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빈국 중 하나이지만 스스로는 가장 행복하다고 믿는 나라, 탄소배출량 제로인 탄소중립을 넘어서서 배출보다 흡수가 많은 ‘탄소흡수국’을 실현한 나라. 인도와 중국 사이에 낀 히말라야의 소왕국 부탄을 가리키는 말이다. 부탄 사람들은 한국인처럼 몽골반점을 가지고 있고, 남자가 혼인하면 여자의 집으로 들어가 사는 고구려식 데릴사위제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왠지 낯설지 않은 기시감(旣視感)까지 들게 하는 이 신비한 나라로의 여행은 그 자체로 환상적인 탐험이다.
부탄은 입국에서부터 심장이 쫄깃해지는 경험을 하게 한다. 해발 2241m 협곡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파로 국제공항은 시계비행으로만 짧은 활주로에 착륙해야 한다. 비행기가 산에 부딪혀 추락할 것만 같은 아찔한 곡예의 순간을 거쳐 활주로에 바퀴가 닿아서야 비로소 멈췄던 숨이 쉬어질 정도다.
한반도 5분의 1 면적(3만8816㎢)에 인구 약 75만 명의 작은 왕국인 부탄은 눈이 닿는 곳마다 무성한 녹색 계곡, 구름과 눈으로 살짝 가려진 우뚝한 산봉우리, 히말라야 설산(雪山)에서 발원한 투명하고도 깨끗한 강이 펼쳐진다.
‘천둥 용의 땅’이라고 불리는 부탄은 불교 문화가 융성한 나라다. ‘종(Dzong)’이라고 불리는 전통 사원이 문화유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종은 대체로 언덕 위 혹은 산비탈에 요새처럼 조성돼 있는 형태다. 종이 외세의 침략에 맞서는 군사 및 행정 기능까지 수행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는 신정일치제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부탄 여행은 각 지역에 산재한 종으로의 ‘탐험’이 핵심이다. 독특한 지형적 특색을 갖춘 종은 성스러운 에너지가 감도는 명당일 뿐만 아니라 종과 관련돼 전해지는 기이한 전설이나 일화는 부탄의 신비감을 더해 준다.
● 왕이 진심으로 존경받는 나라
파로 공항에서 파로강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를 타고 1시간 정도 달리면 부탄의 수도 팀푸에 도착한다. 우리나라의 소도시 규모인 팀푸에서부터 부탄의 대표적인 종으로의 여정을 시작했다.
먼저 찾은 곳이 높이 51.5m의 황금 불상인 도르덴마상이다. 팀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 정상에 세워진 이 불상은 세계 최대 높이를 자랑한다.
도르덴마상 내부로 들어서면 12만5000기에 달하는 소규모 불상들이 사방으로 빽빽이 들어서서 장관을 이룬다. 신앙심 깊은 부탄 사람들이 불상을 가져와 이곳에 모셔 놓은 것이라고 한다. 불상 터의 기운을 살펴보니 나무랄 데 없는 명당이다. 풍수적으로 권력과 부의 에너지가 넘쳐나는 곳이다. 부탄인 현지 가이드는 “원래 이 땅은 부탄의 장관 등 고급 관리들이 살던 관사 터였다”고 설명했다.
팀푸 시내로 내려와 부탄의 3대 국왕 지그메 도르지 왕추크(재위 1952∼1972년)를 기리는 국립추모탑을 찾았다. 불경이 새겨진 마니차를 돌리거나, 추모탑을 돌면서 부처상 앞에서 절을 올리는 부탄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추모탑에서는 부탄 사람들이 왜 진정으로 국왕을 존경하고 사랑하는지를 알 수 있다. 절대왕정국가였던 부탄에서 제3대 국왕은 진보적인 정책을 펼쳤다.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기 위해 국회(국민의회)를 설립했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땅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줬다. 왕위를 이어받은 4대 국왕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재위 1972∼2006년)도 아버지의 노선을 따랐다. 4대 국왕은 또 “GNP(국민총생산)보다 GNH(국민총행복)가 더 중요하다”며 정부 기구로 ‘국민행복청’을 설치했다. 그는 2년마다 국민총행복지수를 조사 발표하며 민생을 구체적으로 살폈다. 현재 5대 국왕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는 한발 더 나아가 2008년 절대군주제를 포기하고 입헌군주제로 전환했다. 왕이 스스로 결단해 권좌에서 내려온 것은 세계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 두물머리 명당의 푸나카 종
수도 팀푸를 중심으로 동쪽 권역으로는 푸나카 종과 치미라캉 종이 중요 포인트다. 먼저 1637년에 건설된 푸나카 종은 부탄에서 가장 웅장하고,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요새 중 하나다. 이 종은 푸나카가 부탄의 수도였던 1955년까지 부탄 행정 및 종교의 중심 기능을 수행했다.
