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서 자전 에세이 ‘사랑의 요리사’ 펴낸 김하종 신부
1998년 ‘안나의 집’ 열고 빈민 돕기, 매일 700명 넘게 무료 배식 봉사
“자원봉사자 없었다면 운영 못해… 이탈리아에 한국 더 알리고 싶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때도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분들이 줄을 이었어요. 한국은 참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고국 이탈리아에서 최근 자전 에세이 ‘사랑의 요리사(CHEF PER AMORE)’를 출간한 김하종 신부(66·이탈리아 이름 빈첸조 보르도)가 “이탈리아에 한국과 한국인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어 책을 냈다”며 이렇게 말했다. 경기 성남시 ‘안나의 집’에서 22일 김 신부를 만났다. 1987년 사제 서품을 받은 김 신부는 1990년 한국에 왔다. 1998년 노숙인과 어려운 청소년들을 돕는 ‘안나의 집’을 열고 지금까지 빈민 사목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인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어 고국에서 책을 내셨다고요.
“2021년 한국에서 ‘사랑이 밥 먹여준다’라는 책을 냈어요. 그때 코로나19 때문에 후원이 많이 줄었거든요. 그 책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해 이번에 낸 거죠. 한국에 30년 넘게 살면서 한국인들의 참 아름다운 모습을 많이 봤어요. 이를 알리고 싶었죠.”
―한국인의 어떤 모습이 그렇습니까.
“한둘이 아니지만…. 안나의 집에서 노숙인들을 위해 무료 배식을 하고 있어요. 하루에 700명 넘게 오기 때문에 자원봉사자가 없으면 배식이 불가능하죠.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감염 우려가 컸잖아요. 자원봉사자들이 안 오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제 걱정이 기우였더라고요. 얼마나 많은 분이 도와주러 오셨는지….”
―코로나19 감염 우려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에서 배식 중단을 요구했다고요.
“그랬죠. 그런데 여기 오는 분들은 거의 대부분 하루 한 끼밖에 못 먹는 분들이에요. 이것마저 못 먹게 되면 병에 걸려도 나을 수가 없잖아요. 오히려 그럴 때일수록 잘 먹어서 힘과 면역력을 길러야죠. 여기마저 문을 닫으면 그분들은 어떻게 하나요. 도시락 한 개가 그분들에게는 하루 목숨인데…. 대신 배식을 도시락으로 바꾸고 방역도 철저하게 했어요. 그 덕분인지 다행히 확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어요. 지금도 모두 마스크를 쓰고 일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고국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은 안 하십니까.
“제 이름 ‘하종’은 ‘하느님의 종’이란 뜻이에요. 한국에 봉사하러 왔고, 봉사자로서 끝까지 살고 싶어서 그렇게 지었죠. 한국인으로 귀화도 했고, 장기와 시신 기증 서약까지 했으니까요. 제가 여기서 할 일이 없고, 또 봉사할 수 없는 상태라면 돌아가겠죠. 하지만 할 일이 남아 있고, 또 할 수 있다면 갈 생각은 없어요.”
―왜 한국을 선택하신 겁니까.
“제가 이탈리아에 있을 때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했어요. 아시아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러면서 한국을 알게 됐고 좋아하게 됐죠. 또 공부하면서 김대건 신부님에 대해 알게 됐는데 정말 매력적인 분이셨어요. 제 성도 김대건 신부님에서 따온 거예요. 중국은 종교 활동을 하기가 어렵고, 일본은 아예 관심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사제 서품을 받고 1년 정도 세네갈에서 봉사한 뒤 바로 한국으로 왔죠.”
―하루 700명이 넘는 노숙인들에게 무료 배식을 하는데 힘들지 않으십니까.
“노숙인, 독거노인, 어려운 청소년들은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라 부활한 예수님의 아픈 상처라고 생각해요. 부활한 예수님의 아픈 상처를 모시는 것은 제게는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여담입니다만,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이탈리아 대표팀을 위한 미사를 집전하셨더군요. 16강에서 한국이 이겼는데 혹시 어느 팀을 응원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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