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학살은 ‘식민지 제노사이드’… 日 국가책임 존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31일 03시 00분


‘간토학살 100년’ 국제학술심포지엄
한중일 학자 20명 발표-토론 참여
韓 “국가주도로 특정집단 고의살해… 국제법상 금지된 대량학살 해당”
中 “당시 재일 中人 800여명도 학살”

일본 경찰과 자경단원이 학살당한 조선인의 시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본 군경이 자경단을 조직하고 지원한 정황이 확인된다”고 밝혔다. 동아일보DB
일본 경찰과 자경단원이 학살당한 조선인의 시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본 군경이 자경단을 조직하고 지원한 정황이 확인된다”고 밝혔다. 동아일보DB
“국가 주도로 자경단이 조직돼 무기를 공급하고, 추후 살인자를 처벌하지 않는 등 일본 군경과 자경단이 연계해 활동했습니다.”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간토대지진 조선인·중국인 학살 100년’을 주제로 30일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열린 국제 학술 심포지엄에서 이같이 분석했다. 그는 1923년 9월 일본에서 간토대지진 직후 벌어진 학살 사건에 대해 “제노사이드(대량 학살)에 관여한 일본 정부의 국가 책임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 “간토학살은 국제법상 ‘제노사이드’”
독립기념관과 동북아역사재단,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이날 심포지엄의 부제는 ‘진실, 책임, 기억’이었다. 1923년 9월 일본 군경과 자경단에 의해 자행된 학살의 진실을 역사적으로 기억하고, 나아가 일본의 국가적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학자 20명이 발표자 및 토론자로 참여했다.

이 교수는 이날 발표한 ‘제노사이드로서의 학살과 국제법’에서 국제법의 ‘제노사이드 금지 원칙’을 위반한 책임을 일본 정부에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이 1948년 유엔총회가 채택한 ‘집단살해죄의 방치와 처벌에 관한 협약’의 제노사이드 요건을 갖췄다고 봤다. 일본인과 구별되는 특정 집단을 표적으로 삼아 고의로 살해한 것 등이 요건에 부합한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학살 사건을 ‘식민지 제노사이드’로 명명했다.

● “중국인 학살, 日정부 배척 정책 탓”
1923년 9월 간토대지진 직후 일본 군경과 자경단 등에 의해 살해된 뒤 거리에 버려진 시신들. 학계에 따르면 당시 학살당한 조선인은 최소 6600여 명, 중국인 학살 희생자는 800여 명에 이른다. 동아일보DB
1923년 9월 간토대지진 직후 일본 군경과 자경단 등에 의해 살해된 뒤 거리에 버려진 시신들. 학계에 따르면 당시 학살당한 조선인은 최소 6600여 명, 중국인 학살 희생자는 800여 명에 이른다. 동아일보DB

정러징(鄭樂靜) 중국 원저우대 교수는 발표문 ‘학살·수용·송환: 간토대지진 중국인 학살 사건을 돌이켜보며’에서 당시 자행된 재일 중국인 학살 사건을 조명했다. 일본 외무성 외교 사료관이 소장한 ‘외무성 기록’과 대만 중앙연구원 근대사연구소 문서관이 소장한 ‘일본진재참살화교안’ 등을 분석해 도쿄와 가나가와현 중국인 거주지 등에서 중국인 800여 명이 학살당했음을 밝힌 것.

정 교수는 학살 배경에 일본 정부의 중국인 노동자 배척 정책이 있었다고 밝혔다. 일본은 1918년 중국인 노동자의 입국을 막기 위해 ‘외국인 입국에 관한 사항’ 등 법령을 공표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일본 내 노동력이 극도로 부족해지자 중국인 노동자가 유입됐으나 1922년 군축 이후 대규모 실업이 발생하면서 재일 중국인에 대한 혐오가 팽배했다는 분석이다. 대지진 직전 일본 각지에서 일본인과 중국인 노동자 간 충돌 사건이 다수 벌어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 교수는 “재일 중국인 학살 사건은 근대 일본 정부가 시행한 중국인 노동자 배척 정책의 산물”이라고 했다.

● “우리 안의 혐오 들여다봐야”
‘우리 안의 혐오’를 성찰한 발표도 눈길을 끈다. 이소훈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발표문 ‘제노포비아와 간토대지진 때의 학살’에서 인종주의에 기반한 혐오가 학살의 뿌리임을 밝혔다. 이어 2018년 예멘 난민 500여 명이 제주에 입국했을 때 대규모 반대 집회가 열렸던 한국의 현실을 조명했다. 특정 집단을 향한 혐오란 점에서 한국 사회에도 인종주의가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식민 지배와 인종주의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한 집단적 기억이 있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또 다른 대상을 인종주의로 대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식민지 제노사이드#간토학살#간토학살 100년#국제학술심포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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