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산림청이 대한민국 100대 명품 숲을 선정해 발표했다. 강원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 숲과 제주 서귀포시 치유의 숲 등 우리에게 건강한 기쁨을 주는 숲들이었다. 왠지 울컥하면서 감격스러웠다. 1973년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이 수립돼 실행되기 전까지 한국은 헐벗은 민둥산의 나라였다. 국토 녹화 50년 만에 우리의 산림에 ‘명품’이라는 이름을 당당하게 붙이게 됐다.
한국의 성공적인 산림녹화 기록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가 추진 중이다. 올해 8월 문화재청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신청 대상 기록물로 심사를 통과했다.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일단 각국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한국의 산림녹화 기록은 올해 11월 말까지 유네스코 사무국에 신청서가 제출되면 2025년 등재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기록을 수집해 온 국내 원로 임학자와 임업계 1세대들이 있어 가능했던 일이다. 이경준 서울대 산림과학부 명예교수(78)가 회장으로 있는 사단법인 한국산림정책연구회가 이번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서울 동대문구 국립산림과학원 2층에 있는 연구회를 찾아갔다. 연구회가 겸하는 ‘산림녹화 유네스코 등재추진위원회’ 팻말이 붙어 있었다. 에어컨 없이 선풍기 하나만 돌아가는 사무실에는 회원들이 7년 동안 모은 1만여 건의 각종 기록이 문서 보존 상자에 담겨 있었다.
추진위원회의 이철수 사무국장, 전진표 대외협력본부장, 한문영 기록관리 본부장이 함께 자리했다. 은퇴한 지 10년이 넘은 산림청 퇴임 공무원들이다. 함께 노력해 온 오정수 연구관리 본부장만 이날 배석하지 못했다. 추진위 회장인 이경준 명예교수는 이들과 2016년부터 세계기록유산 등재 노력을 시작했다. 무보수 재능기부 활동이었다.
“마지막 애국의 길이라는 생각에…”, “산림녹화 기록물이 거의 소실돼 우리 1세대가 직접 돌아다녀 모아야 역사에 남길 수 있어서”, “한국의 성공적인 산림녹화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자랑거리이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소원이 있다. 한국의 산림녹화 기록이 산림복구가 필요한 다른 개발도상국에 모범이 되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것, 미래세대와 인류 역사에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이다.
●산림녹화 기록, 어떻게 모았나
추진위에 따르면 국내의 산림녹화 관련 공문은 대부분 폐기됐다고 한다. 그래서 30여 명의 등재 추진위원들은 전국의 산림조합과 각 지역 도청 산림과를 다니며 조림 대장을 포함한 관련 문서들을 열람했다.
“도청의 젊은 담당자들은 옛날 일을 모르니까 무조건 서류가 없다고 해요. 창고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해서 가보면 있어요. 일일이 사진을 찍고 복사해 자료를 모았어요. 일단 가능한 자료를 모아 온 뒤 한문영 추진위 기록관리 본부장이 자료 가치를 검토했어요.”
산림녹화기록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신청 도전은 이번이 ‘재수’(再修)였다. 2017년 문화재청 심사에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온 국민이 나무를 같이 심었다는 ‘국민 조림’이었다면서 관(官) 주도 기록물 위주라 민간 기록물이 적다는 이유였다. 추진위는 자료를 보완하기 위해 전국의 산림조합과 산림계(契)를 발이 부르트게 다녔다.
“우리나라 산림녹화 초기에 각 산림조합이 연료림(땔감에 쓰일 목재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산림) 조성 계획을 세웠어요. 개인 소유의 사유림에 연료림을 만들어야 하니까 국가가 산림조합에 모든 걸 일임했죠. 산림조합중앙회의 말단 조직으로 마을마다 있는 게 산림계인데 그 수가 2만3000개 정도 됐어요.”
