릭터의 후배 영화감독이, 25살 많은 대선배 영화감독에게 핀잔 같은 딴죽을 걸고 있으니 분명 보통 사이가 아닌 게 맞다.
선배는 후배가 얼마나 좋은지 후배의 말을 고개를 끄덕이며 조언으로 듣는다. 대화 하나하나를 안 놓친다. 행여 기발한 후배의 아이디어가 대화 중간에 스치고 지나갈까봐 집중을 한다. 시대를 넘어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계보를 잇는 이장호(78)-봉만대(53)감독이 무릎과 무릎을 대고 앉아 나누는 대화의 품격이다.
최근 서울 인사동에서 이 감독을 만난 봉 감독은 이 감독이 차기작 준비 얘기를 꺼내자마자 거침없이 제동(?)을 걸었다. 이 감독은 그런 봉 감독의 ‘브레이크’가 싫지 않다. 오래 미동조차 없는 ‘이장호’의 존재감을 심하게 흔들어 깨워주는 것만 같아 고맙다.
● 거침없는 ‘봉만대’ 앞에서 솔직해지는 ‘이장호’
체중 조절로 날씬해진 이 감독은 이날도 아침 식사를 거르고 지하철을 타고 걸어서 인사동에 왔다. ‘애착 봉만대’를 만난다는 설렘에 빠른 걸음으로 오다보니 티셔츠가 땀으로 흠뻑 젖었다. 트레이드마크인 휘감기는 웨이브 앞머리를 세월이 밀어냈지만 티셔츠 위로 멜빵을 바지에 걸친 실루엣에서 여전히 현장을 그리워하는 간절함이 묻어난다. 이 감독이 수많은 친구들을 제치고 특별히 깐부로 찍었다는 말에 “저를요? ”라고 놀라 반문하던 봉 감독이 “땀 흘리는 거 설정이시죠?”라고 농담을 던지며 반갑게 이 감독을 맞는다. 이 감독은 봉 감독을 보면 궁금한 게 많아지고, 지나간 에피소드가 생각나고, 또 자기 얘기가 하고 싶어지는 것 같다. 술 얘기부터 어디 가서 말못할 고민까지 털어놓는 솔직한 ‘이장호’가 된다.
-누가 술이 세셔요? “감독님이 끝까지 남아계십니다.”(봉만대)
“나이가 드니까 술이 좀 줄어요. 이제는 소주 2병쯤 마시면 물만 많이 마셔요. 그런데 봉만대를 만나면 ‘봉’이 나를 영웅으로 만들거든. ‘그 연세에 술을 어떻게 잘 드시느냐’고 하면 영웅심리가 발동해서 길게 마셔요. (봉만대 때문에) 기분 좋으면 그날은 술에 당합니다.”(이장호)
“감독님. 제가 최근에 ‘꿀주’라는 걸 알아냈어요. 소주컵에 소주를 적당량 따르고 맥주를 조금 따르면 꿀맛이 나요. 6시간은 버틸 수 있어요.“(봉만대)
“그건 술 같지도 않다.”(이장호)
“감독님. 연세가 있으시잖아요.”(봉만대)
“연세, 연세하니까 연세대도 안나왔는데 기분 나쁘네. 하하.”(이장호)
“감독님 주변 분들 중에 누가 술이 가장 셌어요?”(봉만대)
“젊은 사람들은 그다지 센 사람을 못 봤고, 생각을 해보니 세상을 떠난 강수연이가 진짜 셌어. 예전에 배창호 감독이 강수연하고 술을 대작하다가 만취가 되서 몸집이 작은 수연이가 배 감독을 업어서 집까지 데려다줬다고. 봉 감독, 그런데 신설동에 유명한 설렁탕 집이 있다고 안 했나?”(이장호)
길가다 삼천포로 빠지는 것과 같은 이 감독의 급격한 대화 흐름 변경에도 봉 감독은 아랑곳하지 않고 “요즘 너무 풀만 드시는 거 아녀요? OO 설렁탕인데, OO먹은 꼴뚜기 숙회 집도 유명하다. 대한민국 딱 한 곳 있을만한 스타일이다. 꼴뚜기가 엄청 크다. 그거 드셔보라”고 분위기를 이어준다.
