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지 않은 미래 미국 뉴욕. 이제 도시에서 흙은 찾아볼 수 없고 매끈하게 포장된 도로만이 있다.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마음의 안정이 필요할 때면 ‘코인’을 내고 파도 소리를 듣는다. 집 안에서는 진짜 식물 대신 홀로그램 식물을 기르고, 심리상담 인공지능(AI)에게 고민거리를 털어놓는다. 3일 개봉한 영화 ‘팟 제너레이션’에 그려진 모습이다.
레이첼(에밀리아 클라크)은 거대 기술 기업 페가수스에서 인정받는 직원이다. 식물학자로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남편 앨비(추이텔 에지오포)와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어느 날 레이첼의 삶에 큰 변화가 생긴다. 중요한 승진을 앞두고 상사가 그녀를 불러 “가족을 늘릴 계획이 있느냐”고 물은 것. 상사는 “올해 잘하고 있는데 추진력을 잃으면 참 유감일 것 같다”며 자회사인 ‘자궁 센터’에 계약금을 내주는 회사 특전을 소개한다. 임신과 출산으로 업무에 지장을 주지 말고 달걀 모양 인공 자궁인 ‘팟’을 통해 아이를 낳으라는 것.
자연을 사랑하는 식물학자 남편 앨비는 이에 반대한다. 하지만 “수천 년간 출산의 고통을 여자 혼자 떠안았고, 임신 중 나타나는 증상은 별것 아닌 걸로 치부돼 왔다. 이젠 멈춰야 한다”란 주변 사람들의 설득에 결국 ‘팟 아기’를 낳기로 한다.
앨비는 의외로 ‘팟’과 자연스레 교감을 시작한다. 끈을 이용해 팟을 배에 메고 다니면서 함께 음악을 듣기도 한다. 괴로운 건 레이첼이다. 팟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아이와 남편에게서 소외감을 느끼고, “엄마가 될 준비가 안 됐다”는 생각에 혼란스러워진다.
3일 개봉한 ‘팟 제너레이션’은 ‘아이를 알에서 키워 낳을 수 있다면 임신과 출산의 과정은 어떻게 바뀔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영화다. 아이를 낳는 일이 남녀가 동등하게 겪을 수 있는 경험이 되면서 전통적인 성 역할이 전복되는 점이 흥미롭다. 임신과 출산, 인간성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다.
HBO ‘왕좌의 게임’ 시리즈, 영화 ‘미 비포 유’(2016년)에 출연한 에밀리아 클라크가 레이첼 역을 맡았다.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만 갑자기 찾아온 엄마라는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레이첼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노예 12년’(2014년), ‘닥터 스트레인지’ 시리즈에 출연한 추이텔 에지오포는 앨비 역을 맡아 ‘팟’에 점점 애정을 느끼는 아빠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소화했다. 영화 ‘마담 보바리’(2015년)를 연출한 소피 바르트 감독의 작품으로 제39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과학 기술을 주제로 한 영화에 수여하는 앨프리드 P 슬론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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