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강의’ 책으로 펴낸 박희병
2년전 마지막 강의 입소문 나면서 청강생까지 가세해 토론-질문
“고전문학에 담긴 희로애락에 학생들 특히 공감하며 위안 얻어”
2021년 3월 박희병 서울대 명예교수(67)는 마지막 학부 강의를 열었다. 1996년부터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한 그는 그해 8월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었다. 과목명은 ‘한국고전문학사’. 고조선 단군신화부터 김소월(1902∼1934)의 시까지 한국 고전문학의 시작부터 끝을 다루는 만만치 않은 수업이었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수업은 화상으로 진행됐다.
이전 학기까지 약 30명이 듣던 이 수업은 박 교수의 ‘마지막 강의’라는 게 알려지면서 수강생이 61명으로 늘었다. 국문학과뿐만이 아니라 간호학과, 경영학과, 디자인학과, 기계공학부 등 전공도 다양했다. 청강생도 16명 참가했다. 매주 2회씩 75분간 예정된 수업은 번번이 시간을 넘겼다. 학생들은 토론과 질문을 쏟아냈다. 따분한 과목으로 여겨지는 고전문학 수업에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16일 출간된 ‘한국고전문학사 강의’(전 3권·돌베개·사진)는 그가 2021년 1학기에 진행한 32강의 수업을 묶었다. 신간에서는 향가, 고려속요, 시조 등 고전문학을 두루 다룬다. 학생들은 왜 고전문학에 매료된 걸까. 박 교수는 22일 전화 인터뷰에서 “대학생들이 현대문학만 좋아한다는 건 편견”이라고 했다.
“문학을 통해 인식의 눈을 키우고,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고전문학에 담긴 희로애락에 학생들은 특히 공감했습니다.”
그는 지식보단 인간에 방점을 두고 작품을 읽어 나간다. 학생들은 삶을 통찰한 옛 문장을 읽으며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조선 실학자 연암 박지원(1737∼1805)이 누나를 잃은 뒤 ‘큰누님 박씨 묘지명’에서 ‘외배 지금 가면 어느 때 돌아올꼬?/보내는자 쓸쓸히 강가에서 돌아가네’라고 통곡하는 모습엔 짙은 슬픔이 묻어난다. 고려 문호 이규보(1168∼1241)의 문장 ‘한 알 한 알을 어찌 가볍게 여기겠나/사람의 생사와 빈부가 달렸으니./나는 농부를 부처처럼 존경하네’(‘햅쌀의 노래’ 중)에선 당대 백성의 삶을 볼 수 있다.
박 교수는 “문학의 본령은 인간의 삶과 정신에 대한 탐구다. 작품에 깃든 마음의 궤적을 좇고 싶었다”고 했다. 박 교수는 “‘하늘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과 물은 균등하다’는 조선 실학자 홍대용(1731∼1783)의 ‘담헌서’의 한 구절도 인상적이다”며 “인간이 중심이 아니라 만물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지녔으면 좋겠다”고 했다.
역관 시인 이언진(1740∼1766)의 ‘호동거실’ 중 “서산에 뉘엿뉘엿 해 넘어갈 때/나는 늘 이때면 울고 싶어요./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어서 저녁밥 먹자고 재촉하지만”이라며 외로움을 토로한 시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중인 출신 문인의 빼어남을 엿볼 수 있다. 여성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소설 ‘완월회맹연’을 통해 고전문학 속 여성의 영향도 연구한다. 그는 “조선시대, 새로운 진리를 탐구하려는 지적 요구는 중인과 여성에게도 있었다”고 했다. 요즘 그는 어떻게 지낼까.
“문하생들과 함께 조선 문인 김시습(1435∼1493)의 작품을 읽고 있어요. 할 수 있는 건 공부뿐이니 계속 해나갈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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