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거를 전하는 안씨 23세의 단촉한 일생 조선의 과학상 위대한 공로자 비행 기술은 일인도 감탄 ◇불행한 소식이 과연 참이라하면 그의 최후는 얼마나 참혹하였을고 사고무친한 남의 고장에서 평일에도 눈치와 시기 속에서 외로이 분투하던 그가 재화 중에 변사를 하였다하면 그의 유해는 지금에 과연 어찌 되었을까 생각만 하여도 기가 막힐 뿐이다. 안씨의 경력은 작년 고국 방문 비행때에 본지에 소상히 소개된 바이라 이제 다시 기록할 것도 없지만은 이제 흉문을 접한 우리는 다시 한번 그의 짧은 일생을 생각지 아니할 수 없다. ◇안창남씨는 금년 23세의 꽃같은 청춘이다. 그는 신축년 정월 29년에 서울 평동 안의관 집에 태어나니 그 부친은 40에 첫 아들이라 사십동이 창남은 애지중지 중에 금지옥엽같이 자라나는 중 4살에 자친을 의의고 누이의 손에 길러나서 12살이 되었을 때 누이가 출가하고 부친마저 세상을 떠나 사십동이 귀한 창남은 그만 의지할 곳이 없는 고아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창남은 어려서부터 기상이 쾌활하여 조금도 국축함이 없이 전도를 개척한 결과 필경은 조선에서 처음되는 비행가가 된 것인데 그는 어려서 미동 보통학교를 다니었고 휘문학교를 중도에 퇴학 한 후 대판(일본 오사카)으로 가서 자동차학교를 마친 후 열아홉살에 다시 동경으로 가서 소율비행학교를 다니어 석달만에 3등 비행사가 된 후 그 학교의 교원으로 있다가 이번에 불행한 것인데, 그의 비행에 대한 천재는 세상이 공인하는 바이라 다시 말할 것도 없지만 금년 6월 초생 천엽현(일본 지바현)에서 거행한 민간비행대회에서도 모든 곤란을 무릅쓰고 2등의 명예를 얻었으며 성적으로는 일본인 간에도 그를 당할 자가 없이 되었고 더욱이 야간비행에는 특별한 천재를 가졌으므로 그의 묘기에는 동료간에도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며 이와 같은 실력을 인정한 일본 항공국에서는 지난 6월 31일에 아무 시험도 없이 1등 비행사 면장을 하부하였다. ◇공중에 나는 재주가 있어서도 죽음에 들어서는 어찌할 수가 없다! 안씨를 잃음은 우리의 중대한 손실이오 그 자신으로 생각하여도 원대한 희망을 품고 23세의 청춘으로 세상을 떠남은 철천의 한스러운 일이나 무정한 죽음을 어찌하리오. 다만 안씨의 일생이 비록 짧다하나 다소의 성공을 한것으로써 유명이 서로 쓰린 가슴을 위로할 뿐이다(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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