그렇게 산림계를 통해 추가로 모은 1300여 개의 산림녹화 기록물이 이번 심사에서 민간 기록물로 인정됐다. 추진위는 한국의 산림녹화가 ‘국민 조림’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한국의 산림녹화는 국가가 주도했지만 온 국민이 자발적으로 한 것입니다. 북한의 천리마 운동처럼 강제로 주민을 동원한 게 아니라 새마을운동을 통해 ‘왜 나무를 심어야 하는지’ 교육했습니다. 산림녹화가 되면 산사태를 막고 수자원이 풍부해져 풍년이 와서 나에게도 후세에게도 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고요. 그렇게 온 국민이 합심해 울창한 숲을 갖게 된 겁니다.”
추진위가 작년 10월 찾아낸 ‘1958년 화전민 정리 대장’도 귀한 자료다. 기록상으로는 1973~1978년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화전민을 완전히 없앴다. 그런데 1958년 이승만 대통령 때의 화전민 정리 대장을 수집하게 된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산림보호임시조치법을 제정해 도벌꾼을 처벌하는 등 산을 지킬 노력을 했지만 성과는 미미했어요. 예산과 행정력이 부족해 산림녹화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일반적으로 받는데, 이번에 화전민 정리 기록을 보고 우리도 깜짝 놀랐습니다.”
●한국의 자랑스런 50년 산림녹화
추진위가 꼽는 한국의 자랑스러운 산림녹화 성과에는 경북 영일지구 사방사업이 있다. 사방공사는 자연의 힘으로는 도저히 회복되지 않는 극심한 황폐지를 인위적으로 회복시키는 작업으로, 산림녹화의 가장 핵심적인 사업이다. 영일지구는 바위와 돌이 힘없이 부서져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사막 같은 곳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3년 제1차 치산녹화 사업을 시작한 후, 신임 손수익 산림청장에게 영일지구 황폐지를 반드시 녹화하라는 특별 지시를 내렸다. 대통령이 수시로 현장을 찾아 격려하며 5년 동안 진행된 사방사업 끝에 4538ha의 황폐지가 완전녹화됐다. 20세기 기적으로 불리는 이 사업의 관련 자료들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을 위한 기록물로 제출됐다.
한국산림과학회 회장을 지낸 이경준 명예교수는 대한민국 50년 산림녹화의 주역으로 박정희 대통령(1917~1979)과 손수익 전 산림청장(1932~2022), 육종학자인 현신규 전 서울대 교수(1912~1986)를 꼽는다.
손수익 산림청장은 역사상 최장수 산림청장이다. 6년간 재임하면서 10년 치산녹화계획을 6년 만에 조기완성했다. 화전정리사업에서 보여준 것처럼 철저한 행정지침을 마련해 치산녹화사업을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따뜻한 리더십이 지금도 회자된다.
현신규 박사는 리기테다소나무와 은수원사시나무(현사시나무)의 육종을 통해 산림녹화의 초석을 다지고 한국 육종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높였다. 속성수인 이태리포플러를 한국의 풍토에 맞게 개량해 우리 국토를 빠르게 녹화하는 데 기여했다.
추진위 회원들은 “우거진 숲은 국부(國富) 그 자체”라고 입을 모은다. 그들은 과거의 성취에 취해있지 않고 다가올 미래를 생각한다. 세계적 목재 부족 현상에 대비해 선진국처럼 필요한 목재를 인공조림지에 예비해 놓아야 한다고 한다. 미래의 숲은 바이오 에너지 공급, 생물 다양성 보존과 야생동물 보호, 산림휴양과 숲 치유 등의 여러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한다.
은퇴한 지 한참 지난 70대 나이에 우리의 산림녹화 기록을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들이야말로 ‘나무를 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이 순간에도 희망의 나무를 심는 마음들이 자라서 더 울창한 명품 숲을 이룰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유네스코가 전 세계의 귀중한 기록물을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해 1997년부터 2년마다 선정한다.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훈민정음과 새마을운동기록 등 지금까지 18개다. 올해 5월에는 4·19혁명기록물과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이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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