강 위로 놓인 사다리 문을 통해서만 진입할 수 있는 푸나카 종은 모추강(어머니강)과 포추강(아버지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천연 요새이기도 하다. 종 아래로 물이 흐르기 때문에 실제 물 위에 떠 있는 형국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양수리(두물머리)처럼 두 강이 합수되는 명당 터에 있는 이곳은 풍수적으로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형상)’이라고 일컬을 만하다. 푸나카 종은 새하얀 외벽의 불그스름한 건물이 옥색 물빛과 어우러져 마치 백색의 아름다운 연꽃처럼 보인다.
이 사원은 부탄의 초대 국왕 대관식이 열린 곳이자, 국회가 최초로 개원된 곳이기도 하다. 이런 정치적 상징성 때문에 2011년 현재의 5대 국왕이 평민 출신의 여성과 결혼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 사원은 행복 궁전으로도 불린다.
푸나카 종에서 강을 따라 남쪽으로 6.5km 떨어진 곳의 치미라캉 종은 ‘득자(得子·자식을 얻음)’ 기도처로 유명한 곳이다. 사원 입구 쪽 마을에는 집집마다 기묘한 형상의 남근(男根)이 그려져 있는데, 역시 자식 생산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 사원은 15세기 때 고승인 람 둑파퀸리(1455∼1570)의 기이한 사연으로도 유명하다. ‘히말라야의 걸승’으로 기행을 일삼았던 그는 5000명의 여자와 섹스를 통한 탄트라 수행을 해왔고, 입적할 때는 자신의 남근을 잘라 나무에 봉인했다고 한다. 아이를 갖기를 원하는 많은 부부들이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소원을 이룬다고 한다.
● 절벽에 세워진 호랑이 둥지 수도원
팀푸 서쪽 권역으로는 탁상 사원이 있다. 해발 3120m 절벽 한가운데에 위태롭게 붙어 있는 탁상 사원은 부탄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명승지다. 이 사원은 ‘호랑이 둥지’라고 불린다. 8세기경 부탄에 불교를 전파한 티베트 불교의 전설적인 인물인 파드마 삼바바가 호랑이를 타고 내려와 사원을 건립했다는 얘기에 따른 것이다.
호랑이 둥지는 바라만 보아도 신성한 기운이 절로 배어나는 듯하다. 파드마 삼바바가 이곳에 머물며 명상을 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의 발자국이 아직도 동굴 중 하나에 남아 있다고 한다.
이곳은 1998년 화재로 소실됐지만 복원해 지금의 모습이 됐다. 옛 사람들은 영험한 기운이 밴 장소를 호랑이, 용, 코끼리 등 동물을 끌어들여 상징적으로 묘사했는데, 이곳 역시 호랑이 둥지 터라고 해서 명당임을 입증하고 있다. 사실 절벽 위에 새 둥지처럼 지어진 탁상 사원은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건설했는지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외에도 ‘보석 위의 요새’라는 뜻의 파로 종, 불교 사원이자 정부청사 역할을 하고 있는 타시초 종, 요괴를 바위 밑에 가두고 세웠다는 심토카 종 등도 들러 볼 만하다.
부탄으로 가려면
교통 한국에서 부탄으로 가는 직항 편은 없다. 태국 방콕이나 인도 델리, 네팔 카트만두를 경유해야 한다. 부탄 국영항공사 드루크 에어(Druk Air)가 취항하고 있다.
부대 조건 부탄에서는 배낭여행 등 개별 여행을 금지하고 있다. 여행객은 반드시 부탄인 가이드와 동행해야 한다는 조건이 따라붙는다. 게다가 ‘지속가능한 발전 비용(SDF)’ 명목으로 하루 1인당 200달러씩 여행 세금을 내야 한다. 부탄 당국은 SDF로 확보한 자금은 자연, 문화 전통 보호와 관광 인프라 구축 사업에 사용된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부탄 여행은 이런 부대 조건을 감안한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 투어로 가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 현재 인도·부탄·네팔 전문 여행사인 ‘다이너스티 코리아’가 부탄과 인도 여행을 결합한 패키지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부탄 여행 팁 부탄 사람들은 부탄어인 ‘종카어’와 영어를 함께 사용하고 있어서 대부분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또 부탄의 사원으로 들어가려면깃이 있는 티셔츠와 긴 바지가 필요하므로 미리 준비해야 한다. 이 외에 부탄에 관한 더 자세한 정보는 부탄 외교부가 공식 승인한 한국부탄우호협회(회장 김민경) 홈페이지를 이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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