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류, 발효된 ‘술맛 과일’ 선호
동물들의 약물 도취 현상 다뤄
◇술 취한 파리와 맛이 간 돌고래/오네 R 파간 지음·박초월 옮김/400쪽·1만8000원·MID
애기여새는 날개 끝이 빨간 조류다. 미국에선 이 새들이 대낮에 날다가 담이나 아크릴 유리, 창문에 충돌해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여러 차례 보고됐다. 과학자들이 부검해 보니 새들 대다수가 지나치게 익은 브라질후추나무 열매를 대량 섭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간 파열이 발생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인(死因)은 “에탄올에 취한 상태로 날아가던 도중에 단단한 물체와 충돌하여 유발된 외상”으로 추정됐다. 새들이 음주 비행을 하다가 사고로 죽었던 것이다.
새도 사람처럼 취하면 혀가 꼬인다. 연구에 따르면 금화조는 알코올이 섞인 주스를 마시자 노래가 살짝 엉성해지고, 구성이 어지러워지고, 감상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취한 사람이 특정 단어를 말하기 어려워하는 것처럼 새도 음절마다 영향을 받는 정도가 달랐다.
동물들 사이에서 흔한 약물 도취 행위와 진화와의 관계를 소개한 교양 과학서다. 무척추동물부터 영장류까지 수많은 생물 종이 의약용이건 기분 전환용이건 일부러 향정신성 물질을 섭취한다고 한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의 진화학자인 더들리 박사는 원숭이가 발효돼 알코올 성분이 섞인 과일을 그냥 과일보다 허겁지겁 먹어 치우는 걸 발견했다. 그는 “알코올의 냄새와 맛을 향한 강렬한 끌림은 완전히 무르익어서 영양분이 풍부해진 과일을 찾도록 도와줌으로써 영장류 조상에게 선택적 이익을 선사한다”는 이른바 ‘술 취한 원숭이 가설’을 세웠다. 향정신성 물질을 향한 인간의 친화성이 인류 이전부터 이어졌다는 것이다.
곤충도 약을 사용한다. 제왕나비는 금관화에서 카데놀라이드라는 화합물을 섭취한다. 독성이 있는 이 화합물을 몸속에 저장해 포식자나 기생충으로부터 자신과 알을 보호한다.
마약에 취한 동물의 움직임도 소개한다. 문어는 원래 고립적인 동물이지만 실험에서 마약 엑스터시에 취하게 만들면 다른 문어의 몸을 마구 휘감았다. 벌은 코카인에 노출되면 인간처럼 내성과 금단 현상을 보였다. 저자는 “합법이든 아니든 마약 소비를 지지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며 “마약 중독과 그와 관련된 행동의 원인에 대해 많이 알수록 부작용을 완화하기가 더 유리해진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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