이 감독은 1980년대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스타 제작자다.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던 레전드다. 1974년 감독 데뷔작인 故 신성일 주연의 ‘별들의 고향’부터 대박을 쳤다. 흥행 감독 대열에 합류해 1980년대 변화무쌍한 장르를 넘나들며 대작들을 선보였다. 바람불어 좋은 날(1980), 어둠의 자식들(1981), 바보선언(1983) 등에서 가난과 억압, 불평등 같은 사회 어두운 면을 낱낱이 고발하더니 이보희라는 여배우를 발굴해 무릎과 무릎사이(1984), 어우동(1985) 등의 파격적인 에로티시즘 영화로 새 인물, 더 자극적인 작품을 기대하던 성인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그러더니 만화에 꽂혀 만화가 이현세의 원작 야구 만화를 이장호의 외인구단(1986)으로 내놓아 또 한 번 히트를 쳤다. 야구에 사랑을 엮은 스토리가 지금 보면 진부할 수 있으니 애절한 OST 등을 절묘하게 붙여 관객들의 감성을 관통하고 심금을 울렸다.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별보다 예쁘고 꽃보다 더 고운 나의 친구야. 이 세상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친구야….’ (영화 삽입 정수라 ‘난 너에게’에서) 둘이 만날 때 대화의 공백의 생기면 무척 어색해 보인다. “그런데 원작이 ‘공포의 외인구단’인데 왜 ‘이장호의 외인구단’으로 제목을 정하셨어요?”(봉만대)
“그 당시에 검열이 엄청 셌거든. ‘공포’ 뭐 이런 단어 들어가면 다 잘랐어. ‘공포’가 혐오감을 준다는 거야. 할 수 없이 제목을 바꾼거지. 노래 가사에 ‘늑대 같은 사나이들이 몰려온다’가 있으면 늑대를 문제삼더라고. 늑대가 잘려서 나갔어.”(이장호)
반짝 황금기 바로 직후 그는 긴 내리막길을 한없이 걷고 있는 영화인이 됐다. Y의 체험(1987)부터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1987), 미스 코뿔소 미스터 코란도(1989) 명자 아끼꼬 쏘냐(1992) 천재 선언(1995) 마스터 클래스의 산책(2011) 등이 연이어 흥행에 실패한데다, 자존심을 걸고 제작한 시선(2014)마저 외면당했다. ‘시선’ 개봉 전날에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정말 흥행은 고사하고 길거리에 나앉을 판이었다. ‘별들의 고향’ 크랭크인 40주년에 발표한 영화가 이장호 영화 인생의 ‘흑역사’가 돼 버렸다. 이후 그는 거의 10년 가까이 메가폰을 잡지 않았다.
급격하게 변해가는 세상과 좋고 싫음이 분명한 젊은 관객들이 점점 두려웠을 수도 있다. 그런 자신과 씨름해서 이겨야하는데 샅바 잡는 것부터 의지가 생기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가요? “시선 이후에 영화를 한 번도 안 냈는데 이리 먹고 사는 것도 신기하죠. ‘무릎과 무릎 사이’ ‘어우동’이 성공하고 나서 ‘에로티시즘 영화가 더 고급스러워져야겠다. 색깔을 달리 해야겠다’고 어설프게 변화를 줬다가 ‘와이스토리’가 안 되고 그 이후 만드는 것마다 실패했죠. 은행에 집 저당 잡히고 쫒기다보니까 ‘손을 다 털어야겠구나’ 생각을 한 거야. 나는 시련이 에너지가 돼 정상까지 올라갔는데 거기서 오만해지고 게을러졌어요. 위기는 기회라고 하는데 나한테는 기회가 다시 위기가 되더라고. 그러다 시간이 흘러 이제 관객 세대가 완전히 달라졌는데, 그 관객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보이지 않고, 알아도 따라갈 수가 없어서 저 나름대로 굉장히 오래 위축이 됐죠.”
영화 ‘바보선언’은 별 기대없이, 처음에는 제대로된 시나리오도 없이 찍었는데 오히려 영화계와 관객 반응이 예상외로 좋았던 작품이다.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스토리를 설계하고 장면을 꾸미는 이 감독 스타일이 가장 잘 묻어나는 작품이다.
