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그리움이 미움보다 세더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26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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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최은미 지음/320쪽·1만6800원·창비

“새경프라자 3층 방문자는 유증상 시 가까운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검사 바랍니다.”

2020년 5월 새경프라자 3층 ‘나리공방’을 방문했던 이들은 이런 문자를 받았다. 나리공방의 단골손님인 수미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리자 정부 당국이 추가 전파를 막기 위해 연락을 돌린 것이다.

불똥은 곧 나리공방의 주인인 20대 여성 나리에게 튀었다. 손님들은 나리공방에서 운영하는 비누와 양초 만들기 수업을 더 이상 찾지 않았다. 그 대신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 사례라며 언론이 취재를 요청해 온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나리는 친구처럼 지내던 수미를 미워하게 된다. 두 사람은 이렇게 멀어지는 걸까.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하던 2020년을 배경으로 나리와 수미의 관계를 그린 장편소설이다. 사실 나리와 수미의 관계가 틀어진 건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니다. 수미는 코로나19에 확진되기 이틀 전 딸 서하 앞에서 집 안의 물건을 부쉈다. 이를 보고 깜짝 놀란 나리는 서하를 나리공방으로 데려왔다. 나리는 시간이 지나서 서하를 돌려보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은 어색해진 상태였다.

나리의 마음은 계속 오락가락한다. 오랜 친구를 다시 보고 싶다가도, 의도한 건 아니지만 수미의 방문으로 경제적 타격을 입었기에 그가 미워진다. 커피 한 잔 함께 마시면 풀릴 일일지도 모른다. 수미가 코로나19로 격리된 탓에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 나리공방에서 마주한 두 사람은 서로를 미워하는 마음을 접기로 한다. 사소한 다툼도, 갈등도 서로를 그리워하던 마음을 뛰어넘지는 못했으니까. 외로움과 사투하느니 다투면서도 함께하는 관계가 두 사람에게 행복을 선사하니까.

코로나19는 우리의 마음에 슬픔과 함께 미움을 남겼다. 다만 이 재앙 덕분에 깨달은 것도 있다.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 혼자보단 함께 살아가는 게 낫다는 것 말이다. 이 단순한 진리를 섬세한 심리 묘사와 따뜻한 문체로 은은하게 전한다.

#그리움#미움#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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