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사이비에 빠진 각자의 사연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16일 01시 40분


◇태초에 외계인이 지구를 평평하게 창조하였으니/정보라 외 9인 지음/314쪽·1만6800원·안온북스

윤 씨는 어느 날 친구 한 씨로부터 개벽교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한 씨는 “개벽교 영상을 보고 따라 한 뒤 암이 나았다”고 했다. ‘어린 남자’가 나오는 이 영상은 아침에 일어나 찬물을 떠놓고 조상에게 공을 들이고, 숯과 소금을 먹는 생활을 규칙적으로 반복하면 된다고 한다.

윤 씨는 생전 다단계 판매에 빠졌던 부인을 나무랐던, 의심 많은 사람이었지만 속는 셈치고 따라 하니 몸이 건강해지고 변비가 낫는다. 그러다 개벽교 모임에 나가게 된 뒤부터 윤 씨는 정말로 변한다.

조상의 은덕을 강조하는 어린 남자의 말에 크게 동감해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는 아들과 싸우고, 숯과 소금을 강박적으로 먹으며 신장이 망가지기 시작한다.

정보라 작가의 단편소설 ‘개벽’의 줄거리다. 아들 부부와 부드러운 관계를 유지하던 윤 씨가 이상한 종교를 믿으며 변해가는 심리가 설득력 있게 묘사됐다.

‘유사과학’, 즉 사이비 과학을 주제로 정 작가를 포함한 공상과학(SF) 작가 10명의 단편을 모은 소설집이다.

최의택 작가의 ‘유사 기를 불어넣어드립니다’는 노인이 대부분인 시골 마을 기 치료소가 배경이다. 동네에는 기 치료의 효과가 좋다는 소문이 자자하건만 정작 치료소 주인인 ‘해수’는 그저 노인들의 팔다리를 주물러주는 것일 뿐이라 생각한다. 어느 날 치료소에 근육병이 있는 아이와 엄마가 찾아온다. 아이의 엄마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결국 안 된다는 걸 확인할 때마다 마음에 걸렸는데, 해수 씨는 희망을 깨지 않아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한다. 그 간절함에, 해수는 진심을 다해 기 치료에 힘쓰려 한다.

이처럼 책에는 과학적으로 신빙성이 없더라도 그 길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 나온다. 사주 운세에 목을 매거나 광고에 홀려 효과를 알 수 없는 만병통치약을 구매하는 이들의 믿음과 불안, 그 안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좌절이 펼쳐진다. 이들의 좌충우돌은 얼핏 우스꽝스러워 보여도 저마다 가볍지 않은 사연들이 담겨 있다.

#사이비#사연#유사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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