-‘바보선언’의 속편 격인 ‘천재 선언’이 자존심을 회복시켜줄까. 그간의 실패를 만회 해줄까. 그런 기대를 하지 않으셨나요. (봉 감독도 상당히 궁금해 했다) “김영삼(YS) 정부가 들어서고 검열이라는 벽이 낮아졌고, 표현의 자유도 보장이 됐죠. 그러다보니 정치, 사회 풍자를 세게 해야 하는데 총을 어디다 쏴야할지 타깃이 안 보이는 거야. 안성기가 극중에서 영화감독으로 나오는데 타깃 없이 본인 자아를 통제하니까 영화가 목표, 방향을 잃어버리더라고. 내가 보기에도 구토가 나오는 영화였어요. 그 영화에서 ‘영화감독 이장호’의 끝이 보이지 않았나 생각해요.”
-자존심의 흠집이 많이 났겠어요. “영화를 몇 번 망치니까 후배 감독에게 실망스럽다는 말도 듣고, 민망한 방송 프로그램도 있었죠. 시내에서 사람들에게 무작위로 ‘이장호 감독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는 내용이 있었는데 전부 ‘안티’더라고. ‘왜 이보희만 출연시키냐’ , ‘왜 그렇게 포르노에 가까운 영화만 만드느냐’는 사람들의 즉석 질문에 내가 30초 안에 대답을 해야 했는데 당황스럽더라고. ‘내가 문제가 많구나. 나를 객관적으로 못 봤구나’라는 자책이 컸어요.”
봉 감독 앞에서 솔직하게 자신의 허물을 얘기하는 이 감독은 대종상 감독상을 두 차례(1980, 1982) 수상한 명장 중의 명장이다. 이미 마음속에서 영화인 최고의 명예를 반납하고 지운 걸까. 자기 반성과 성찰이 거침없다. 그런 이 감독이 봉 감독은 짠하다.
● 서로의 에로티시즘 ‘덫’에 걸리다
도쿄 섹스피아(1999)로 감독 데뷔를 한 봉 감독은 ‘성(性)’의 리얼리티를 살린 에로티시즘 영화를 다수 제작해 화제가 됐다. 기발하고 발칙한 에로 영화의 대명사다. 직접 배우로도 자기 작품 등에 출연했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발굴의 입담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만능 엔터테이너다.
2003년 첫 영화 개봉작으로 내놓은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은 현실 남녀의 우발적인 육체적 이끌림과 연애 심리를 리얼하게 다뤄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아티스트 봉만대(2013),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를 패러디한 떡국열차(2015) 등과 같은 코미디 에로와 신데델라(2006), 덫: 치명적인 유혹(2015) 등 공포와 로맨스 스릴러 영화까지 도전을 시도하며 자기만의 길을 확실하게 구축해갔다.
둘이 만난 것도 에로 영화가 연결고리다. 때를 달리해 서로의 에로티시즘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 감독은 ‘시선’의 참패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시절에 우연히 봉 감독의 영화 ‘덫: 치명적인 유혹’을 보고 에로티시즘의 새로운 세계를 접했다. 이 영화는 시나리오 집필을 위해 허름한 산골 민박을 찾은 작가가 우연히 관능적 매력을 가진 소녀를 만나 혼란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는 스토리다. 봉 감독의 영화 중 가장 잘 다듬어졌다고 전문가들이 평가하는 작품이다. 이 감독과 2015년 여름 광주에서 개최된 이장호 영화아카데미에 봉 감독을 초청했다. 첫 만남이다.
“봉만대 냄새가 전혀 나지 않은 본격적인 문제작이었어. 정말 놀랐어.”(이장호)
“저에게는 비운의 작품이에요. 2010년에 만들어졌는데 개봉을 못하고 고생고생하다 어렵게 나왔죠.”(봉만대)
봉 감독도 어린 시절 이 감독의 작품을 보고 굉장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어땠어요?(봉 감독은 1970년생) “ ‘별들의 고향’은 TV로 봤고, 가장 먼저 ‘무릎과 무릎 사이’를 봤죠. 이장호 감독님 작품인줄 은 그 때 전혀 몰랐죠. 영화 감독 이름 올라가는 자막 화면 보질 않잖아요. 그 영화가 개봉했는데 보고 싶어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전라도 광주 금남로 인근에 살았었는데 지방은 동시 상영관이 많았잖아요. 중학교 때인데 영화관 근처에서 어머니가 식당을 하고 계셔서 주전자만 들고‘식당에서 왔다’고 배달하는 척하고 들어가 감독님 영화를 처음 보게 됐죠.”
