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 스님 제자 원택 스님
“스님의 ‘책 보지 말라’는 말씀은… 화두에만 집중해 수행하라는 뜻
장서 1만권… 성경 등 두루 읽어”
내달 성철 스님 30주기 법회 개최
“마음을 다해 모셨건만 돌아보니 큰스님(성철 스님)은 보아도 보지 못한 것 같고, 만나도 만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23일 만난 원택 스님은 스승에 대한 그리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성철 스님 생전 21년, 입적 후 30년을 시봉(侍奉)한 원택 스님은 불교계의 유명한 효 상좌(제자)다. 스님이 이사장으로 있는 백련불교문화재단은 성철 스님 30주기(11월 3일)를 맞아 각종 학술 세미나와 4만8000배 참회 법회, 추모 다례 법회 등 다양한 행사를 연다.
―큰스님 가신 지가 벌써 30년이 지났습니다.
“세월이 참 무상하지요. 1971년 친구 따라간 경남 합천 해인사 백련암에서 처음 뵌 게 엊그제 같은데…. 그 후 다시 찾아뵀을 때 큰스님이 몇 마디 묻더니 ‘니 고마 중 돼라’고 하셨어요. 그 한마디에 이듬해(1972년) 출가했지요. 아직도 큰스님 목소리가 귀에 성한데 돌아보니 훌쩍 그렇게 지났습니다.”
―성철 스님의 장서가 1만여 권이나 되더군요. 세상에는 성철 스님의 “책을 보지 말라”란 말이 회자하는데 의외입니다.
“‘책을 보지 말라’는 말은 일반인들에게 한 말이 아니고 선방에서 정진하는 수좌들에게 한 말이죠. 한눈팔지 말고 화두에만 마음을 모으라는 의미입니다. 오히려 큰스님께서는 ‘불립문자(不立文字)는 최상급 경지에서나 하는 말이다. 부처님이나 조사 스님의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고 제멋대로 생각하고 살면 그것이 외도고 악인이 되기 쉽다’고 하셨습니다.”
―그 시절에는 1만 권을 소장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동서양 철학책은 물론이고 신구약 성경, 일본 역대 조사들의 어록과 일본 불교학자들의 책 등 굉장히 방대하게 두루 읽으셨지요. 큰스님은 책 심부름을 시킬 때 제목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항상 ‘어느 책꽂이, 몇 번째 칸, 오른쪽에서 몇 번째 책을 가져오라’고 하셨지요. 읽지 않고 소장만 한 책이라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생전 21년, 입적 후 30년을 시봉했는데 여전히 성철 스님을 보아도 보지 못한 것 같고, 만나도 만나지 못한 것 같다고요.
“중국 남북조시대 양무제(502∼549)는 달마대사 열반 후 추모비를 세웠습니다. 거기에 ‘보고도 알아보지 못했고, 만나고서도 만나지를 못했구나. 예나 지금이나 후회하고 또 한이 될 뿐이다’라고 비문을 새겼지요. 달마대사를 알아보지 못한 어리석음을 한탄한 것입니다. 제 마음도 그렇습니다. 떠나신 지금 돌아보니 큰스님이 이룬 도력은 분명했는데, 20여 년을 옆에서 모시고도 제가 마음이 어두워 아직도 깨치지 못하고 언제 깨칠 수 있을지 답답하기만 하지요.”
―큰스님의 가르침 중에 요즘 사람들이 새겨들었으면 하는 게 있는지요.
“큰스님은 삼천 배를 한 신도는 무척 자상하게 대해주고, 다 못 한 사람은 앞에 오지도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삼천 배를 하지 않으면 만나주지 않는다는 불평도 나왔지요. 큰스님은 늘 ‘나를 찾아오지 말고 부처님을 찾아오십시오. 나를 찾는 것은 아무 이익이 없습니다. 기왕 왔으니 부처님께 자기 자신이 아닌 모든 중생을 위해 삼천 배를 하십시오’라고 하셨습니다. 삼천 배를 하고 나면 누구나 심중에 어떤 변화가 옵니다. 큰스님이 하신 말씀이야 많지만 이런 뜻을 가슴에 지니고 살다 보면 무언가 밝은 햇살을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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