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어 뮤지컬 ‘쇼맨’ 주연 윤나무
“초연 보신 부모님 ‘내 인생 같다’며
제 공연작품 30편 중 최고로 꼽아
그때보다 연기 깊이 더하려 노력”
구부정한 노인이 된 네불라에게도 한창때가 있었다. 무고한 시민을 쓰러뜨린 독재자의 대역을 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동안 그는 환희를 느꼈다. 끌려가듯 시작한 대역이었고, 여느 때처럼 성실히 임했을 뿐이지만 훗날 속절없는 회한이 그를 집어삼켰다.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지난달 31일 만난 배우 윤나무(38)는 “뮤지컬 ‘쇼맨’ 속 네불라의 삶은 그저 성실히 살아가는 나와 당신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국립정동극장에서 창작 뮤지컬 ‘쇼맨…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 배우’ 두 번째 시즌이 15일 개막한다. 올해 1월 제7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대상 등 3개 부문을 수상한 작품으로, 윤 씨는 주인공 네불라 역으로 남자주연상을 받았다. 공연은 미국의 한 유원지에서 입양아인 24세 수아가 잔혹한 독재자의 대역 배우였다고 말하는 네불라로부터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엉겁결에 이를 수락하며 시작된다. 관객은 네불라를 바라보는 수아의 양가적 시선으로 각자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배우 신성민과 강기둥이 윤나무와 함께 네불라를 연기한다. 수아 역은 정운선 박란주 이수빈이 맡았다.
윤나무는 네불라의 찬란했던 젊은 시절과 빛바랜 현재까지 폭넓은 시기를 연기한다. 극 중 나이로는 9세부터 72세에 이른다. 그는 “나보다 인생을 더 산 배역을 연기해야 하는데, 내 삶에서 연기의 디테일을 찾아낼 수 없어 까다롭다”고 했다. 그래서 아버지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70대인 아버지의 지금 모습과 20, 30년 전의 자세, 말투를 비교하며 연기에 녹였다.
“외양으로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이별로 우리가 홀로 참아내야 했던 마음을 담아내고자 합니다. 지난해 공연을 보신 부모님께서 ‘마치 내 인생 같다’며 제가 출연한 공연 30편 중 최고로 꼽으셨어요.(웃음)”
“진실된 연기를 하고 싶다”는 그는 지난해 초연 때보다 깊이를 더하려 애쓰는 중이다. 영광과 회한이 뒤엉킨 과거를 읊는 동안 마음속 요동치는 감정을 표현하고자 작은 숨소리와 눈빛까지 다듬고 있다. 배우를 꿈꿨으나 방황하다 대역에 그친 네불라를 보며 대학(동국대 연극학과) 시절도 되짚었다. 그는 “교수님께 칭찬받는 학생이 되기 급급해 내 목소리 없이 연기하던 모습이 겹쳐 보여 네불라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2011년 연극 ‘삼등병’으로 데뷔한 그는 ‘킬 미 나우’, ‘함익’, ‘카포네 트릴로지’를 비롯해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천원짜리 변호사’ 등에 출연하는 등 무대와 방송을 활발히 오가고 있다.
“편집되지 않은 배우의 연기를 그대로 볼 수 있는 게 공연만의 매력이죠. 극장 맨 끝자리 관객에게도 진심이 닿을 수 있도록 대사 한 줄 한 줄에 성심을 다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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