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풍수, 그림에서 생기(生氣)가 흘러나오네[안영배의 웰빙풍수]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3일 13시 00분


기운생동의 한국화, 세계적 경매사가 초청 전시

선(線)을 필생의 화두로 삼아 작품에서 기운생동(氣韻生動)을 표현해내는 한국화가 혜명 김성희 교수(서울대 동양화과).
선(線)을 필생의 화두로 삼아 작품에서 기운생동(氣韻生動)을 표현해내는 한국화가 혜명 김성희 교수(서울대 동양화과).


동양에서 탄생한 산수화는 자연의 기운(氣運)을 화폭에 담아두는 장치이기도 했다. 중국 남북조 시대의 화가 종병(宗炳·375∼443)은 화론서인 ‘화산수서’에서 ‘산수화는 도(道)를 드러내는 신물(神物)’이라고 평가했다. 화가가 아름다운 산천을 감상하며 자연에 깃든 신령스러움까지 마음으로 깨달아 화폭에 담아내면, 감상자도 그 아름다움과 신령스러움을 그림에서 똑같이 취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런 화론은 같은 기운은 서로 감응한다는 풍수의 동기감응론(同氣感應論)과도 통한다.

원나라 때 산수화가로 명성을 떨친 황공망(黃公望·1269∼1354)은 한걸음 더 나아가 “그림 속에도 풍수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풍수 명당을 그림에서도 구현해내려고 부단히 애썼다. 또 북송(北宋)의 화가 곽희(郭熙·1023∼1085)는 아예 “산수화도 풍수처럼 발복(發福)한다”고까지 주장했다.

사실 동양의 산수화와 풍수는 공통점이 많다. 둘 다 자연을 다루고, 그 속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생기(生氣)를 중시한다. 게다가 산수화는 그림 속의 좋은 기운을 집안에 담아두는 풍수 인테리어로서도 인기가 높다.

이처럼 그림, 조각, 도자기 등 예술품을 풍수적 시각으로 이해하고 감상하는 행위를 ‘예술풍수’라고 한다. 이때 예술 작품에서 생명이 살아 움직이게끔 보여주는 중요한 수단이 ‘선(線)’이다. 그림 속의 생명력, 생동감 같은 생기는 모두 선의 움직임에 따라 표현되기 때문이다.

이는 동양 예술과 서양 예술을 구분짓는 확실한 기준점이기도 하다. 서양 예술은 선 대신 윤곽을 강조하는 면을 중시하면서, 3차원 공간과 빛의 색깔 위주로 발전해왔다. 반면 동양 예술은 투박하지만 생동감이 넘치는 선을 각종 선묘법으로 구사해 ‘사의(寫意)’의 경지로 발전시켰다. 동양화에서 선이란 마치 작가의 호흡처럼 살아 있는 것이다. 시시각각 그 왕성한 생력력, 즉 기운을 발산하는 매개체가 선이란 뜻이다.

○ 선을 별자리로 표현한 한국화, 우주의 기운까지 담겨


바로 이 선을 찾고 구현하기 위해 예술혼을 쏟아온 한국화가가 있다. 혜명 김성희 작가(서울대 동양화과 교수)는 “긋는 행위인 선(線)은 그 한순간에 작가의 현재의 모든 것을 담아내는 시간성을 가지고 있다”고 정의하며, 들숨과 날숨, 잠깐의 생각의 들락거림, 의식의 상태가 한 치도 숨김없이 선을 통해 드러난다고 말한다.

또한 선은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게 그의 ‘선 철학’이다. 방향성을 가진 선은 인간의 지향, 의지, 꿈, 욕망을 상징한다. 선들이 시작되고 끝나는, 혹은 만나는 지점은 하나하나 하늘의 별처럼 아름답게 빛나며 우리 삶의 모든 순간들을 상징하고 있다. 밤하늘의 별들이 선으로 이어지는 순간 인간의 꿈과 이상과 욕망이 투영된 별자리 스토리를 탄생시키듯 말이다.

그는 별자리의 선을 통해서 세상을 표현한다. 그래서 사람, 나무, 새 등을 묘사하고 있는 그의 그림에는 모두 별과 선이 등장한다. 별자리를 통해 삶과 만물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 ‘별 난 이야기1702’. 한지에 먹과 채색. 170.2X138. 2017년.


그의 작품 ‘별난 이야기 1702’를 감상해보자.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날 아침 아파트의 작은 화단에 새들이 앉아 있는 목련나무 그림이다. 새들을 품은 나뭇가지 끝에는 새 싹들이 피어나는 모습도 보인다. 아름다운 빛깔의 새들은 생명을 노래하고 있고, 싹들이 피어나는 목련나무 또한 생명의 나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별과 선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예술풍수로 보자면 풍요를 상징하는 목련나무와 생명을 상징하는 새들에서는 충만한 생기가 뿜어져 나온다. 또 별자리를 통해 전달되는 우주적 에너지도 작품 속에 녹아들어 있다. 신령스런 기운, 즉 영기(靈氣)가 있는 그림은 보는 이의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작품과 1m 정도 떨어진 곳에서도 에너지 파장이 느껴질 정도로 중후하면서 생명력 있게 다가온다. 총체적으로 건강과 장수의 기운이 전달되는 그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놀랍게도 그의 작품은 외국인들로부터 더 주목을 끈 듯하다. 김 작가는 세계 3대 경매사 중 하나인 영국 경매사 본햄스(Bonhams)의 런던 본사에 초청돼 개인전(10월 7∼13일)을 열게 됐다고 밝혔다. 전시 기간은 ‘아트페어(미술품 장터) 프리즈 런던’이 열리는 시기인데, 한국 작가가 본햄스 본사에서 전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미술 전문가들은 영국 내에서도 진입 장벽이 높기로 유명한 메이페어(Mayfair)에서 한국화 초청 전시가 열리는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현대인의 정서와 삶을 한국적 소재로써 표현하는 K아트의 유럽 진출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작품 ‘Constellation Links 2302’. 148x114. 영국 본햄스 초청 개인전에 소개되는 작품 중 하나로, 꽃과 별자리 선으로 사람을 묘사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오랫동안 작업해 온 ‘별 난 이야기’(Constellation Links) 연작과 여기에서 분화된 ‘투명인간’(Transparenter) 연작이 소개된다. 방향성을 가진 선(=Stroke)이 어떻게 별자리를 만드는지, 무수한 별자리들이 연계돼 어떤 형상들이 형성되는지,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는 별들과 이 지상의 존재들이 어떻게 동시에 통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작가는 “신작을 포함해 그동안 작업해 온 대표작들을 소개할 예정”이라면서 “영상으로 재해석한 작품도 함께 선보인다”고 말했다.

예술풍수에서는 그림에 사용되는 재료의 기운도 따진다. 사진은 김성희 작가가 사용하는 천연 염료인데, 직접 자연에서 채취한 재료를 사용한다고 한다.


서울대 미술관 관장과 서울대 미대 학장을 지낸 김 작가는 긴 장섬유로 된 한지에 먹과 천연염료를 스미게 하고, 다시 한지 위에 선을 긋거나 채색하는 방법으로 작업하고 있다. 예술풍수에서는 작가 의식과 예술적 감각 뿐만 아니라 이를 표현해내는 재료인 종이, 먹, 염료 등에서도 다섯가지 오행 기운(목, 화, 토, 금, 수)으로 분류해 기 에너지의 강약과 밀도 등을 감별해낸다. 선을 통해 풍수와도 접목되는 그의 작품들이 유럽 미술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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