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풍경화처럼 펼쳐진 생명의 역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21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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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랜드/토머스 할리데이 지음·김보영 옮김·박진영 감수/520쪽·2만2000원·쌤앤파커스

“노스슬로프를 배회하던 말과 그 뒤를 쫓던 동굴사자에게 드넓은 스텝은 영원할 듯 보일 테지만 장구한 시간 규모에서 보면 영속성이란 환상이다. 얼음이 물러나면 비가 한 방울만 내려도 말들이 발굽을 힘차게 내딛던 딱딱한 땅은 이내 무너져내린다. 명멸하는 작은 불빛 하나에도 오로라는 사라진다.”

영국 국립자연사박물관 연구원이 지구 생명 역사의 주요 장면을 장대한 풍경화처럼 그려낸 책이다. 약 2만 년 전 신생대 플라이스토세의 알래스카에서 시작해 눈에 보이는 크기의 생물이 나타난 지 얼마 안 지난 5억5000만 년 전의 오스트레일리아 에디아카라 언덕까지, 시간을 거슬러가며 이야기를 풀어 간다.

2만 년 전엔 아일랜드의 대서양 연안부터 땅이 드러난 베링육교(지금의 베링해협)까지, 역대 최대 연속 생태계였던 ‘매머드 스텝’(매머드가 살기 좋은 춥고 건조한 초원 지역)이 존재했다. 큰 짧은얼굴곰은 뒷다리로 서면 어깨높이가 3m에 이르는 매머드를 1m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었다. 조랑말 같은 크기의 알래스카말이 서로 몸을 맞대며 추위를 달랬고, 아프리카 사자보다 10% 더 크고 덥수룩한 털이 있는 유라시아동굴사자가 이들을 노렸다.

매머드 스텝은 약 1만4500년 전 급속하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기후가 온난해지고 습도가 높아지면서 이탄(식물이 퇴적돼 분해된 탄소화합물) 습지가 늘어나 토양이 산성화된 것. 먹을 것은 적어졌고, 푹푹 발이 빠지는 웅덩이는 동물들의 이동을 어렵게 만들었다. 결국 당시 동물들 가운데 상당수는 화석과 인류가 그린 벽화로만 남았다.

책은 신생대의 6개 세(世·epoch)와 고생대와 중생대의 9개 기(紀·period)에 각기 한 장(章)씩을 할애한다. 유려한 문장으로 드러내는 과거의 모습은 그야말로 지금과는 ‘다른 세계(other lands)’다. 저자는 “멸종 뒤에도 생명은 복구되고 종 다양화가 뒤따른다.…종종 놀라울 정도로 다른 세상을 창조하지만 최소한 수만 년이 걸린다. 복구는 잃어버린 것을 대체할 수 없다”고 했다.

#아더랜드#생명의 역사#다른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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