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에만 5년… ‘예술가’ 틀 거부한 ‘인간 백남준’의 삶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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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다룬 첫 다큐 ‘달은…’ 내달 개봉
배우 스티븐 연, 내레이션 맡아

다큐멘터리 영화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에서 백남준이 자석을 이용해 텔레비전 화면을 뒤틀고 있다. 엣나인필름 제공
다큐멘터리 영화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에서 백남준이 자석을 이용해 텔레비전 화면을 뒤틀고 있다. 엣나인필름 제공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 ‘한국이 낳은 위대한 아티스트’ ‘괴짜 예술가’….

백남준(1932∼2006)을 수식하는 표현은 많지만 그 어떤 것도 ‘인간 백남준’을 적확하게 묘사하지는 못한다. 그의 눈빛과 표정, 말투와 몸짓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인간 백남준’에게 다가가는 다큐멘터리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가 다음 달 6일 개봉한다. 그의 생애를 다룬 첫 영화로, 제작에만 5년이 걸렸다.

“남준은 약 20개 언어를 하는데 실력이 형편없었어요. 전혀 못 알아 듣겠어요.(웃음)”

영화는 백남준의 조카 하쿠타 겐의 목소리가 나온 후 영어와 독일어, 프랑스어, 심지어 한국어까지 어눌하게 말하는 백남준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미국 휘트니미술관장을 지낸 데이비드 로스는 “그의 말을 듣는 법을 배우기까지 대화가 어려웠다”고 회고하며 웃는다. 백남준은 인터뷰 중 상대방을 향해 “제 영어를 알아듣는다니 정말 뜻밖”이라며 천진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서 풀밭을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화분에 심겨진 꽃의 향기에 심취하기도 한다.

‘기인(畸人)’ 같은 모습 뒤에는 번뜩이는 천재성과 혁명성이 있었다. 그는 ‘예술가’라는 이름에 갇히기를 원치 않았다. 그는 “틀에 박힌 예술에는 관심이 없다. 내 관심은 온 세상에 있다”고 말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백남준의 일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실험 음악가 존 케이지(1912∼1992)였다. 그는 1958년 독일 뮌헨에서 케이지의 전위적인 퍼포먼스를 보고 “공연이 끝날 무렵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그날 밤 내 인생이 시작됐다. 그는 내게 ‘파괴 면허’를 줬다”고 말했다.

케이지 공연을 본 후 백남준은 익숙한 방식을 탈피해 과감한 시도를 시작했다. 그 무렵 그의 관심이 텔레비전으로 옮겨갔다. 그는 영상을 일방향으로 전송하는 텔레비전의 원리를 전복하기 위해 브라운관에 자석을 갖다 대고, 텔레비전을 부수고, 개조했다.

영화는 백남준의 예술관에 집중하기보다는 그가 처음 대중으로부터 받은 저항, 그럼에도 꿋꿋이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갈 때의 표정 등을 생생히 보여준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예술가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백남준이 마음에 남는다. 한국계 미국인인 어맨다 김이 감독을, 할리우드 배우 스티븐 연이 내레이션을 맡았다. 주제곡은 백남준과 생전 친분이 있었던 사카모토 류이치(1952∼2023)가 작업했다.

#백남준#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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