-야한 장면이 많았을텐데. “충격을 너무 크게 받았어요. 나한일 선배님이 차 안에서 도망가는 이보희 선배님 속옷을 당겼는데 그대로 튀어나가는 장면이 지금도 잊혀지질 않아요. ‘도대체 이 영화를 만든 감독님은 누굴까’라는 생각에 그 이후로 감독님의 영화는 다 봤던 것 같아요.”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서 어린 나이에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어우동을 보는데 마지막 장면에 동굴에서 안성기 선배님이 이보희 선배님 등에 문신을 해주잖아요. 그 때는 무슨 글씨인가 싶었죠. 나중에 감독님께 물어보니 ‘날 비(飛)’자인 거예요. 제가 영화를 시작할 때쯤 감독님 영화를 봤다면 더 깊이 파고들지 않았겠나 싶어요. 지금 저에게 감독님 작품 리메이크 제안이 오면 ‘무릎과 무릎 사이’, ‘어우동’을 도전해보고 싶어요. 감독님한테 ‘무릎과 무릎 사이’ 제목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는데 이렇게 착하게 시작된 영화가 왜 에로 영화로 인기를 얻었을까요? 저는 당대 최고의 영화 제목이라고 생각해요.”
이 감독이 안 낄 수가 없다.
“당시 ‘무릎’이라는 말이 우리 영화 제목에 한 번도 안 쓰였더라고. 그러면서 스토리를 만들려고 하니 ‘무릎’ 단어가 주는 어감이 너무나 신선하고 깨끗한 거야. 미성년자 남자와 여자가 데이트할 때 서로 마주보는 상황에서의 그 순수한 무릎과 무릎을 떠올리고 제목으로 정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난리가 나더라고. 조감독에 얘기를 하니 엄지를 들고 입을 못 다물더라고. 어디 함부로 얘기하고 다니지 말라고 했어. 하하.”(이장호)
“이 얘기를 감독님께 듣고 제가 어떤 생각을 한지 아세요. ‘내 영혼이 그동안 참 더러웠구나’.”(봉만대)
● ‘봉만대’ 에로가 두려운 ‘이장호’… 유치한 ‘이장호’를 보고픈 ‘봉만대’
이 감독은 자기에게 없는 것을 가진 ‘봉만대’의 매력이 범상치 않다고 본다.
“ ‘덫’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이 친구가 예술가적인 섬세함이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봉 감독이 영화를 쉽게 만들지 않더라고. 나처럼 흥행에 미친 에로티시즘에서 벗어나면 아주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후배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로 인해 초라한 내가 비춰질 것 같다는 이 감독이다. ‘봉만대 앞에만 서면’ 또 솔직해지는 이 감독이다.
“봉 감독의 영화는 보기가 겁이 나요. 내가 에로티시즘으로 유명해졌기 때문에, 봉만대에게서 자칫 내 실패의 모습이 발견될까봐 두려운 게 사실입니다.”
봉 감독은 “처음 듣는 얘기”라고 하자 이 감독은 “에로티시즘에는 한계가 분명 있다. 인간이 갖고 있는 것 중에 가장 발견하기 힘들기도 하고…. 육체에서 가장 예민하게 나타나는 게 관능이다. 이것을 대중들에게 보여주면서 어떻게든 의미부여하고 정당화시키는 게 나는 무서워. 거기서 얻을 게 뭐냐? 화제가 되서 돈 버는 것 외에는 없다고 보거든. 그것을 봉만대에게 발견하는 것보다는 봉만대가 갖고 있는 더 깊은 예술성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제가 표방했던 에로티시즘 스토리는 예전 통제된 시대가 아니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나왔기 때문에 시대성은 닮지 않았죠. 그럼에도 잘 준비하겠습니다.”(봉만대)
이 감독은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재평가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려 한다. 방대한 자료를 모으고 검증하는 중이다. 그들의 업적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알리고픈 의지가 무척 강하다. 한쪽으로 치우친 내용이 아니더라도 정치적 논란이 벌어질 게 뻔하다. 그래도 밀어붙일 생각이다. 영화감독으로 마지막 작품이라고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반성의 힘을 충전하는 기간이 길었다고 생각해요. 내리막길을 걷는 훈련을 오래 했고 이제 죽기 전에 한 번쯤 오르막길로 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얻었다고 봐요.”
봉 감독은 이 감독이 자꾸 내리막길로 간다고 규정짓는 자체가 불편하다.
“작품을 안 찍어서 감독님 스스로 내리막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한 번도 감독님 지금 가는 길이 내리막이라고 생각 안했어요. 심리적으로는 내려가고 있지만 감독님 몸은 계속 영화계 안에서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거죠.”
