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둥대서 외국인 석좌교수 근무,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의 소회
한국어로 한국문학 토론-발표… 한자 능숙해 고전 연구 뛰어나
美日서도 강의 ‘한국문학 전도사’… 희귀문헌 1654점 서울대 기증도
“중국 산둥대 한국어학과 학생들은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학생들만큼 한국문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습니다. 특히 한자에 능숙한 만큼 고전문학, 근대문학 연구에 뛰어나요.”
서울 종로구 문예지 ‘유심’ 사무실에서 24일 만난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75)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1983∼2012년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산둥대 학생들의 실력이 서울대 학생들과 비교해 전혀 밀리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산둥대 학생들은 한국어로 한국문학에 대해 토론하고 발표한다”며 “영어, 일본어에도 능통해 4개 언어로 소통하며 문학적 깊이를 더해 가고 있다”고 했다.
권 교수는 미국 하버드대 하버드옌칭연구소 초빙교수, 도쿄대 한국조선문화연구소 초청교수,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겸임교수로 전 세계를 돌아다녀 ‘한국문학 전도사’로 불린다. 그가 중국으로 향한 건 1992년 한국어학과를 설립한 산둥대가 ‘국제 동아시아연구원’(가칭) 설립을 추진하면서다. 권 교수는 “2026년 국제 동아시아연구원 개설을 목표로 올 7월부터 산둥대에서 외국인 석좌교수로 일하고 있다”며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문학, 언어, 문화에 대한 학술적 교류가 목표”라고 했다.
“한국과 중국 연구자들은 보는 관점이 달라요. 예를 들면 시인 이상(1910∼1937)의 작품을 한국 연구자들은 폐병에 시달린 성장 과정이나 건축학도라는 점에서 해석하죠. 중국 연구자는 이상의 작품을 일제식민지라는 당대 역사와 결부 짓더군요.”
권 교수는 중국 학생들이 근대 한국과 중국의 사상 교류에도 관심이 많다고 했다. 박은식(1859∼1925), 신채호(1880∼1936) 등 독립운동가들이 근대 중국의 개혁을 주창했던 량치차오(梁啓超·1873∼1929)의 변법론을 조선에 소개한 과정을 연구하는 식이다.
권 교수는 평생 모은 근현대 문헌 1654점을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25일 기증한다. 정지용(1902∼1950) 시집 ‘백록담’ 초판본, 이광수(1892∼1950) 소설 ‘무정’ 5판본, 염상섭(1897∼1963) 소설 ‘만세전’ 초판본을 비롯한 희귀 자료가 다수 포함돼 있다. 북한 주간지 ‘문학신문’도 창간호부터 1960년 12월 27일까지 기증됐는데 이는 국내 유일의 자료다. 고문헌 400점도 포함돼 있다.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고문헌이 기증된 건 1994년 이후 처음이다. 이를 모은 전시 ‘어느 국문학자의 보물찾기’는 25일부터 12월 15일까지 서울대 중앙도서관에서 열린다.
고가에 거래되는 희귀한 문헌을 왜 기증했을까. 속물적인 질문을 던지니 그는 눈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자식들은 문학에 관심이 없으니 물려줄 필요가 없잖아요. 평생을 서울대에 있었어요. 후배 연구자를 위해 자료를 받아준다니 제가 고맙고 영예로운 일이죠.”
1970년대 문학 평론을 시작한 그는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지난달 1일에는 문예지 ‘유심’을 재창간했다. 서울대 중앙도서관에서 25일 열리는 기증식에 참여하는 그는 28일 다시 중국으로 떠난다. 한국문학의 미래를 묻자 그는 진중히 답했다.
“한류를 방탄소년단(BTS)이나 드라마 등 대중문화에서만 찾지 마세요. 이미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문학을 연구하는 외국 학생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 학생들이 다음 한류를 이끌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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