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는 무심코 스마트폰을 몇 번이나 들여다봤을까? 쉴 새 없이 연락이 오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봐야 할 콘텐츠가 있는 것도 아닌데. 현대인은 스마트폰에 빼앗기는 시간이 너무 많다. “볼 게 없네”라고 투덜거리면서도 끝없이 채널을 돌려대는 TV는 또 어떤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시간 보내는 것도 한두 편이지, 보고 나면 금세 몸이 찌뿌둥해진다. 그렇게 훌쩍 시간이 지나고 어두워지면 왠지 허무해지기도 한다.
아마 이 기사도 스마트폰으로 보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을 터. “이거 내 얘기네” 싶다면 이제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TV 앞을 떠나 세상 밖으로 나갈 때다. 단 20~30분 만이라도 집 근처 공원을 걸어도 좋다. 좀 더 깊은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라면 금상첨화. 자연에서 휴식하면 그저 기분만 좋아지는 게 아니다.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심리적인 긍정 효과는 생각보다 더 무궁무진하다.
우리는 자연을 동경하도록 태어났다
푸릇푸릇한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자연에 있으면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아도 힐링 되는 느낌을 받는다. 학자들은 인간이 애초에 자연을 사랑하는 본능을 갖고 태어나서 그렇다고 설명한다. 이를 ‘바이오필리아(biophilia)’라고 한다. ‘바이오(bio·생명)’와 ‘필리아(philia·사랑)’ 두 단어를 합친 말로, 직역하면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이 용어는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이 생명이 있는 것에 끌리는 인간의 본능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사용했다.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의 저명한 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이 1984년 저서에서 자연과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 또는 자연으로의 회귀본능 등으로 소개하며 대중에 널리 알려졌다.
우리말로는 ‘녹색 갈증’이라는 좀 더 재미있는 말로 의역된다. 녹색을 목말라 한다니, 자연을 갈망하는 마음이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온종일 회색 콘크리트 건물에 갇혀 컴퓨터 화면만 보다가 초록색 자연을 보고 개안 된 것 같은 시원함을 느낀 적 있다면, 쌓여 있던 녹색 갈증이 해소된 것이라 볼 수 있다. 휴일에 산이나 바다를 찾아가고, 최대한 자연이 많이 보이는 집에 살고 싶어 하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자연에서 많이 뛰어놀아야 마음도 ‘튼튼’
자연을 갈망하는 본능을 거스르고 살면 어떻게 될까. 물론 당장 큰일이 벌어지는 건 아니다. 다만 자연의 힐링 효과는 우리 몸에 차곡차곡 쌓여 몇 년 뒤, 몇십 년 뒤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어렸을 때 자연을 많이 접하는 게 뭣보다 중요하다. 녹지가 많은 곳에서 살았던 아동들은 그렇지 못한 아동들에 비해 정신적으로 훨씬 건강하다고 한다.
자연이 아동에게 미치는 효과를 과학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덴마크 오르후스대 연구팀은 아동 약 100만 명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연구를 기획했다. 1985~2003년 사이 덴마크에서 태어나 10살까지 자란 모든 아동을 추적 조사한 것이다.
이 연구는 아이들이 10살까지 살았던 동네의 자연환경을 기준으로 삼았다. 연구팀은 주민등록 정보에 나온 주소를 토대로 해당 지역의 고해상도 위성 사진을 분석했다. 집을 포함한 주변 영역을 커다란 정사각형(약 4만4100㎡)으로 설정하고, 그 안에 녹지가 얼마나 있는지 수치화했다. 여러 곳을 이사 다녔다면, 각 동네의 녹지가 얼마나 있는지 측정해 평균을 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20세 이후 정신 질환으로 치료받은 기록을 분석했다.
그 결과 어린 시절 녹지가 가장 적은 지역에 살았던 아이들은 녹지가 많은 지역에 살았던 아이들에 비해 우울증, 불안, 강박 등 각종 정신 질환으로 치료받을 확률이 55%나 높았다. 이 수치는 부모의 정신 질환 병력, 사회 경제적 환경 등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를 최대한 배제한 결과다.
