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가을, 고택 거닐어볼까…관광공사 11월 추천여행지

  • 뉴시스
  • 입력 2023년 10월 26일 11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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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숨결이 서린 경기 남양주 ‘여유당’, 인천 근현대사 중심지 ‘인천시민애집’, 자세히 보아야 더 어여쁜 충남 ‘논산 명재고택’….

가을은 근현대사의 흔적을 따라 사색을 즐기고, 조선의 대학자 집에서 하룻밤 머무르기도 좋은 계절이다.

한국관광공사는 26일 ‘이야기가 있는 고택’이라는 주제로 11월 추천 여행지 5곳을 선정했다. 여유당, 인천시민애집, 명재고택을 비롯해 경남 함양 일두고택, 전남 구례 운조루 등으로, 너그럽고 포근한 풍경이 마음을 따스하게 하는 곳들이다.
◆정약용 숨결 서린 ‘남양주 여유당’

다산 정약용은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서 나고 자랐다. 이곳에 그의 숨결이 서린 여유당이 있다.

1800년 정조가 승하하자 정약용은 고향에 내려와 사랑채에 여유당(與猶堂) 현판을 걸었다. ‘조심하고 경계하며 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18년 동안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정약용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여유당에서 ‘목민심서’, ‘흠흠신서’ 등을 정리했다.

선생이 살던 생가는 1925년 대홍수로 떠내려가 1986년에 다시 세워졌다. 사랑채와 안채로 구성되며, 다산의 성품처럼 소박하다. 여유당 뒤 언덕에 정약용선생묘(경기기념물)가, 언덕 아래 선생이 쓴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이 있다.

여유당과 정약용선생묘가 자리한 정약용유적지를 여행할 때는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해보자. 배우 정해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정약용 선생의 흔적을 돌아볼 수 있다.

정약용유적지 건너편에는 실학을 주제로 꾸민 실학박물관이 있다. 다산생태공원은 팔당호를 시원하게 조망하는 곳으로, 반려동물과 산책도 가능하다. 레트로 감성이 물씬 풍기는 능내역이 가까우니 놓치지 말자.

◆격동기 근현대사 담긴 ‘인천시민애집’

인천항 인근, 자유공원 남쪽에는 고색창연한 ‘인천시민애(愛)집’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사업가가 저택을 지어 살던 곳을 인천시가 매입, 한옥 형태 건축물을 올리고 시장 관사로 활용했다. 인천시청이 이전한 후에는 인천역사자료관으로 쓰이다가, 2021년 7월 재정비를 마치고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개방됐다.

인천시민애집은 크게 세 공간으로 나뉜다. ‘1883모던하우스’는 과거 시장 관사를 개조한 근대식 한옥이다. 일본식 저택이 있었을 때 모습을 간직한 ‘제물포정원’이 그 주변을 감싼다. 경비동은 인천항과 개항로 주변을 조망하는 ‘역사전망대’로 이용하고, 내부는 전시관 역할을 한다.

인천시민애집 주변으로 개항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 많다. 개항기 서양인이 사교 모임을 하던 구 제물포구락부(인천유형문화재) 건물이 대표적이다. 대불호텔전시관에는 한국 최초 서양식 호텔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전국 각지에서 활동한 작가들의 근대문학 작품을 한눈에 살펴보고 싶다면 한국근대문학관을 추천한다.

◆자세히 봐야 더 어여쁜 논산 명재고택

논산 명재고택(국가민속문화재)은 평생 벼슬을 사양하고 학문 연구와 후대 교육에 전념한 조선 대학자 명재 윤증의 집이다.

보존 상태가 양호한 조선 양반 주택의 가치에 실용성과 과학적 원리가 돋보이는 한옥으로 꼽힌다. 미닫이와 여닫이 기능을 합친 안고지기를 활용한 사랑채, 일조량과 바람의 이동을 고려한 안채와 광채 배치 등 선조의 지혜가 돋보인다.

