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와 17세기 네덜란드로 떠나는 시간 여행[영감 한 스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10일 10시 00분


대구미술관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 전시 전경. 사진: 대구미술관 제공
대구미술관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 전시 전경. 사진: 대구미술관 제공
오늘은 대구미술관에서 10월 31일 개막한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전을 소개합니다.

이 전시는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 판 레인(1606~1669)의 판화를 모은 대규모 전시입니다. 최근에는 판화도 기술적 진화로 하나의 장르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지만, 17세기 판화라고 하면 사이즈도 작고 색채도 제한적입니다.

그래서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자고 생각하며 전시를 방문했는데, 우선 작품 수가 120점에 달했습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렘브란트 에칭이 290~300점이라고 하니, 전체의 절반 정도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인 셈입니다.

전시를 담당한 이정희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사로부터 자세한 전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렘브란트의 DNA는 에칭에 있다”
우선 어떻게 이런 전시가 가능했을지가 저는 가장 궁금했고, 그것을 질문했습니다.

대구미술관에 전시된 모든 작품은 네덜란드 렘브란트순회재단(Stichting Rembrandt op Reis)가 소장하고 있는 것인데요. 이 재단을 만든 얀 멀더스 대표는 사업가 출신으로, 렘브란트 판화를 하나씩 모으면서 현재는 약 220점을 갖고 있습니다.

멀더스 대표는 사업만 한 것이 아니라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서도 근무했던 문화 예술인입니다. 어느 날 우연히 누군가 보여준 렘브란트의 판화 작품과 동판을 보고 반해 컬렉션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렘브란트의 DNA가 여기에 들어 있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지금은 80대를 바라보고 있는 멀더스 대표는 자신이 갖고 있는 판화를 세상에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재단을 만들고, 전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그르노블 미술관, 암스테르담 렘브란트 하우스 뮤지엄 등에 소장품을 대여해주고 있습니다.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 전시 전경. 보시다시피… 작품 사이즈는 작습니다. 사진: 대구미술관 제공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 전시 전경. 보시다시피… 작품 사이즈는 작습니다. 사진: 대구미술관 제공
이번 대구미술관 전시는 벨기에 앤트워프의 판화 미술관 ‘뮤지엄 드 리드’가 렘브란트순회재단과 협업해 올해 초 열었던 전시의 확장판입니다. 벨기에에서는 84점을 전시했는데, 대구미술관에서는 120점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 사연은 이렇습니다.

“대구미술관 전시 공간이 크다 보니 84점으로는 부족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소장자에게 요청했더니 자신이 가진 컬렉션 중에 얼마든지 마음대로 선택해도 좋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렘브란트 에칭은 워낙 오래전부터 연구가 되어 왔기 때문에, 그 주제가 대략 6~7개로 나뉩니다. 이를 기준으로 이번 전시는 7개 카테고리를 되도록 골고루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구성했습니다.”


시간 여행 떠나는 듯 생생한 장면들
병자를 고치는 예수, 1648년경, 27.8×38.8cm, 사진: 대구미술관 제공
병자를 고치는 예수, 1648년경, 27.8×38.8cm, 사진: 대구미술관 제공
전시장에 들어서면 멀더스 대표가 ‘렘브란트 DNA가 있다’고 느낀 이유를 이해하게 됩니다. 전시는 크게 △자화상 △거리의 사람들 △성경 속 이야기 △장면들 △풍경 △습작 △인물·초상 등 7개 분류로 나눠지는데요. 여기서 물론 가장 잘 알려진 명작은 성경을 주제로 한 것들이지만, 눈길을 끄는 것은 자화상과 거리의 사람들 부분입니다.

우선 자화상 코너에서는 우리가 유화로 만나는 멋진 모습의 렘브란트뿐 아니라, 헝클어진 머리, 쩍 벌린 입, 그늘 아래 어두운 얼굴 등 다양한 표정과 형태를 한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렘브란트가 이런저런 표정을 지어보면서, 사람의 얼굴을 탐구하는 흔적을 아주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습니다.

덥수룩한 긴 머리의 자화상, c. 1631
덥수룩한 긴 머리의 자화상, c. 1631
렘브란트, 돌난간에 기대어 있는 자화상, 1639
렘브란트, 돌난간에 기대어 있는 자화상, 1639
소리치는 듯 입을 벌린 자화상. 1630.
소리치는 듯 입을 벌린 자화상. 1630.
모자를 쓰고 스카프를 한 어두운 얼굴의 자화상. 1633.
모자를 쓰고 스카프를 한 어두운 얼굴의 자화상. 1633.
이것이 확장된 버전은 바로 거리의 사람들입니다. 렘브란트는 거리로 나아가 눈먼 바이올린 연주자, 지팡이를 짚은 농부, 떠돌이 가족, 의족을 한 거지 등 현실의 풍경을 사진 찍듯 포착하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종이 위에 찍힌 판화지만, 생생한 묘사 속에 실제로 17세기 네덜란드의 어느 거리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시간 여행을 하는 것처럼 말이죠.

나무 의족을 한 거지, 1630년경. 사진: 대구미술관 제공
나무 의족을 한 거지, 1630년경. 사진: 대구미술관 제공
눈먼 바이올린 연주자. 1631년.
눈먼 바이올린 연주자. 1631년.
떠돌이 농부 가족. c. 1652년.
떠돌이 농부 가족. c. 1652년.
이 작품들에 푹 빠져서 너무 가까이 다가서다 전시장 지킴이 분에게 저지받기도 했는데요. 이번 전시는 작은 작품 사이즈를 고려해 특별해 경계선을 치지 않았다고 이 학예사는 설명했습니다.

전시 준비 과정에서 저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돋보기를 놓아야 하나 싶고, 또 작품과 관객의 안전을 헤쳐서도 안 되니까요. 그래도 바닥에 유도선만 그리고 과하게 제지하지 않기로 했는데, 이번 주말 전시장을 돌아보니 관객분들께서 스스로 조심하면서 감상하는 모습에 안심했습니다.
이렇게 렘브란트의 자화상과 거리의 사람들에 푹 빠져서 보다 뒷부분에 이르면, 그가 어떻게 성경 속 주제를 교리적 차원을 넘어 인간의 이야기로 묘사했는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이정희 학예사는 ‘착한 사마리아인’을 예로 들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 1633, 25.7×20.8cm. 사진: 대구미술관 제공
착한 사마리아인, 1633, 25.7×20.8cm. 사진: 대구미술관 제공


이 장면을 만약 다른 작가라면 여관 주인에게 돈을 건네는 것만 부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뒤쪽 배경에 여자가 우물에서 물을 긷고, 앞쪽에는 강아지가 볼일을 보는 모습이 나오죠. 흔히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렘브란트는 그것을 넘어 카메라로 찍듯 세상을 봤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벨기에 전시도 이런 부분을 강조했고, 저도 공감해 ‘17세기의 사진가’라는 전시 명을 붙이게 됐습니다.
전시장에서는 렘브란트가 다양한 기법을 활용한 흔적, 또 에칭 판화를 만드는 방법을 담은 영상 등도 볼 수 있습니다. 에칭의 매력에 푹 빠져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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