연구팀은 “집이나 학교 주변의 녹지 공간이 중요한데, 도시 환경 설계에서 녹지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라며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공원이나 자연을 볼 수 있는 공간에 얼마큼 자주 데려가는지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지친 뇌를 상쾌하게 만드는 자연의 힘
자연으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는 건 성인도 마찬가지다. 골치 아픈 작업을 하다가 자연과 관련된 사진이나 영상만 봐도 기분이 환기되고, 집중력이 올라간다. 귀뚜라미 소리 같은 자연을 연상시키는 음향을 들어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직간접적으로 자연을 느끼는 잠깐의 휴식으로도 인지 능력, 주의력을 높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지난 기사 ‘쉬었는데도 찌뿌둥…지금 필요한 건 ‘휴식의 기술’’ 참고)
자연은 정신적 피로감을 완화해 폭력성도 낮춰준다. 프랜시스 쿠오 미 일리노이대 교수 연구팀은 도시 공공주택에 사는 성인 145명을 연구했다. 이들을 연구 대상으로 택한 이유는 공공주택은 신청자의 선호 조건과 관계없이 무작위로 위치가 배정되기 때문이다. 운이 좋은 누군가는 나무가 많이 보이고 도시 소음이 적은 공간을 배정받고, 또 다른 누군가는 건물만 잔뜩 보이고 자동차 경적 등 소음이 잘 들리는 집을 배정 받는다.
이들은 어떤 환경에 사는지에 따라 정서적으로 확연히 다른 경향을 보였다. 상대적으로 친환경적인 조건을 갖춘 집을 배정 받은 이들은 척박한 조건의 집을 배정 받은 이들보다 정신적 피로 수준이 훨씬 낮았다. 심지어 폭력성도 낮은 것으로 관찰됐다.
사진도 좋지만…가장 좋은 건 진짜 자연 만나는 것
위에서 소개한 연구에서 눈치챌 수 있듯, 화면이나 오디오 장치를 통해서 자연을 만나는 것도 생각보다 큰 휴식 효과가 있다. 산책을 자주 나갈 여력이 되지 않는다면 스마트폰 배경 화면이나 컴퓨터 바탕화면을 자연 사진으로 해놓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에게 자연 풍경을 보여주는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해 정신 건강 치료를 시도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런데 그 어떤 대체재도 ‘원조’를 이길 순 없다. 신시아 프란츠와 스테판 메이어 미 오벌린대 심리학과 교수는 진짜 자연을 마주하며 느낄 때와 영상으로 담긴 자연을 느낄 때 어떤 차이가 있는지 실험해 봤다.
이들은 실험참가자를 각각 나눠 15분 동안 △자연에서 산책하기 △도심에서 산책하기 △자연이 담긴 영상 보기 △도시 환경이 담긴 영상 보기를 실시했다. 그런 다음 이들의 기분 상태와 집중력, 삶의 문제에 대해 성찰하는 능력을 비교해봤다. 그 결과 자연에서 산책한 사람과 자연 영상을 본 사람들은 나머지 두 조건의 사람들보다 기분이 좋았고, 집중력이나 삶을 성찰하는 영역 모두에서 앞섰다. 주목해야 하는 대목은 실제 자연에서 산책하고 온 사람들이 자연 영상을 본 이들보다 세 영역 모두 훨씬 앞섰다는 점이다.
연구 결과에서 보여주듯, 진짜 자연에 가야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휴식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진짜 자연 vs 가짜 자연’ 대결에서, 진짜 자연이 이기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제 밖으로 나가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무심코 또 스마트폰을 집어 들어 사이버 세상을 헤매고 있었다면, 눈을 들어 진짜 세상에 펼쳐진 자연을 만끽해 볼 때다.
다음 기사에서는 △자연에서 보내야 하는 하루 최소시간은 몇 분? △자연과 ‘연결’되면 외로움도 치유된다 △‘산 vs 바다’ 어디가 더 정신적으로 이로울까 등에 대해 알아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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