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스미스, ‘언홀리’로 ‘홀리’하다…‘희화화’에 대한 ‘회화적’ 풍경

  • 뉴시스
  • 입력 2023년 10월 18일 05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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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인 17일 서울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에서 두 번째 내한공연
19세 이상 관람가 무대로 자기 정체성 확인 무대
18일 같은 장소에서 한 차례 더 공연

불경(不敬)과 신성(神聖), 즉 언홀리(Unholy)와 홀리(Holy)는 한 끗 차이다.

영국 팝스타 샘 스미스가 그걸 명확하게 보여준다. 지난 2018년 10월9일 서울 고척동 고척스카이돔에서 펼친 첫 내한공연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3 샘 스미스’와 17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옛 체조경기장)에서 연 두 번째 내한공연 ‘글로리아 더 투어 2023(GLORIA the tour 2023)가 대조군이다.

스미스의 첫 내한공연은 거룩이라는 단어를 100여분 동안 음악에 구속시킨 듯 성스러웠다. 코러스가 가득한 가스펠적 사운드로 가득했던 공연은 일찌감치 커밍아웃한 스미스가 사랑한 사람과 이별 후의 심정, 동성애자로서 고민 등을 녹여낸 음악 메시지를 무대 어법적으로 승화한 명공연이었다.

그런데 내한공연 이듬해인 2019년 스미스는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더 솔직하게 털어놨다. “나는 남성도 여성도 아니며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면서 ’논바이너리(non-binery)‘“라고 했다. 해당 개념을 알고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논바이너리라고 스스로를 규정한 자신들을 ’그‘나 ’그녀‘ 대신 ’그들‘(they)로 지칭한다.
이후 스미스의 서사는 언론이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극적으로 소비됐다. ’글로리아 투어‘는 그것에 대한 스미스의 성대·몸짓적인 자연스러운 ’음악 저항‘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마치 황금빛 거대한 석상이 엎드려 있는 듯한 무대를 배경으로 중성적인 옷을 연이어 입고 등장한 스미스는 공연 초반에 ’스테이 위드 미(Stay With Me)‘ ’아임 낫 디 온리 원(I‘m Not the Only One)’ 등 발라드 히트곡을 쏟아냈다. 직전 일본 공연 한 차례를 건강 문제로 취소했던 터라 그의 컨디션에 대해 일부 관객이 걱정했으나 스미스의 몸 상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다이아몬드’ 무대에서 스탠딩 마이크를 사용해 관능적인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1부 ‘러브’의 마지막곡이자 1만여 관객이 모두 일어나 자유롭게 춤을 ‘댄싱 위드 어 스트레인저’까지 내한공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난한 장면이 이어졌다.
그런데 스미스의 이번 콘서트 서사는 세개의 선을 갖고 있다. 1부 ‘러브’는 헤테로(이성애자)에 가까운 사랑을 노래했다면, 스미스가 은빛 드레스를 입고 부른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OST ‘키싱 유(Kissing you)’로 시작된 2부 ‘뷰티’에선 본격적으로 다양한 사랑의 관계를 펼쳐냈다. ‘레이 미 다운’을 거쳐 댄서들과 함께 게이·레즈비언·바이섹슈얼(양성애) 등의 풍경을 보여주며 왜 성인 인증을 해야 볼 수 있는 ‘19세 이상 관람가’인지를 확인시켜줬다.

2부 막바지에 흘러나온 영국 일렉트로닉 듀오 ‘디스클로저’의 ‘래치’, 미국 가수 도나 서머의 ‘아이 필 러브’의 몽환적인 사운드는 레이저와 어우러져 묘한 무대를 만들어냈고, 끝내 스미스는 막판에 상의를 탈의하면서 자신의 몸을 부끄러움 없이 드러냈다.

3부 ‘섹스’가 이날 공연의 화룡점정이었다. 유령 같은 천을 뒤집어쓰고 왕관을 머리 위에 올린 채 ‘글로리아’를 부른 스미스는 ‘퀴어 커뮤니티의 영웅’으로 통하는 마돈나의 ‘휴먼 네이처’ 커버 무대에선 엉덩이가 훤히 드러나는 T팬티에 망사 스타킹을 입고 자신은 자기 자신일 뿐이라고 항변했다. 그리고 마침내 논바이너리 퍼슨(nonbinary person)(샘 스미스)과 트랜스 퍼슨(trans person)(킴 페트라스)이 함께 부른 곡 중에서 처음 ‘그래미 어워즈’를 받는 기록을 쓴 ‘언홀리’로 공연의 대미를 장식했다.
스미스의 노출은 사실 관능에 가깝지 않다. 인체를 풍성한 양감으로 표현한 콜롬비아 출신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의 그림 속 인물을 연상케 하는 몸매를 지닌 스미스인데 그에게 노출은 자기 확인에 가깝다. 자신이 몸소 체험한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을 어떤 식으로든 무대화하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걸 열렬히 보여주는 듯하다. 그래서 성스러움이 가득했던 첫 내한공연 이상으로, 언뜻 불경한 것들로 가득했던 이번 공연이 거룩하게 느껴졌다.

독특한 의상 착용 등 스미스의 최근 몇 년 동안 행보에 대해 일부에선 혐오하고 희화화해 왔는데 ‘글로리아’ 투어는 거기에 대해 그로테스크하지만 용감한 회화적 풍경으로 답한다. 이전에 슈트에 갇혀 고급 발라드를 부르며 품격을 유지해왔던 스미스보다 마돈나를 넘는 파격적 의상을 입고 노래하는 스미스가 더 우아해보였다. 한층 푸근해진 인상의 그는 이번 내한공연에서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손키스를 날리기도 했다.

결국 자신은 타인이 해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라는 걸 보여준 셈이다. 스미스는 이날 공연 도중 이렇게 말했다. ”오늘 밤 위대한 시간, 경험을 줘서 고맙고 여러분은 자유를 가져가세요. 무엇보다 즐겁고 서로를 사랑하길 바라요.“

삶에 대한 서사는 우리 것일지라도 우리 뜻대로 쓰기 어렵다. 그 의미가 확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써내려갈 수 있기도 하다. 스미스는 노래,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그 경우의 수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그에게 음악, 사람이 있는 장소는 언제나 놀라운 풍경으로 변한다. 스미스가 이날 가장 많이 언급한 형용사 중 하나는 이거였다. ”인크레더블“(Incredible·믿을 수 없는). 스미스는 18일 같은 장소에서 한 차례 더 공연한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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