“봉 감독. 나를 돌아보고 느낀 것들을 정직하게 작품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한 거야. 내가 극영화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은 아니고. 역사 공부를 다시 하고 있어.”
“그래도 저는 안했으면 좋겠어요.”
봉 감독은 이 감독의 시도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속물적인 작품이 안 나올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 정치적 공격을 받을까봐 걱정이 크다.
“저의 영화적 친구로만 계셔주면….”
“봉 감독이 걱정하는 건 알겠는데….”
“감독님 주변 친구들은 반대 안하던가요?”
“없는데….”
“그러면 친구 아니죠. 기독교인인 감독님의 정치를 뺀 기독교 영화라면 보고 싶습니다. 영화를 해왔던 사람으로 본 기독교, 3자의 시선에서 본 예수.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흘러가는 정치사, 그리고 그 시대에 감독님이 할 수 있었던 영화… 그런 것을 다른 사람이 객관화하는 게 좋지 않나 싶어요. 이 시점에서 감독님은 진짜 친구 찾기 하셔야 돼요.”
“소신을 정직하게 밝히느냐, 아니면 눈치를 보면서 소신을 숨겨야할지, 이 둘의 결정이겠다 싶네.”
‘갑분싸’ 대화는 절대 서로를 존중하는 선에서 설득과 설득 공방으로 진하게 이어진다.
“감독님의 얘기를 더 객관화할 필요가 있다. 감독님 의식을 영화에 그대로 투영하는 건 무리가 있다”는 봉 감독의 제안에 “그동안 장르에 대한 도전이 많았다. 내 식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다큐멘터리도 역시 정답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이 감독이 받아친다.
자신을 늘 ‘B급 감독’이라고 말하는 봉 감독은 아예 자신과 비슷한 캐릭터의 ‘이장호’가 돼 “유치한 영화를 만들어보시라”는 파격 주문을 해보면서 생각을 바꾸려했다. 그러자 이 감독은 “원래 내가 연출을 즉흥적으로 한다. 시나리오를 앉아서 쓴 적이 없다. 현장에 나가야 머리 회전이 된다. 그래서 내 연출은 ‘천수답’(지하수 시설이 없어 물을 빗물 등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형태의 논, ) 연출”이라며 잠시 다큐멘터리 제작 고집을 잠시 접어둔다. 진심으로 조언을 해주는 후배에 대한 배려다.
“반대도 해주는 깐부하고 같이 있는 지금이 좋네요.”(이장호)
● 어둠의 봉? 나는 ‘빛나는 봉’
이 감독은 ‘살인의 추억’, ‘괴물’, ‘기생충’을 제작한 세계적인 명장 봉준호 감독과도 가깝다. 봉준호 감독과 봉만대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서 흔치 않은 ‘양봉’ ‘쌍봉’으로 불린다. 봉만대 감독 본인은 ‘거장’ 봉준호 감독과 비교되는 게 영광스러워 ‘어둠의 봉준호’로 불리기를 자처하고 유쾌해 한다.
“봉은 엔터테이너적인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 리얼리즘을 잘 살리는 영화감독이다. 인간적이고, 나와는 다른 세계가 있고.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작품이 있으면 늘 같이 작업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다”는 이 감독에게 봉 감독은 정말 B급일까. 봉준호 감독과 음양의 조화가 잘 맞는, 내가 인정하는 후배?
-봉준호 감독과 제대로 견줄만한 ‘어둠의 봉’인가요? “봉 감독이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를 흉내내 ‘떡꾹열차’를 내놓을 때 ‘저 친구가 문제의 감독이 될 수 있다’고 봉준호한테 얘기한 적이 있어요. ‘너 기분 안 나쁘냐’고도 했죠. 그런데 봉준호가 아주 유쾌하게 봉만대를 치켜세우더라고. (어둠의 봉은 아니죠?) 사회 풍자 있잖아. 같은 봉인데 풍자는 봉만대야.”
‘어둠의 봉’ 당사자는 ‘이장호’에게 어떤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고 볼까. “감독님 주변에도 심각한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저는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면 재밌어야 되거든요. 굳이 재미없는 사람들 만나면 곤란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감독님에게 저는 ‘해방구’가 아닐까 싶어요. 제가 진지한 작품도 만들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놀이공원에서 티켓 끊어 노는 건 잘 맞지 않아요. 감독님께는 그냥 놀이터에서 막 노는 후배죠.”
