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골목길을 관광지로 만든 복돌고양이[전승훈의 아트로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29일 18시 00분


일본 히로시마현 오노미치 센코지산에 있는 삼중탑에서 바라본 바다와 도심 풍경.
일본 히로시마현 남동부 오노미치시는 일본 세토내해의 오랜 역사를 가진 관광도시입니다.
일본에는 토끼섬, 고양이섬처럼 특정 동물이 많이 살고 있는 섬을 동물캐릭터로 꾸며 관광지로 만든 곳이 많은데요. 오노미치의 명물 중의 하나는 바로 고양이입니다.

오노미치 센코지산 중턱에 있는 카페.
오노미치의 ‘고양이 길’은 한 예술가의 노력으로 쇠락한 산동네 마을이 일약 전국적인 관광지로 떠오른 사례입니다.


센코지산 텐네이지(天寧寺) 삼중탑(三重塔)에서 우시토라 신사(艮神社)까지 200m 정도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은 ‘네코노호소미치(猫の細道·고양이 오솔길)’로 불립니다. 차가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좁고 돌계단이 많은 급경사 골목길에 가장 자유롭게 활보하는 주인공은 바로 고양이입니다.


고양이 오솔길(Cat Alley) 입구에는 둥그런 차돌 위에 고양이 얼굴이 그려진 자그마한 신사가 있습니다. 오코미치에 살고 있는 예술가 소노야마 슌지(園山春二)가 둥근 차돌에 고양이의 얼굴을 그려넣은 ‘후쿠이시네코(福石猫·복돌 고양이)’입니다.



빨간색 노란색으로 그려진 복돌 고양이는 계단과 담장, 풀숲 곳곳에 숨어 있는데요. 실제 고양이처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사람들을 지켜보는 모습이 귀엽기 그지 없습니다.


특히 예술가는 담벼락이나 길바닥의 시멘트가 갈라진 틈의 모양을 그대로 이용해 고양이의 몸통이나 얼굴, 발바닥을 그려넣었습니다.


통영의 동피랑이나 동해 묵호 마을 등에 그려진 우리나라 동네 벽화는 담장을 가득히 페인트를 칠해놓고 빈틈없이 그림을 그립니다. 때로는 한적한 시골마을의 정취까지 해칠 정도로 가득 그려 있는 벽화는 공해가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노미치의 고양이 오솔길에 그려진 복돌 고양이는 지붕 밑, 나무 밑, 우물가에 조그맣게 숨겨진 고양이를 찾는 재미가 여행객을 웃음짓게 합니다. “카와이(귀여워)~”라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는데요.


이 길에서는 실제로 고양이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더 많았다고 하는데 요즘에는 숫자가 줄었다네요. 이 곳 고양이들은 사람들이 있어도 전혀 위축되거나 피하지 않고 느긋하게 관심을 즐깁니다.


한낮의 고양이들은 관광객도 아는 체도 하지 않고 잠을 자기에 바쁩니다. 길 한복판에서, 담장 위에서 세상 귀찮다는 듯 늘어져 있습니다. 고양이를 바라보며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저렇게 아무런 걱정없이 게으름과 여유를 만끽하는 고양이가 부럽기 때문이 아닐까요.



복돌 고양이를 그린 소노야마 슌지는 오노미치시에 살고 있는 고양이 그림 전문 작가라고 합니다.


그는 원래 ‘손 흔드는 고양이’, ‘복 고양이’로 불리는 ‘마네키네코’ 그림 작가입니다.



1998년부터 돌을 색칠해 만든 고양이 오브제인 ‘후쿠이시네코(福石猫, 복을 주는 돌 고양이)’를 만들어 놓기 시작하면서 이 좁은 골목은 ‘고양이 길’로 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


고양이가 많이 살고 있고, 예쁜 복돌 고양이가 놓여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관광객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고양이 집사들에겐 꼭 한번 와보고 싶어하는 성지가 되었죠.


사람들이 떠났던 도심의 산동네에 활기가 생겼습니다. 빈집을 개조해 만든 미술관이나 카페, 공방들도 하나둘 생겨났습니다. 텅비었던 동네를 고양이들이 살린 셈입니다.


오노미치 기찻길 옆에는 고양이 캐릭터가 있는 카페와 기념품숖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노미치의 고양이 길은 일본 소니 미러리스 카메라 CF에도 배경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오노미치의 고양이 골목길은 우시토라(艮) 신사의 동쪽에서 텐네지(天寧寺) 삼중탑까지 이어지는 약 200미터의 좁은 골목길입니다.



우시토라 신사 입구에서 철길을 건너서 텐네지까지 올라갈 수도 있지만, 시간이 있다면
먼저 로프웨이를 타고 센코지산 정상 전망대에 오른 뒤 걸어서 산책삼아 내려오면서 고양이들을 만나는 것을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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