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아빠, 성숙한 딸… 동반 성장기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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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건 감독 장편 영화 ‘스크래퍼’
엄마 죽음뒤 처음보는 아빠의 등장
마음 열고 가족이 되는 과정 그려

영화 ‘스크래퍼’에서 조지(롤라 캠벨·오른쪽)와 아빠 제이슨(해리스 디킨슨)이 장난 삼아 금속탐지기로 땅을 훑고 있다.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영화 ‘스크래퍼’에서 조지(롤라 캠벨·오른쪽)와 아빠 제이슨(해리스 디킨슨)이 장난 삼아 금속탐지기로 땅을 훑고 있다.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열두 살 조지(롤라 캠벨)의 방과 후 일과는 ‘자전거 훔치기’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누르고 사람들 눈을 피해 전봇대 뒤에 숨는다. 몇 번 시도 끝에 잠금장치를 풀어내는 데 성공하면 자전거를 들고 냅다 달린다. 비행 청소년인가 싶지만, 조지는 ‘생계형 도둑’이다. 엄마가 죽고 난 뒤 시설에 보내지는 게 두려워 ‘삼촌과 함께 산다’는 거짓말을 꾸며내 홀로서기에 나선다. 생활비는 훔친 자전거를 팔아 마련한다.

어느 날 조지 앞에 생전 처음 보는 아빠 제이슨(해리스 디킨슨)이 등장한다. 러닝셔츠에 걸쳐 입은 운동복, 탈색한 머리카락 등 아빠의 모습은 어딘지 불량해 보이지만 둘은 서서히 마음을 열고 가족이 되어 간다. 지난달 27일 개봉한 샬럿 리건 감독의 장편 데뷔작 ‘스크래퍼’다. 영화는 올해 선댄스영화제 월드시네마 드라마 부문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영화에 깔린 주제는 죽음이다. 병에 걸리기 전 엄마와 단란한 한때를 보내는 조지의 눈빛과, 엄마가 없는 집 방 한켠에 자신만의 제단을 만들어 놓고 애도하는 조지의 눈빛이 겹쳐져 서글프다. 상실의 슬픔을 아이의 시각에서 풀어낸 것이 인상적이다. 관객이 몇 살이건 사랑하는 엄마를 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이의 마음으로 슬퍼하게 된다는 점을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의 분위기는 무겁지 않다. 용감하게 스스로를 부양하는 조지와 철없지만 딸에게 애정을 느끼는 제이슨의 친구 같은 모습이 미소를 짓게 만든다. 재기발랄한 연출 덕이기도 하다. 스물아홉 살의 젊은 감독답게 노랑, 분홍, 파랑 등 밝은 색깔을 적재적소에 썼고, 열두 살 조지가 머릿속에 낙서를 하는 듯한 모습을 스크린에 구현해 잔잔한 영화인데도 지루하지 않다.

리건 감독은 한국 관객들에게 보낸 친필 편지에서 “‘스크래퍼’는 내게 큰 의미가 있는 영화다. 슬픔과 유년 시절에 대한 영화이며, 함께 살아온 공동체를 사랑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는 “이 영화의 각본을 쓴 기간에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애도하는 중이었다. 그 과정에서 ‘연결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족과 친한 친구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다. 이 영화가 여러분과도 연결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리건 감독#장편 영화#스크래퍼#철없는 아빠#성숙한 딸#동반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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