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70대 정경화·정명훈, 30년만의 감동 듀오

  • 뉴시스
  • 입력 2023년 9월 7일 00시 16분


시대를 풍미한 75세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지휘 거장’ 70세 남동생의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토닥였다. 연주 내내 누나와 눈을, 호흡을 맞췄던 동생은 누나의 애정표현에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지난 5일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75),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정명훈(70)이 함께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랐다. 11년만에 이뤄진 ‘정트리오 콘서트’였다. 은퇴한 정명화(79)가 빠져 완전체는 아니었지만 관객들의 감동은 남달랐다. 정경화·정명훈 남매의 듀오 연주가 1993년 이후 30년만에 처음이고, 정명화와 함께 한 정트리오 공식무대도 10년 이상 이뤄지지 못했던 만큼 남매의 연주에 클래식계의 눈과 귀가 쏠렸다.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클래식 음악가 정명화·정경화·정명훈이 함께 한 ‘정트리오’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실내악 그룹이다. 세계적인 콩쿠르를 휩쓸고, 미국과 유럽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이들은 1982년 미국 카네기홀 무대에 올랐고, 1986년에는 데카에서 첫 녹음을 했다.

정경화가 1967년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카네기홀 무대에 섰을 때 피아노 연주를 맡았던 정명훈은 15세 소년이었다. 그리고 50여년의 시간 동안 남매는 각자의 영역에서 정상에 올랐고, 거장이 됐다.

이번 무대에는 정명화를 대신해 두 남매와 오랜 시간 음악적 인연을 맺어온 첼리스트 지안 왕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아시아 최고의 첼리스트’로 꼽히는 지안 왕은 남매와 가족같은 인연을 이어왔다.

공연이 시작되고 정명훈과 지안 왕이 함께 무대에 올라 드뷔시 첼로 소나타를 연주했다. 성큼성큼 걸어들어온 정명훈이 팔짱을 끼는가 싶더니 곧바로 연주를 시작했다. 12분간 이워진 정명훈과 지안 왕의 협연에는 여유와 연륜이 가득했다.

이어 붉게 머리를 염색한 정경화가 보랏빛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 정명훈은 입가에 쑥스러운 미소를 띠고 누나와 조금 떨어져 등장했다. 한 무대에 오른 남매의 모습에 청중들의 함성이 터져나왔다.

연주곡은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3번으로, 남매는 다이내믹한 보잉과 타건, 강한 집중력을 보여줬다. 지안왕과의 협연에서 시종일관 여유롭던 정명훈은 누나와의 연주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누나의 바이올린에 바짝 귀를 기울이고 바른 자세로 앉아 섬세하고 예민한 연주를 이어갔다. 팔짱도 없었다.

연주를 마무리 하고 정경화가 정명훈에게 포옹했다. 손을 잡아 깍지를 끼기도 했다. 정경화는 팔로 하트를 그려보이며 감사를 표했고, 청중들은 환호를 보냈다. 1막이 마무리되고 무대 뒤로 돌아가며 정경화는 동생의 등을 토닥였다. 세계적 마에스트로이고, 칠순의 거장이지만 정경화에게 정명훈은 여전히 사랑하는, 챙겨줘야 하는 동생이었다.

2부에서는 세 연주자가 차이콥스키 피아노 트리오를 연주했다.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이라는 부제를 가진 작품으로, 관현악 작곡에 집중했던 차이콥스키가 니콜라이 루빈시테인을 추모하기 위해 쓴 피아노트리오다.

세 연주자는 낭만적인 1악장, 12개의 변주곡이 펼쳐지는 2악장에서 세월로 쌓아온 세월로 빚은 완벽한 호흡을 선보였다.

거장들도 세월은 피하지 못했다. 정명훈은 중간중간 오른쪽 어깨가 아픈 듯 팔을 돌렸고, 정경화는 허리를 두드렸다.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 3악장에서는 정경화가 바이올린 도입부를 놓쳐 깜짝 놀라는 장면도 연출됐다.

하지만 정경화와 정명훈은 그 모든 것을 감동으로 이끌었다. 누나의 실수에 정명훈은 미소를 지으며 자연스럽게 연주를 이어가며 바이올린을 불러들였고 남매는 혈육만이 선보일 수 있는 진하고 뜨거운 선율을 피어올렸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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