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도시’ 전남 광양이 역사적 스토리를 품은 문화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광양 앞바다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정유 7년전쟁을 끝내기 위해 하늘에 목숨을 건 맹세를 한 곳이자, 민족시인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세상에 빛을 볼 수 있도록 육필 원고를 보관해온 곳이기도 하다. 통일신라말 풍수대가인 도선국사의 자취가 담긴 옥룡사지 일대는 현재도 유명인사들을 배출한 명당 터다. 햇빛에 반짝거리는 영롱한 동백숲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겨울 산책 명소로도 인기 높다.
● 이순신이 목숨을 담보로 맹세한 바다
1598년 12월16일 초겨울 새벽. 전남 광양의 앞바다는 폭풍전야처럼 고요했다. 그러나 잔잔한 바다 물결과는 달리 조선 판옥선 함대는 한껏 당긴 활시위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오늘 진실로 죽음을 각오하오니, 하늘에 바라옵건대 반드시 이 적을 섬멸하게 하여 주소서.”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목숨을 걸고 하늘에 맹세했다. 이어 일본 함대와 최후의 결전이 벌어졌다. 임진·정유 7년 전쟁의 최대 규모 결전이 광양만 바다에서 전개됐던 것이다.
해발 473m의 광양시 구봉산 전망대. 425년 전 바로 그때의 광양만 겨울 바다는 물론 순천, 여수, 하동, 남해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이순신 장군이 숨통을 끊으려 했던 왜장(倭將) 고니시 유키나가 군의 주둔지인 순천왜성, 조선과 명나라 연합수군의 전진 기지였던 묘도와 장도, 저 멀리 남해군 노량대교와 이순신 장군 순국 장소인 관음포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순천에서 남해까지 20여km에 이르는 바다에서 치러진 이 전쟁을 ‘광양만 해전’이라고도 부른다. 이순신 장군이 순천왜성 앞바다에서 일본 군과 전투를 벌인 이후 남해군 노량 앞바다 전투에서 사망하기까지 60여일간 지속적으로 이어진 해상 전쟁이기 때문이다. 일본측은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협에서 일본함대와 전투을 벌이는 틈을 타 고니시 유키나가 군이 순천왜성에서 도망할 수 있었던 이 전쟁에 대해서는 패배를 인정한다. 우리가 임진정유 7년전쟁을 ‘이긴 전쟁’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광양만 바다에서의 장군의 숭고한 희생 덕분이다.
구봉산 전망대에서는 역사적 장소를 무료 망원경으로 세밀히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출과 일몰을 덤으로 감상할 수 있다. 이곳은 바다 위로 피어나는 물안개, 광양 컨테이너 부두를 오가는 대형 선박 등 이국적인 항구 야경을 즐길 수 있는 명소로도 유명하다. 석양이 바다를 물들이기 시작하면 전망대의 은빛 메탈아트 봉수대(9.4m)가 빛나고 광양제철소, 이순신대교 등 야경이 황홀하게 펼쳐진다.
웅장하게 서 있는 이순신대교(총 연장 2260m)는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해(1545년)을 기려 주탑 사이 거리가 1545m로 건설된 해상 교량이다. 콘크리트로 세워진 주탑으로는 세계 최고 높이(270m)라고 한다.
● 백두대간 끝에서 부활한 윤동주의 시혼(詩魂)
광양에서는 여명의 감동과 노을의 여운을 즐길 수 있는 또다른 명소가 있다. 550리 섬진강이 마침내 그 유장한 흐름을 마무리짓고 바다로 흘러드는 망덕포구다. 임진왜란 당시 판옥선을 만들던 선소였던 이곳은 민족시인 윤동주의 친필 유고를 보존한 ‘정병욱 가옥’(1925년 건립)으로도 유명하다.
국문학자 정병욱(1922~1982)은 대일항쟁기의 연희전문학교 시절 윤동주와 인연을 맺은 인물이다. 정병욱은 선배 윤동주가 일본으로 유학 가며 맡긴 시집 원고를 자기 집 마루 밑에다 꽁꽁 숨겨 보관했다. 1945년 윤동주가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한 후, 광복 후인 1948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그의 유고 시집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일제하에서 윤동주 유고를 목숨처럼 지켜낸 정병욱 가족 덕분이다.
