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대표 김수연 목사
책 좋아하던 6세 아들 사고로 잃고, 1987년부터 도서관 짓기 시작해
농어촌 찾는 ‘책읽는 버스’도 운영… “아이들 위해 돈 기부할수도 있지만
생선 주기보다 낚시법 가르쳐야”
“1984년 12월 19일이었어요. 둘째 아들 나이는 만 6세 80일이었습니다.”
서울 강남구 정다운도서관에서 29일 만난 김수연 목사(77·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대표)는 39년 전 사고 날짜를 정확히 기억했다. 당시 그의 집이 있던 아파트에 불이 났다. 집에 홀로 있던 둘째 아들은 베란다로 뛰어가 에어매트가 깔린 밖으로 몸을 던졌지만 크게 다쳤다. 방송기자로 김포공항에서 취재하던 그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렸다. 하지만 아들은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사고 며칠 전 그의 옆에서 동화책을 읽던 아이 모습이 떠올랐다. “책은 얼마든지 사준다”고 했지만 아이와 도서관 한번 가보지 못했다. 직업 특성상 야근하기 일쑤였고 주말에도 출근했다. 후회스러웠다. 그는 기자를 그만두고 목사가 됐다. 아들이 세상을 떠난 뒤 종교에 삶을 의탁한 것. 김 목사는 이날 허공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살아있으면 40대가 됐겠지만, 내 가슴속에서 아들은 여전히 만 6세 80일에 머물러 있어요.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을 보면 둘째 아들이 생각납니다.”
그는 1987년부터 36년간 전국에 도서관을 짓고 다녔다. 그가 만든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이 설립하거나 운영하는 도서관은 392개에 달한다. 그가 사재를 털거나 후원을 받아 세운 학교마을도서관이 262개, KB국민은행 후원으로 세운 작은도서관이 113개, 강남구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구립도서관이 17개다. KB국민은행 후원을 받아 농어촌과 지역 축제 현장을 찾는 이동형 도서관인 ‘책 읽는 버스’도 운영한다.
이날 그를 만난 정다운도서관은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이 2004년부터 강남구의 위탁을 받아 운영하는 구립도서관이다. 그는 도서관을 채운 수십 명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속삭였다. “실의에 빠져 있던 내가 할 수 있는 건 도서관을 짓는 일이었어요. 세상을 떠난 둘째 아들처럼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서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도서관을 세워준다며 찾아갔지만 “책 안 산다”고 문을 걸어 잠그는 초등학교도 있었다. “도서관을 설립하지 말고 현금을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한때는 자존심이 상해서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문화적으로도 성숙한 나라가 되기 위해선 독서운동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동네 곳곳에 있는 작은 도서관이야말로 아이들이 책과 가까워질 수 있는 곳”이라며 “국가 발전의 속도는 국민의 독서량에 비례한다”고 했다.
“돈을 기부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아이들이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선 독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에게 생선(돈)을 주기보단 독서를 통해 낚시(인생을 사는 법)를 가르쳐 주고 싶었죠. 젊을 때는 ‘책 전도사’였는데 나이 들어 머리가 하얘지니 애들이 ‘책 할아버지’라고 부르더군요. 하하.”
그는 강남구 한길교회 담임목사다. 전국에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주중에 뛰어다니고, 주말이면 자택이 있는 강원 평창군에서 상경한다. 이날도 그는 예배를 끝내고 부랴부랴 도서관으로 달려왔다. 동영상을 즐겨 보는 시대, 독서의 의미를 물었다. 그는 책에 푹 빠진 아이들을 가리키며 자신 있게 답했다.
“살다 보면 두렵고, 무서운 일과 마주칩니다. 그럴 때면 저는 다른 사람의 경험과 지혜가 담긴 책에서 길을 찾아요. 고통이 가득한 인생을 산 뒤에야 이를 깨달았죠. 하지만 책을 읽는 이 아이들은 다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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