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영 시인(37·사진)의 첫 시집 ‘오믈렛’(문학동네)이 출간 당일인 지난달 24일 중쇄를 찍었다. 온라인 예약 판매에 주문이 밀려들며 오프라인 서점에선 초쇄본을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출판사도 “우리도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다”고 할 정도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임 시인은 2020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등단작부터 일부 심사위원들로부터 “이게 시야?”(문학평론가 박상수)라는 반응이 나오는 등 논쟁적인 작품으로 화제를 불러모았다. 당시 출품 시 9편 중 8편의 제목이 ‘아침’으로 같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어떤 시는 “모자 하나가 멀리 호수 위에 둥둥 떠 있는 걸 보았다”는 문장으로, 또 어떤 시는 “새 아이보리 비누를 뜯어 세수했다”는 문장으로 시작됐다. 매일 새로운 아침이 오고 매일 다른 일기를 쓰듯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아침’이라는 제목의 시로 반복됐다. 그게 바로 일상이고, 그게 바로 시라는 듯이.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10일 만난 임 시인은 “매일 쓰는 일기와 시의 세계가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는 걸 깨달으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는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의 진실을 적확하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이론을 전공한 그는 2019년 한 문화원에서 처음 시작(詩作) 수업을 들었다. 그는 “그 전까진 매일 글을 끄적이면서도 시를 쓰고 싶다는 마음을 외면했다”고 했다. “시를 쓰는 자의식을 갖는다는 게 너무 비대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신인이지만 국립현대미술관과 경기도미술관에서 현대미술 작가 이안리와 ‘콜렉티브 안녕’이란 이름으로 시와 그림을 함께 제작하는 프로젝트를 선보인 이력도 있다.
임 시인의 작품 가운데는 타인의 입장이 되어 쓴 이야기가 적지 않다. 시 ‘만사형통’에선 누군가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베풀려 했던 ‘나’의 마음을 거절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따뜻한 거 먹이고 싶다. 삼겹살에 묵은지 지글지글 구워서 쌈 싸주고 싶다. 그러나 두 사람은 외투에 냄새 배는 게 싫다며 사양하였고, 나는 마침내 거절을 쥐고 다른 잠 속으로 사라질 수 있었다.” 임 시인은 “‘그들’이 수혜자로만 그려지는 게 아니라 자기 목소리를 내는 존재이길 바랐다”고 했다.
시 ‘꿈 이야기’에선 4월의 어느 날 사고로 죽은 소녀의 이야기가 꿈과 현실을 오가며 펼쳐진다. 그는 “시에 현실과 환상, 삶과 죽음을 뒤섞는 까닭은 그것이 저에게 일말의 진실이기 때문”이라며 “삶 가운데 죽음이 있고, 꿈은 현실을 반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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