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세기 전에 만들어진 개념… 보험사 수익 내려 표준 체중 고안
백인 남성 고객 건강상태 수치화… 권력층이 통제 수단으로 악용도
◇나는 정상인가/사라 채니 지음·이혜경 옮김/548쪽·1만9000원·와이즈베리
추석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친지들의 갖가지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이 기다릴 것이다. “관리 좀 해서 ‘정상 체중’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니?”, “남들처럼 (정상적인) 취직, 결혼 안 할 거니?” ….
그런 ‘정상’이란 무엇일까? 영국의 여성 의료사학 박사인 저자는 ‘정상이란 만들어진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불과 두 세기 남짓 전인 1800년 이전에 ‘정상(normal)’이란 단어는 직각을 가리키는 수학 용어였을 뿐 다른 의미는 없었다.
1835년 벨기에 통계학자 케틀레는 천문학에서 행성 궤도 예측에 사용되던 종(鐘)형 곡선의 정규분포 개념을 인체 측정치에 적용했다. 그는 “이상(정상)적 신체에는 도덕적 정신이 수반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인 골턴의 우생학은 백인 상류 계급을 이상화하며 노동자 계급과 유대인 등에게는 출산을 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세기 초 미국 보험사들은 수익을 높이기 위해 ‘정상’ 체중과 혈압 등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표준은 주요 고객인 부유한 미국 백인이었다.
이런 사정은 한 세기가 지나도록 달라지지 않았다. 2010년, 미국 과학자 세 명은 오늘날의 과학 규범이 소수의 ‘괴상한(weird)’ 집단에서 나온다고 밝혔다. 바로 교육 수준이 높고 산업화된 부유한 민주주의 세계의 구성원들이다. 이들은 세계 인구의 12%에 불과하지만 심리학 연구 대상의 96%, 의학 연구 대상의 80%를 차지하며 거의 모든 경우 백인 남성으로 가정된다.
백인 남성에게 ‘정상’인 체질량지수(BMI)나 혈압을 아시아인에게 적용하면 당뇨병과 심장병 위협에 노출되기 쉬워진다. BMI 자체가 두 세기 전 케틀레가 고안한 방정식에 기초한 것이었다.
저자의 연구는 의학사와 신체 통계에서 시작하지만 정상을 강요받는 것이 몸만은 아니다. 심리상태나 성욕부터 가족관계까지 특정 집단의 표준이 ‘정상’으로 지배력을 행사한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좋은 계급의 남자는 자제력을 가진다’고 선언되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건 하류 계급과 여성의 것으로 천시됐다. 19세기 말 영국에서는 한 여성이 모자 쓰기를 거부하자 ‘정신병’으로 치부됐다.
‘정상적인’ 성생활은 결혼과 이성애를 의미했고 여기서 제외되는 행위는 늘 금기로 탄압을 받았다. 백인처럼 ‘정상적으로’ 머리를 펴지 않은 흑인 여학생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여러 나라에서 지금도 발생한다.
학창 시절 말 없는 ‘왕따’였다고 스스로 밝히는 저자는 과거 두 세기 동안 세계에서 벌어진 ‘표준화’가 보건과 복지 전반을 증진시키는 데 기여했음을 굳이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상’의 강조가 울타리 밖의 ‘비정상’을 배제시키고 소외시킨다는 그의 주장은 되돌아볼 가치가 크다. 옷차림부터 차량 색깔, 미용법, 자녀의 학원까지 남에게 맞춰야 한다는 강박이 훨씬 큰 우리 사회에서 더욱 중요한 지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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