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서 26∼29일 공연
美-英 등 세계서 맹활약 이용훈, 데뷔 20년만에 고국 무대 데뷔
한일 월드컵 개막식 연출 손진책, “새로운 푸치니 오페라 열 것”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식 총감독을 맡았던 연극계 거장 연출가 손진책(76)이 처음으로 오페라에 도전한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영국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 등 세계 최고의 오페라극장에서 주역으로 활동해온 테너 이용훈(50)이 국내 오페라 무대에 데뷔한다. 서울시오페라단이 26∼2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에서다.
세종문화회관 연습실에서 1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손 연출가는 “죽음의 도시가 삶의 도시로 바뀌는 드라마를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칼라프 왕자의 시녀 류가 죽음으로써 구원한 것은 투란도트 공주와 칼라프 커플뿐만 아니라 전 국가와 민중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투란도트’에서 냉혹하게 통치하는 투란도트 공주는 결혼 조건으로 수수께끼를 내고 칼라프 왕자가 이를 풀지만 결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칼라프는 공주가 자신의 이름을 알아내면 패배를 인정하겠다고 제안한다. 투란도트는 왕자의 이름을 말하라며 시녀 류를 고문하지만 류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투란도트는 칼라프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오페라에는 16∼18세기 이탈리아 전통극의 광대 캐릭터에서 따 온 왕실 신하 ‘핑·팡·퐁’이 등장한다. 손 연출가는 “세 신하는 본디 코믹한 캐릭터이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냉소적이고 기계적인 데다 권력 지향적이며 충성심이라곤 없이 개인의 목표만을 위해 달려가는 역할로 표현했다. 오늘날의 정치인을 떠올리게 하는 점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테너 이용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런던 로열 오페라를 비롯한 여러 무대에서 칼라프 역으로 120회 이상 출연했다. 한국인으로선 드물게 리리코 스핀토(서정적이면서 힘 있는)와 드라마티코(극적) 테너 영역에서 인정받고 있다.
데뷔 20년 만에 뒤늦게 국내 무대에 서게 된 데 대해 그는 “외국의 경우 3∼5년 일찍 출연 제안이 오는 데 비해 국내 무대는 공연 수개월 전에 제의를 받아 시간을 낼 수 없었다. 이번에는 마침 스케줄이 비는 2주 동안에 일정이 맞춰져 응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용훈은 내년 8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이 공연하는 베르디 ‘오텔로’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세계 오페라계의 실험적 연출 경향에 대해 그는 흥미로운 일화를 소개했다. “제가 출연한 ‘투란도트’는 대부분 전통적인 방식으로 연출됐는데 최근 독일 드레스덴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응용한 버전의 공연에 출연했죠. 줄다리기도 하고, 저는 동양인이어서인지 양궁도 하면서 난관을 뚫고 공주에게 도전하는 식이었어요. 한국 드라마의 힘을 실감했습니다.”
두 여성 주역인 투란도트와 류로 출연하는 소프라노 이윤정과 서선영은 자신의 배역을 색다르게 해석했다. 타이틀 롤인 투란도트 공주 역을 맡은 이윤정은 이탈리아 베로나 야외 오페라 축제와 베네치아 라페니체 극장 등에 주역으로 출연해 왔다. 그는 “메조소프라노로 출발했는데 소프라노로 데뷔한 역할이 투란도트였다”며 “이 역할로 100회 이상 무대에 섰다”고 밝혔다. “어린 소녀 투란도트가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어려운 과제였죠. 그래서 조상인 루링 공주의 비참한 희생을 강조하며 자신의 권력을 합리화한 겁니다. ‘보라, 순진한 남자는 나라를 지킬 수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지킨 거죠.”(이윤정)
류를 연기하는 서선영(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은 “류는 희생만을 위해 죽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칼라프를 향한 사랑의 표현으로 죽음을 택한 거죠. 류가 칼라프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 그것이었습니다.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사랑입니다.”
투란도트 역은 소프라노 김라희, 칼라프 역은 테너 신상근 박지웅, 류 역은 소프라노 박소영이 함께 맡는다. 진주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정인혁이 지휘봉을 든다. 5만∼15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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