백두대간의 북쪽 끝인 북간도 룽징(龍井) 출신인 윤동주의 시혼(詩魂)이 백두대간의 남쪽 끝자락인 망덕산의 정병욱 가옥에서 살아났다는 점이 이채롭다. 망덕포구에는 윤동주의 시를 모티브로 한 여러 조형물들이 설치돼 있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최근 영국 국왕 찰스 3세가 버킹엄궁에서 개최한 윤석열 대통령과의 국빈 만찬 중 낭송했던 윤동주의 ‘바람이 불어’ 시비도 새겨져 있다.
한편 망덕포구 산책로에서 바다쪽으로는 배알도라고 불리는 자그마한 섬이 있다. 망덕산을 향해 배알하는 형국에서 그 이름을 얻었다고 전한다. 오래된 고목, 푸른 잔디가 펼쳐진 배알도 해변의 섬 정원은 물멍과 놀멍 명소로 유명하고, 섬 정상에는 일출과 일몰 및 섬 주변을 감상할 수 있는 해운정이 있다.
배알도는 망덕포구에서 섬을 잇는 ‘별헤는 다리’와 섬에서 맞은편 수변공원을 잇는 ‘해맞이 다리’가 독특한 운치를 자랑한다. 2개의 해상보도교는 유려한 곡선미로 눈길을 끈다.
● 옥룡사지의 동백숲 산책로
백계산(505m)의 옥룡사지 동백숲도 빼놓을 수 없는 역사 산책로다. 옥룡사지 주변에는 수령 100년 이상의 동백나무 1만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동백나무 군락지(천연기념물 제489호)다.
동백숲은 통일신라 말 선승이자 풍수 대가인 도선국사(827~898)가 옥룡사의 땅 기운을 보강하기 위해 심었다는 전설을 전한다. 도선국사에게 따라다니는 ‘비보(裨補)풍수’의 현장인 것이다.
비보풍수는 특정한 땅에 그에 어울리는 특정한 나무나 화초류 등을 심고 가꿈으로써 활성화한 땅 기운(지기·地氣)이 사람에게 이로움을 제공하도록 하는 환경적 행위를 가리킨다.
기자조선을 세운 기자가 조선의 평양 땅에다 버드나무를 심게 했다는 일화도 그런 예다. 기자는 조선의 풍속이 너무 강하고 모진 것을 보고 평양의 백성들에게 버드나무를 심도록 장려했다. 이는 부드러운 성질을 가지고 있는 버드나무를 심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인심을 순화시키는 효과를 거두기 위한 것이었다. 평양을 버드나무 유(柳) 자를 써서 ‘류경(柳京)’으로 부르는 배경이다.
마찬가지로 동백꽃은 지고한 사랑, 생명의 영속성과 순환 등을 상징한다고 한다. 도선국사는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해당하는이곳에서 동백나무를 심음으로써, 우리나라 지기가 끊임없이 이어지도록 염원하는 차원에서 동백나무를 심었던 것일까.
도선국사는 통일신라때 창건한 옥룡사에서 35년간 머물다 입적했다고 전한다. 번성했던 사찰은 1878년 화재로 폐허가 됐고 당시 심었다는 동백나무만이 무성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옥룡사지에서 인근 운암사로 이어지는 동백나무 오솔길은 상쾌한 숲 향기가 마음의 근심을 씻어주는 치유의 산책로다. 겨울철에 걸어보는 동백숲은 또다른 멋이 있다. 붉은 꽃송이 하나 달려 있지 않지만 한낮의 햇빛을 한껏 머금은 동백잎은 대낮에 반짝이는 별을 보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옥룡사지에는 ‘소망의 샘’이라는 샘물이 솟아난다. 이 물을 마신 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됐다는 일화가 안내판에 새겨져 있다. 그래서 명당인 옥룡사지를 방문한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며 샘물을 마시기도 한다.
여유가 있다면 인근의 옥룡면 명당 마을과 도선국사마을(추산리), 백운산 자연 휴양림도 들러볼 만하다. 특히 옥룡면의 명당 마을은 옥룡사지 기준으로 좌청룡(왼쪽 산자락)의 끝자락에 위치한 곳인데 정인화 광양시장, 박찬호 전 지검장 등 정관계 유명 인사들을 한마을에서 집중적으로 배출한 곳으로 유명하다. 도선국사의 풍수 원천지답게 인걸지령(人傑地靈; 영험한 기운이 있는 땅에서 훌륭한 인재가 나온다는 뜻)의 현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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