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식 ‘이끼를 들어 올리는 사람’
가나아트센터서 오늘부터 개인전
주변에 늘 보이던 자연 속에 풍덩
야외 퍼포먼스를 화폭에 옮겨, 친구가 지목한 곳 그린 시리즈도
오랫동안 한자리를 지킨 듯 거대한 나무와 풀잎이 가득한 들판 한가운데 남자가 초록색 물체를 들고 서 있다. 임동식 작가(78·사진)가 1991년 선보인 퍼포먼스 ‘이끼’를 재구성한 이 회화는 27년에 걸쳐 작업한 ‘이끼를 들어 올리는 사람’(1993∼2020년)이다.
퍼포먼스 당시 작가는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림 속에서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다. 또 뒤의 배경엔 카메라를 든 인물과 노란 하늘이 보였지만, 그림에서는 그 자리를 숲이 대신한다. 임 작가는 뒤편의 나무가 “충남 공주 원골마을에 살 때 보았던 느티나무”라며 “자연 속에 푹 들어온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이렇게 변주했다”고 설명했다.
제5회 박수근 미술상 수상자인 임동식의 개인전 ‘이끼를 들어 올리는 사람, 임동식’이 1일부터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 전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선 그의 회화 작품 40여 점과 드로잉 100여 점을 선보인다.
● 그림이 된 야투 퍼포먼스
전시장에서는 가장 먼저 표제작인 ‘이끼를 들어 올리는 사람’을 비롯해 그가 자연 현장에서 선보인 퍼포먼스를 회화로 변주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임동식은 1975년 충남 태안군 안면도 꽃지해변에서 처음으로 야외 작업을 한 다음, 1980년 ‘금강현대미술제’를 개최한다. 이후 1981년 여과되지 않은 순수한 자연을 표현하고 자연 현장에 서자는 의미를 담아 ‘들로 던진다’는 뜻의 ‘야투(野投): 야외현장미술연구회’를 설립했다. 국내 최초 자연미술운동그룹인 야투 예술가들은 풀잎을 온몸에 동여매고 금강에 들어가 벗어 던지거나, 물속에 몸을 반쯤 담그고 앉아 수면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는 등의 행위를 했다.
임동식은 1983년 독일 국립 함부르크미술대에 진학한 뒤 이런 야투의 활동을 현지에서 소개했다. 1989년 함부르크시의 지원을 받아 ‘야투 함부르크전―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를 개최하며 현지 미술계에서 관심을 끌었다. 이후 그가 ‘이끼’ 퍼포먼스를 선보인 1991년 충남 공주에서 ‘금강에서의 국제자연미술전’을 열었고, 여기에 100여 명의 독일어권 작가가 참여했다.
작가는 1992년부터 퍼포먼스 작업을 그림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온몸에 풀 꽂고 걷기’, ‘물보기 나보기’ 작품이 대표적이다. 전시에선 퍼포먼스 모습을 담은 사진과 이를 회화로 옮겨 기록한 작품들을 함께 볼 수 있다. 임동식은 “어릴 적 친구들과 앞산 뒷산에 산딸기를 따러 갔던 기억, 주변에 늘 있었던 자연을 회상하며 그 느낌을 그림에 담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 원골마을 속 자연 미술
또 다른 자연 미술 시리즈 작품인 ‘자연 예술가와 화가’, ‘친구가 권유한 풍경’도 눈길을 끈다. 유학 생활을 마치고 1990년 귀국해 원골마을에 정착한 임동식은 자주 가는 식당 주인 우평남을 만난다. 평생 농사꾼으로 살아온 우평남과 함께 버섯 따기, 칡 캐기를 하면서 임동식은 자신이 그간 했던 작업이 자연을 흉내낸 것에 불과했음을 깨닫고, 우평남과 함께 산과 들로 풍경을 그리러 다니며 진정한 자연 미술을 실천하고자 했다. ‘친구가 권유한 풍경’은 친구 우평남이 함께 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장면을 지목하면 그것을 그린 풍경화 시리즈다.
전시장에서는 임동식과 우평남이 함께 그림을 그린 작업실을 재현한 공간도 만날 수 있다. 우평남의 그림과 작업실에 놓여 있는 잡동사니까지 가져와 배치했다. 잠시 갤러리를 떠나 공주로 떠난 것 같은 기분을 자아낸다. 10월 1일까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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