8년째 인연. 이 감독에게는 확실히 ‘밝은 봉’이다.
“봉만대 영화제를 하면 재밌을 것 같네. 생활비 마련하는데 도움이 되겠는데.”(이장호)
이 감독의 눈에는 보면 볼수록 기발한 아이디어와 재능이 아깝다.
봉 감독은 “2003년 극장에 ‘맛있는 섹스…’를 내놓고 20년이 됐다. 30주년돼서 하면 영화제하면 안 될까요. 감독님? 저도 깐느(2019년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으로 깐느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다녀와야 한다”며 이 감독을 웃게 한다.
80세 들어서는 줄에 젊은 ‘봉만대’와 나누는 ‘아무말 에로 대잔치’가 마치 복받은 것 같다. 그래서 ‘봉’을 만날 때가 기다려진다. 갈수록 영화를 보는 시각도 닮아가는 것 같다 좋다는 그다. 봉 감독이 정의하는 에로티시즘 세계관은 들어도 들어도 전라도말로 기똥차다.
“에로 영화만큼 어려운 게 없어요. 스트레스도 받고 그래서 재밌어요. 야한 장면이 나오고 다음 얘기를 끌고 가는 게 쉽지 않아요. 여기서 템포를 잃으면 느슨해지죠. 이야기 속에 부합하는 에로가 끊임없이 있어야 돼요.”(봉만대)
“에로 영화의 가장 큰 적은 정사신이야.”(이장호)
“예전에 이 감독님께 물어봤어요. ‘에로 영화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꼬리표처럼 붙어 있는데 기분 나쁘지 않냐고요. 그런데 감독님이 ‘얼마나 좋냐. 꼬리표라도 있는 게’라고 웃어 넘기시더라고요. 저는 무엇보다 감독님이 뭔가의 가능성에 대해서 ‘될 거다’라고 해주시는 ‘화이팅’이 좋습니다.”(봉만대)
이 감독은 봉 감독과의 소통으로 오래 답을 내리지 못한 영화적 고민도 해결한다. ‘영화적 배설’의 기쁨을 솔찬히 느낀다.
“한참 에로 영화를 찍을 때 어디서 보고 얻은 고민인데, ‘성적인 영화가 가장 반체제 영화’일까라는 물음이야. 해방 기분이 있는 건 분명하고, 권위에 도전하는 것도 틀림없는데 난해하더라고. 체제를 정치라고 보면 성적인 것이 어떻게 반체제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아직도 파악이 안 돼.”(이장호)
“그 단면적인 면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서 봤어요. 봉 감독이 유일하게 연출이 약한 부분이 섹스신이거든요. 그런데 기생충에서 부부가 소파에 누워 오랜만에 행위를 하는 장면이 나와요. 그들이 보고 있는 시야가 창문 너머에요. 거기는 아들이 있는 인디언 캠프잖아요. 아이 수준에서 보는 행위는 반체제 느낌을 주죠. 기교도 아니고 테크닉도 없고 행위에 유희가 없어요. 던지는 메시지는 하나에요. 그런데 그건 제가 못 찍는 것 중에 하나에요.”(봉만대)
“아, 그건 내가 생각 못했던 거다. 역시 에로 도사의 눈이 있네.”(이장호)
● 우리 무릎과 무릎에는 사이가 없다
“봉만대는 사람을 참 솔직하게 만들어. 바보 선언을 하게 된단 말이야.”
내면을 비워내며 후배와 가까워진 시간이 신기한 이 감독. 본인 스스로 내려간다는 인생 길이 안쓰러워 그 길을 지면과 평행하게 놔주고 싶은 봉 감독. 인연은 마지막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길 것 같다. 봉 감독은 “감독님이 갖고 있는 내공이나 좋음들이 많을 수 있다. 감독님은 모르는데 세월을 살아오면서 남들이 존경하는 감독님만의 교훈도 분명히 있을 거다”라며 이 감독의 영화 인생 후반부 꽃길이 열리는 희망을 걸어본다.
그래도 냉정하다.
“다큐멘터리 시나리오를 쓰고는 계신거죠? 하지만 여전히 저는 감독님의 ‘무릎과 무릎 사이 2’를 보고 싶습니다.”
“봉만대가 이제 나의 ‘봉’으로 보이네. 아까 다큐멘터리에 대해서 많은 조언을 해줬지? 그거 아이디어된다. 봉 감독 같은 사람이 시나리오도 만져야 돼. 봉 감독! 조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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