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중화사상은 100여 년 전 발명된 개념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23일 01시 40분


“수천년 지속된 민족적 특성 아닌 청나라 몰락 뒤 돌연 떠오른 사상”
타민족 동화시키려는 욕망 반영… 티베트, 신장 지구 분쟁 씨앗으로
◇중국이 말하지 않는 중국: 현대 중국 탄생에 숨겨진 빛과 그림자/빌 헤이턴 지음·조율리 옮김/500쪽·2만8000원·다산초당

주한 베트남 교민회원들이 서울 중구 명동 주한 중국대사관 인근에서 중국의 남중국해에 대한 불법 점유와 군사화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주한 베트남 교민회원들이 서울 중구 명동 주한 중국대사관 인근에서 중국의 남중국해에 대한 불법 점유와 군사화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동아일보DB
드라마와 영화에서 자기 확신이 지나치게 강하고,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인물을 종종 볼 수 있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국제사회에서 이런 캐릭터와 가장 비슷한 나라를 찾는다면 아마 중국이 아닐까. 그리고 중국의 그런 행동 근간에 중화(中華) 이외에는 모두 이적(夷狄)이고, 따라서 중국의 천자가 모든 이민족을 교화하여 세상의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중화사상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영국 BBC 출신의 저널리스트가 철저하고 방대한 자료 조사를 토대로 중화사상의 실상과 허구를 파헤쳤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지난달 열린 ‘중국-아프리카 국가 지도자 대화’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요하네스버그=신화 뉴시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지난달 열린 ‘중국-아프리카 국가 지도자 대화’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요하네스버그=신화 뉴시스
결론부터 말하면 중화사상과 중국(中國)이란 개념은 불과 100여 년 전 량치차오, 장빙린, 쑨원, 류스페이 등 혁명가와 개혁가들이 새로운 나라에 어울리는 국호와 사상을 고민하던 끝에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리고 이런 사상이 신장위구르자치구, 티베트, 대만, 남중국해, 홍콩에 얽힌 문제에 대해 지금 중국이 하는 행동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중국’이라는 명칭이 아주 오래전에 사용되었고 오늘날 중국을 그렇게 부른다는 사실은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이 ‘중국’이 3000년, 아니 심지어 5000년을 가로질러 존재하는 연속적인 국가라는 것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주었다. 하지만 증거를 신중하게 살펴보면 사실 그렇지 않다.”(제1장 ‘외부인의 시선에서 탄생한 이름, 중국’ 중)

저자는 ‘중국’이란 단어가 상나라(기원전 1600년∼기원전 1000년경) 때부터 등장하기는 하지만 상시적으로 쓰인 게 아니라 3000여 년 동안 간헐적으로 사용됐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나마도 역사 속 어느 나라도 자신을 ‘중국’으로 부른 적은 없고 중국 안팎의 사람들, 즉 내부인과 이적이라 불리는 오랑캐를 구분하기 위해서만 썼다는 것이다.

청나라가 망한 뒤 지식인, 혁명가, 개혁가들은 새로운 나라의 이름을 정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고민 중의 고민이었다. 저자는 당시 중국이 유럽 각국과 일본 등 외세를 추방하자는 분위기 속에 건설됐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자신들(내부인)과 오랑캐를 구분하는 ‘중화’가 유력한 개념으로 등장했다고 말한다. ‘중국’도 후보였는데, 일부에서 ‘국토의 경계를 사방으로 정할 때만 의미 있다’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중화민국(中華民國)’으로 정리됐는데, 후에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정착됐지만 근본 개념은 같다.

저자에 따르면 중화사상은 타민족을 변화시키고 동화시킬 수 있다는 관념을 압축한 사상이다. 티베트, 신장위구르자치구 등 곳곳에서 벌어지는 분쟁이 불과 100여 년 전 ‘새로운 나라’를 갈망했던 이들이 뿌린 씨앗의 결과라니, 이름 함부로 지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중화사상#중국#나라의 이름#중화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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