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키워드로 지구 생성부터 짚어
기원전 200년 온난습윤한 기후
농업생산량 높여 로마 번영 이끌고, 16세기 소빙기가 마녀사냥 부추겨
◇기후변화 세계사(전2권)/피터 프랭코판 지음·이재황 옮김/966쪽·4만8000원·책과함께
‘한국 역사상 최고 속도를 기록한 강우(시간당 150mm)’, ‘유럽의 기록적인 폭염’, ‘오스트레일리아의 현대사에서 가장 습한 해’….
영국 역사학자인 저자가 2022년 여름 전 지구적으로 발생한 이상 기후 현상의 대표로 꼽은 사례 중에는 한국의 기록적인 폭우도 포함된다. 기후 위기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건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저자는 기후 위기의 원인을 제대로 짚어야 한다며 그 방법을 역사에서 찾는다.
영국 옥스퍼드대 세계사 교수인 저자는 전 세계적으로 200만 부 이상 판매된 ‘실크로드 세계사’(2015년)에서 실크로드와 교류라는 키워드를 통해 통합적인 세계사의 진수를 보여준 바 있다. 이번에는 ‘기후’라는 관점으로 지구의 생성부터 현대까지 세계 역사를 짚는다. 오대양 육대주를 넘나들고,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버무리며 기후에서 촉발된 세계사의 흐름을 전개해 나간다.
기후는 시대를 초월해 늘 위기이자 기회의 원인이었다. 우선 기회가 된 경우를 보자. 기원전 200년 무렵부터 서기 150년까지 350여 년간 이어진 온난습윤한 지구의 시기를 ‘로마 온난기(로마 기후 최적기)’로 부른다. 꽃가루와 바다 및 호수 생물의 유기물 증거를 분석해 보면 최근 4000년 중 가장 습한 시기였다고 한다. 이 시기 남유럽과 북아프리카 일대의 농업생산력 증대, 인구 증가, 기존 정치 권력의 강화가 이어지면서 로마 제국이 세계의 지배자로 군림하게 됐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반면 위기의 원인이 된 적도 있다. 16∼18세기 태양 활동이 적어지면서 세계적으로 이상 저온 현상이 발생한 ‘소빙기(小氷期)’가 지속됐다. 유럽에서는 1628년 ‘여름이 없는 해’가 나타나 엄청난 폭설이 내리고 흉작이 들었다. 뒤이어 알프스와 라인강 유역에서 마녀사냥과 고발이 늘어났다.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는 1590년 “북중국의 모든 강이 얼어붙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명나라는 홍수와 이상 저온 등으로 100년 만에 최악의 기근을 겪었고, 1644년 붕괴했다.
저자는 공업혁명 이후 발생한 지구의 기후 변화는 과거와 달리 인간이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다른 양상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극단적으로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의 배출량이 증가하면서 전례 없는 위기를 맞았다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현재 3억 명이 거주하는 땅이 2050년이 되면 해마다 적어도 한 번은 물에 잠기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됐다. 동물들은 서식지를 잃어, 최근 50년간 척추동물 종의 평균 서식 개체수가 70% 가까이 줄었다고 한다.
기온 하락이 유대인에 대한 박해 가능성을 높인다는 데이터 분석이나 불교가 한국과 일본에 전해진 시기는 화산 분출로 인해 만들어진 먼지막이 가장 심할 때였다는 저자의 분석은 기존 역사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흥미로운 관점이다. 늘상 숨쉬며 느끼는 이 기후가 우리의 일상에 어떻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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