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 “향후 활동에 의욕 왕성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일 벌어져”
조계종 “자화장으로 경각심 남겨”
5일간 종단장… 3일 조계사 영결식
대한불교조계종이 지난달 29일 경기 안성 칠장사에서 발생한 화재로 입적한 전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자기 몸을 태워 부처님 앞에 바치는 ‘소신공양(燒身供養)’을 했다고 밝혔다. 자승 스님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자승 스님의 장례는 5일간 종단장으로 치르며 영결식은 3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다.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겸 대변인인 우봉 스님은 30일 서울 종로구 조계종 총무원에서 브리핑을 열고 “자승 대종사는 종단의 안정과 전법도생(傳法度生·부처님 말씀을 전해 중생을 올바른 길로 인도)을 발원하며 소신공양, 자화장(自火葬·스스로 화장)을 하심으로써 모든 종도들에게 경각심을 남기셨다”고 밝혔다. 또 “자승 대종사는 살아생전 ‘생사가 없다 하나 생사 없는 곳이 없구나.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으니 인연 또한 사라지는구나’라는 열반송을 남기셨다”고 말했다.
우봉 스님은 “종단은 진우 총무원장을 장의위원장으로 하는 장례위원회를 구성하고, 종단 규정에 따라 (입적일을 기점으로) 5일간 종단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분향소는 이날 오후부터 조계사 및 전국 교구본사, 자승 스님이 회주로 있던 서울 강남구 봉은사, 자승 스님의 출가 본사인 경기 화성 용주사 등에 마련됐다. 3일 오전 10시 조계사에서 영결식을 한 뒤 용주사로 이동해 다비장을 치른다.
자승 스님이 세수 69세, 법랍 51세로 입적한 이튿날인 이날 조계종은 안팎으로 충격에 휩싸였다. 우봉 스님은 브리핑을 시작하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스님들과 직원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며 탄식했다. 한 조계종 관계자는 “늘 수행하던 사람을 돌려보내고 자승 스님이 직접 운전해 (칠장사에) 갔다고 하니 스스로 선택한 것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바로 이틀 전까지 향후 활동에 왕성한 의욕을 보인 분이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승 스님은 입적하기 이틀 전인 27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에서 열린 불교계 언론사 간담회에서 “앞으로 10년간은 대학생 전법에 모든 열정을 쏟을 것”이라고 밝히는 등 향후 행보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이어 일각에서 거세게 반발하는 동국대와 중앙승가대의 통합도 강조했다. 당시 자승 스님은 “앞으로 2, 3년 내에 중앙승가대에 신입생이 없을 것이고, 그렇게 폐교가 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동국대와 중앙승가대가 한 몸이 돼 중앙승가대를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자승 스님은 앞서 10월 31일 열린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간담회에서도 “달라이 라마를 초청해 20만 청년불자가 동참하는 대법회를 서울에서 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한 조계종 관계자는 “올해 3월 말 43일간 1167km를 걷는 상원결사 인도·네팔 순례 대장정을 마치고 귀국해 열린 회향식에서 자승 스님이 환하게 웃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고인은 ‘전법 없는 불교는 죽어가는 불교’라며 인사도 ‘성불하십시오’ 대신 ‘부처님 법을 전합시다’로 바꾸자고 했던 분”이라고 추모했다.
불교계 일각에서는 “자승 스님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려 입적을 선택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자승 스님이 2009년부터 8년간 제33, 34대 총무원장을 연임했고 현재까지 조계종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활발하게 활동한 점을 고려할 때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오랜 기간 조계종 중심에 서 온 스님이 여러 비판을 받으며 부담을 느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자승 스님과 교류했던 한 스님은 “최근 자승 스님이 심적으로 괴로워하고 때로 우울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한편 30일 오후 조계사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최응천 문화재청장 등이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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