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인 8월25일부터 27일 서해안의 노을 명소인 전북 부안 변산해수욕장에서 제1회 무빙팝업시네마가 열렸다.
붉은 태양이 바닷 속으로 빠져들면서 온 세상을 벌겋게 물들이는 시점에서 영화 축제가 개막했다. 초대된 영화감독과 작가, 배우와 내빈들은 레드카펫 대신 오렌지색 팔레트 위를 걸으며 입장했다. 배우나 감독이 해변의 모래사장에 뒤뚱뒤뚱 걸을 수는 없지 않는가. 그래서 주최측은 모래 밭 위에 팔레트를 깔아 한껏 분위기를 냈다.
개막식이 끝나갈 무렵. 하늘에서 패러글라이딩 쇼가 펼쳐졌다. 변산해수욕장 끝에서 출발한 모터 패러글라이딩 참가자들이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바다와 영화 축제장, 무대 위 스크린 주변으로 날아올랐다. 노을 속을 이리저리 비행하는 낙하산은 인생에서 쉽게 만나기 힘든 낭만의 궁극적 순간이었다.
무빙팝업시네마의 개막작은 이준익 감독이 연출하고 박정민, 김고은이 주연한 영화 ‘변산’. 청춘의 고민과 낭만을 담은 영화다. 무엇보다 변산해수욕장에서 영화 변산을 관람하는 것은 특별했다.
변산은 서해안 3대 해수욕장 중 하나로 넓은 갯벌과 서해로 떨어지는 낙조로 유명하다. 변산이 가진 특별함은 그 이름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바다인데 지명에 ‘산’이 들어있다. 변산(邊山)은 ‘변방에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서해안의 파도가 부딪치는 기암절벽의 봉우리 끄트머리에 바다가 있다. 이 산들이 내륙으로는 내변산, 바닷가로는 외변산으로 이어진다. 8월의 끝자락, 변산에선 노랑색 상사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앞바다에 있는 위도에서는 순백의 상사화가 만개한다.
영화 속 노을 장면과 변산해수욕장에서 들리는 실제 파도소리가 서로 묘하게 교차했다. 4D영화관이든, 아이맥스 영화관이든 어떤 첨단시스템의 영화관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공감각적인 영화감상상법이 펼쳐진 셈이다. 게다가 영화가 끝난 후 ‘변산’의 이준익 감독과 김세겸 작가가 무대에 올라 관객까지 대화를 나눴으니 말이다.
“영화 일을 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뭔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겪지 않아도 될 마음의 고통이나 사람들에게 서로 상처입고, 상처주는 일을 감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배우 김고은 씨가 여러차례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촬영하면서 치유의 경험을 했다는 것은, 배우가 작품 속의 이야기에 몰입하면서 동일시한 감정도 있을 수 있겠지만. 변산이라는 지역의 풍토도 큰 영향을 미쳤을 거라 생각합니다. 바다가 있고, 노을이 있고, 산이 있고, 또 구수한 사투리가 있고… 그것을 배우가 몸으로, 세포로 동화시켜서 구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자기안에 카타르시스, 자기 정화가 일어난 현상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김고은 배우에게 직접 물어본 것은 아니지만, 그런 마음이었을 거라 추측합니다.” (이준익 영화감독)
부안 무빙팝업시네마는 개막작 ‘변산’을 시작으로 26일 ‘엽기적인 그녀’의 곽재용 감독과 주연배우 차태현, ‘태양은 없다’의 김성수 감독, 27일 ‘델타 보이즈’의 주연배우 백승환과 김충길, ‘젊은 남자’의 배창호 감독이 영화 상영 후 무대에 올라 관객과 이야기를 나눴다.
해변의 한쪽에서는 도예가 이능호 작가의 설치작품 ‘집’ 30점이 전시됐다. 바닷가에 늘어선 커다란 몽돌 모양의 도예작품은 노을지는 해변의 풍경과 잘 어울렸다. 호암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미술작품을 변산의 해변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관객들에겐 좋은 경험이었다.
노을이 지고, 파도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의자에 앉기도 하고, 돗자리를 펴놓고 편안한 자세로 영화를 감상했다. 맥주를 기울이는 관객도 있고, 미리 싸온 간식을 먹으며 영화를 보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팝업시네마는 도시에서 열리는 세계 유수의 영화제와 달리 자연의 절경 속을 찾아가 영화를 상영하는 ‘움직이는 영화제’를 표방한 영화 축제다. 전혜정 무빙팝업시네마 집행위원장은 “파도소리가 들리는 해변은 물론 낙엽이 지는 수목원, 별이 쏟아지는 캠핑장 같은 곳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영화를 볼 수 있다면 무빙팝업시네마는 어디로든 달려갈 예정”이라며 “OTT로 영화를 보는 것이 대세인 이 시대에 영화를 감상하는 새로운 차원의 관람법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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