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20세기에 일본과 14년간에 걸쳐 전쟁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수백만 명이 죽어 나갔으며 자국의 수도 한복판(당시 중화민국의 수도는 난징이었다)에서 일본군에 의한 학살을 경험한 나라다. … 그러나 그들은 천황을 굳이 일왕이라고 부르지 않으며, 욱일기를 매단 자위대 함대 입항을 취소하지도 않는다. … 오히려 일본을 연구하고 또 관찰한다. 저 큰 나라가 일본에 대한 경계심을 조금도 늦추지 않고 있다. 그들이 신친일파라거나 토착왜구라서 그런 게 아니다. 두 번 다시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토착왜구’ 같은 단어를 정치권에서 쓰는 걸 보면 거부감이 들 때가 많다. 실력은 없으면서 반일 감정에 편승해 한몫 보려는 얄팍한 속셈이 빤하기 때문이다. 조선이 반일 감정이 모자라서 망했을까. 저자는 조선에 진짜 없었던 것은 “메이지유신 이후 40여 년간 일본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게 우리 운명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파악한 사람이었다”고 지적한다.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로 일본 근대사를 오래 연구해 온 저자의 칼럼을 묶은 책이다. 저자는 묻는다. ‘무엇을 위한 반일인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1941년 12월)을 넉 달 앞두고 출간한 ‘일본의 가면을 벗긴다’를 읽고 저자는 감탄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드넓은 국제정치적 시야다. … 일본의 대륙 팽창이란 게 미국에 장차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한국 독립이란 게 어떤 인류사적 의미가 있는지를 웅장한 어조로 갈파한다.”
이승만은 그저 일본이라서 증오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일본이 자유와 민주, 인권과 평화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에 비판했던 것이었다. 저자는 강조한다. “과거 일본제국주의의 행위에 대해 우리는 끊임없이 비판해야 한다. 다만 그것의 목적은 한국과 일본이 자유와 민주, 법치와 평화의 세계로 가기 위한 것이지 않으면 안 된다. … 자기 비즈니스를 위한, 혹은 정치적 이득을 위한 일본 비판은 이제 거둘 때가 되었다. … 일본과, 자유 민주 법치 평화 인권 복지의 경쟁을 벌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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