안채로 들어가는 문 뒤에 내외 벽을 설치하고 벽 아래 틈을 둬 안채 대청에서 방문객의 신발을 보고 안주인이 대비할 수 있도록 한 점도 눈에 띈다. 인공 연못, 장독대, 고목 등이 운치를 더한다. 후손이 거주하고 있어 지정된 장소 외에는 출입할 수 없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오후 4시(하절기 오후 5시까지, 명절 연휴 휴관), 관람료는 없다.

논산 돈암서원(사적)은 조선 중기 정치가이자 예학 사상가 사계 김장생을 기리며 건립했다. 현종 때 사액서원(조선시대 왕으로부터 서원명 현판과 노비·서적 등을 받은 서원)이 됐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한국의 서원’으로 등재된 9곳 중 하나다. 인근 연산역에서 기차문화체험관과 연산역 급수탑(국가등록문화재)을 구경하고, 옛 곡물 창고가 복합 문화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한 연산문화창고에 들러도 좋다.

◆정여창 가문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함양 일두고택

함양 일두고택(국가민속문화재)은 ‘동방오현’에 오른 성리학의 대가 일두 정여창의 집이다.

현재의 고택은 정여창이 세상을 뜨고 약 1세기가 지나 건축됐다. 입구 솟을대문에 정여창 가문이 나라에서 받은 정려 5개가 있다. 사랑채에는 정여창의 후손이 사는 집이란 사실을 말해주는 문헌세가(文獻世家) 편액이 걸렸고, 그 뒤 방문 위에는 충효절의(忠孝節義)라고 커다랗게 쓴 종이가 붙었다.

누마루에서는 마당에 조성한 석가산(石假山) 풍경이 보인다. 천장 모서리에도 탁청재(濯淸齋) 편액이 걸렸다. ‘탁한 마음을 깨끗이 씻는 집’이란 뜻이다. 사랑채 옆으로 난 일각문을 지나면 여성의 공간인 안채로 연결되고, 곡간과 정여창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 차례로 나온다.

일두고택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함양 남계서원(사적)은 정여창이 세상을 떠나고 그를 기리는 지역 선비들이 세웠다. 남계서원 바로 옆에 문민공 김일손을 추모하는 함양 청계서원(경남문화재자료)이 자리한다. 함양박물관을 방문하면 함양군의 역사와 유물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품이 너른 평온한 집, 구례 운조루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 사는 집’이란 뜻을 담은 구례 운조루(雲鳥樓, 국가민속문화재)는 너그럽고 포근한 고택이다.

1776년(영조 52) 류이주가 낙안군수를 지낼 때 지은 집이다. 250년 가까이 잘 보존된 외관은 물론, 고택에 스민 정신이 면면히 전해온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류씨 집안은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새긴 뒤주에 쌀을 채워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이 가져갈 수 있게 했다.

사랑채와 안채, 행랑채, 사당, 연지로 구성된 고택은 규모가 제법 크지만 화려한 장식 없이 소박하다. 부드러운 산세가 한눈에 들어오는 사랑채 누마루는 운조루의 백미로, 문인들이 풍류를 즐긴 곳이다. 수분실(隨分室)이라는 현판을 걸어 절제 있는 삶을 지향하고, 굴뚝은 낮게 만들어 이웃을 배려했다.

구례는 맑고 깨끗한 섬진강이 흐르는 도시다. 섬진강어류생태관에서 다양한 민물고기와 멸종 위기종인 수달(천연기념물) 한 쌍을 만날 수 있다. 매월 끝자리 3·8일에 여는 구례5일시장은 갖가지 주전부리를 파는 청년점포가 생기를 더한다. ‘2023~2024 한국관광 100선’에 든 천은사상생의길&소나무숲길에서 숲과 저수지를 따라 3km 남짓 걸으며 가을 정취와 깊은 여운을 느껴봐도 좋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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