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운 일을 당하면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고 표현한다. 겉으로 피가 나고 딱지가 생기지 않더라도, 몸이 다친 것처럼 마음도 아프다는 의미에서다. 이밖에 ‘가슴에 멍이 든다’ ‘가슴이 쓰라리다’ ‘마음이 찢어진다’ ‘뼛속까지 저리다’ 등 마음이 힘겨운 걸 몸의 고통처럼 표현하는 말들이 많다.
은유적 표현 같아 보이지만, 이는 근거 없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실제로 뇌에서는 몸의 통증과 마음의 통증을 같은 자극으로 받아들인다. 특히 사람에게 상처받았을 때 그렇다. 거절이나 따돌림, 실연, 사별 등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비록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 뇌에서는 마음이 붓고, 피 나고, 멍든 것으로 여긴다. 기묘하게 연결된 몸과 마음의 세계를 살펴보자.
몸이건 마음이건 아프면 반응하는 뇌 영역은 똑같다
몸이 아프면 뇌에 비상경보등이 켜진다. 신체에 고통이 느껴지면, 외부에서 생존에 위협을 가하는 상황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때 관여하는 뇌 영역은 배전측 대상피질(dorsal anterior cingulate cortex·dACC)과 전측 섬엽(anterior insula· AI)이다.
신기하게도 마음이 아플 때도 이 영역이 활성화된다. 특히 사람들에게 비난받거나, 거절당하거나, 따돌림당할 때 그렇다. 실연이나 사별로 사랑하는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나오미 아이젠버거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 때 뇌 반응을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알아봤다. 실험 방식은 간단했다. 3명이 공을 주고받는 컴퓨터 공놀이 게임에서 특정 1명에게만 공을 패스하지 않고 따돌리는 것이다. 심지어 1명을 따돌리는 동안 나머지 2명은 서로 공을 45번이나 주고받았다. 나를 따돌리고 공놀이하는 두 사람을 지켜보는 사람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따돌림당한 사람 뇌에서는 몸이 다치고 아팠을 때 활성화되는 영역이 크게 활성화됐다. 게임에서 마치 없는 사람처럼 취급당해 마음이 상하자, 뇌에서는 몸이 아플 때처럼 비상경보등이 켜진 것이다. 실제 인간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것에 비해 매우 가벼운 수준으로 연출한 가상 따돌림에도 이런 결과가 일어난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신체적 생존만큼 중요한 ‘사회적 생존’
뇌는 왜 마음이 다쳤을 때, 몸이 아플 때와 같은 반응을 보일까? 학자들은 이를 인간의 ‘사회적 생존’ 본능에 의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원시 사회에서는 만약 인간이 사회적 유대 관계를 망쳐 무리 밖으로 쫓겨나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무리에서 더 이상 보호 받지 못하게 돼 외부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뇌에서는 신체적 생존 못지않게 큰 위기가 닥친 것으로 받아들인다. 심지어 이런 반응은 사회적 유대 관계를 맺으며 사는 일부 포유류 동물도 비슷하다. 원숭이와 햄스터의 뇌에서 몸의 고통을 처리하는 해당 뇌 부위를 제거했더니, 더 이상 새끼를 챙기는 모성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사회적 생존에 대한 경보 반응이 고장 나면서, 애착 대상을 보호하지 않게 된 것이다.
뇌에 작용하는 진통제, 마음의 고통에도 효과
마음이 아플 때 뇌에선 몸이 아플 때와 같이 받아들인다고 하니, 심리학자들은 참신한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몸이 아플 때 먹는 진통제를 먹으면 마음도 안 아프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출발했다.
네이선 드월 미 켄터키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진통제(예: ‘타이레놀’)로 실험했다. 여러 진통제 중에서도 아세트아미노펜은 뇌에서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원리의 진통제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건 모든 진통제가 다 마음의 고통에 효과가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말초신경에 주로 작용해 진통 소염 작용을 하는 이부프로펜 계열 진통제(예: ‘애드빌’ 등)는 마음의 고통을 느끼는 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성인 62명을 절반으로 나눠 3주 동안 한 팀은 아침저녁으로 아세트아미노펜 진통제(500㎎)를 한 알씩 먹게 했다. 나머지 한 팀은 아무 효과가 없는 가짜 약을 먹었다. 그리고 대인관계에서 상처받은 정도를 매일 심리검사를 통해 기록했다. 검사 문항에는 “나는 오늘 놀림을 당해서 기분이 상했다”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아래 그래프에서 노란색으로 표시한 그래프가 진통제를 복용한 그룹에서 기록한 마음의 고통 정도다. 시간이 갈수록 고통 정도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초록색으로 표시한 점선 그래프는 가짜 약을 먹은 그룹이다. 기울기가 크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의 고통이 약간 증가했다.
마음 아플 때도, 몸 아플 때만큼 보살펴야
이러한 결과는 추후 진행한 또 다른 fMRI 검사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연구팀은 앞에서 소개한 컴퓨터 공놀이 게임에서 따돌림당하는 상황을 똑같이 연출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따돌림당하는 사람이 사전에 진통제를 먹었다는 점만 달랐다. 그 결과 진통제를 먹은 사람들은 따돌림당하는 동안 몸과 마음의 고통을 느끼는 뇌 영역이 덜 활성화됐다. 즉, 따돌림을 당해도 심리적 타격감이 별로 없었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진통제가 적어도 일시적으로 심리적 고통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모든 심리적 고통을 줄이는데 진통제를 광범위하게 사용하라는 의미는 아니다”는 점도 분명하게 경고했다. 잠깐 고통을 못 느끼게 해줄 뿐,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뜻이다. 또 상황에 따라 복용 기준도 잘 지켜야 한다. 실험에서는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아세트아미노펜 하루 최대 복용량 기준(4000㎎) 이하를 준수했다. 음주가 잦거나, 간이 안 좋거나, 이미 다른 약을 복용 중인 경우에는 의료인과 상의해야 한다.
몸에 피가 나고 뼈가 부러졌을 땐, 몸을 보살피고 충분히 쉬어야 낫는다. 그런데 우리는 몸의 고통과 뇌의 같은 영역을 공유하는 마음의 고통에는 유독 모질게 대하는 경향이 있다. ‘나약해 빠졌다’ ‘그만 좀 툭툭 털고 일어나라’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몸이 다쳐 일어나기도 힘든 사람에게 ‘왜 이리 나약하냐’고 다그치진 않는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아프고 다쳐서 쉬어야 할 땐 당연히 쉼과 보살핌이 필요하다. 지금 나는, 그리고 주변의 누군가는 이러한 돌봄을 제대로 받고 있지 못한 건 아닌지 돌아보자.
다음 주 기사에서는 △헤어진 전 애인 사진 볼 때 뇌에선 무슨 일이? △몸이 자주 아프면, 마음도 자주 아프다 △대인관계 나아지면 아픈 몸도 낫는다 등의 내용을 다룰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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