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독립전쟁-남북전쟁 당시 전비 조달 위해 찍은 돈에서 유래
기축통화로서 위력 갖기까지… 달러 역사를 시간 순으로 살펴
◇달러의 힘/김동기 지음/656쪽·3만3000원·해냄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발표하는 날엔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연준이 부여하는 달러의 가치에 지구 반대쪽 나라에서 수백만 명의 일자리가 왔다 갔다 한다.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달러의 힘’이다.
국제정치·경제전문가로 앞서 ‘지정학의 힘’(아카넷)을 펴냈던 저자가 달러의 탄생과 패권 구축 과정을 다뤘다.
달러의 등장은 전쟁과 직결돼 있다. 영국 식민지 시대 초기 미국에선 옥수수나 비버 모피, 담배 등이 물품화폐로 쓰였다. 영국은 미국이 주화를 주조하는 걸 막았다. 화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은 차용증서인 ‘신용증권’을 발행해 지폐처럼 통용하기도 했다. 그러다 독립전쟁이 일어나자 미국 대륙의회는 전비를 조달하기 위해 ‘콘티넨털 달러’를 발행했다. 이 화폐는 금, 은과 바꿔준다고 명시됐지만 사실 재원이 없었던 데다, 영국이 독립군에 타격을 주려고 위조해 뿌리면서 가치가 폭락했다. 전쟁에서 이긴 미국은 화폐 발행권을 각 주가 아닌 연방의회가 갖도록 하고 달러를 단일 통화로 발행했다. 이를 통해 미국은 순식간에 세계 최대의 자유무역지대로 떠올랐다. 당시 1달러는 금 1.6g에 해당했다.
오늘날과 같이 미국 정부에 대한 신뢰만으로 가치를 갖는 달러는 남북전쟁으로 등장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취임할 당시 연방정부의 재정 상태는 엉망이었다. 링컨은 전비를 조달하기 위해 불환지폐(금화, 은화 등과 태환이 불가능한 화폐)를 발행하고 법정통화로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지폐가 국가 권력에 의해 가치를 지니게 된 것이다. 이 화폐는 뒷면이 녹색이라서 ‘그린백’이라고 불렸다. 1879년 금 태환이 재개되면서 그린백은 소멸했지만 오늘날의 달러 역시 그린백의 후예라고 할 수 있다.
책은 이 밖에도 중앙은행의 부재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한 연준의 등장,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과 달러가 국제 금융의 중심에 서는 과정, 영국의 유로달러시장 발명, 1971년 달러의 금 태환 정지, 달러 기반의 신용 확장과 금융 혁신 등 달러의 역사를 시간 순으로 살핀다. 1997년 한국 외환위기에도 한 장을 할애했다.
기축통화인 달러의 위력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국제 달러 결제는 대부분 미국 은행 시스템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미국은 외국인에게도 손쉽게 달러 거래를 금지할 수 있다. 굳이 유엔을 통해 제재할 필요도 없다. 자산을 동결하고, 거래와 송금을 금지하는 미국의 금융 제재는 치명적이다.
달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중국은 위안화 결제를 확대하면서 달러 패권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아직 멀었다. 중국은 정치와 법, 규제 환경 면에서 투자자와 각국 중앙은행의 신뢰가 부족하다. 세계의 안전 자산은 여전히 미국 국채 같은 달러 자산이다. 이는 미국이 갖춘 제도와 금융시장 때문이다. 저자는 “통화 패권은 글로벌 세력 균형의 핵심적인 열쇠”라고 했다.
그러나 미국은 소비를 줄이고 수출을 늘리는 대신 더 많은 달러를 ‘수출하며’ 국제수지 적자를 메우고 있다. 저자는 “달러 체제는 대안이 없어서 지속되는 차선의 시스템일 뿐”이라며 “다른 화폐가 달러를 위협하는 상황이 된다면 미국의 정책 실패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꼼꼼한 자료 조사가 눈에 띄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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