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장미희가 고(故) 김수용 감독의 영결식에서 고인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추도사를 전했다.
장미희는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행사장에서 열린 고 김수용 감독의 영결식에서 “이 자리가 형식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내게서 감독님은 늘 커다란 산이셨고 그리고 내가 늘 우러러 보던 어른이셨고 대(大)스승이어서 그러하다”고 추도사를 열었다.
이어 장미희는 “나는 감독님께서 데뷔 작품을 만드셨을 때 태어났다, 그래서 늘 한국의 영화 거장 김수용 감독님, 이렇게 신문이나 방송이나 라디오에서 듣고 자란 세대다, 그래서 함께 영화 작업을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배우가 됐어도 감독님은 내게 너무 어려운 큰 어른이셨다”고 밝혔다.
장미희는 “내가 감독님을 옆에서 뵙게 된 것은 감독님이 영상물등급위원장으로 계실 때인데 나는 영화 분과 위원회에서 2년간 일했을 때다, 아이러니한 건 ‘허튼소리’ 검열로 큰 일을 겪으셨는데 영상물등급위원장이 되신 게 뭐라고 할까”라고 검열로 인해 고인이 한 차례 은퇴 선언을 했던 1986년도의 사건을 언급했다.
더불어 “감독님의 삶을 사셨지만 (청주대학교에서)교육자로 후배 양성에 생을 바치셨고 영화계를 위해 영상물등급위원장을 맡으셨다, 교육자로서 영화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세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데 큰 감동을 받았다, 나 또한 연기자로 있으면서 배우로서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하는냐고 할 때 김수용 감독님께서 나의 멘토가 되셨다, 교육을 하고 실제를 같이 겸비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라며 고인이 자신에게 끼친 영향력에 대해 알렸다.
또한 “사회인으로, 전문인으로 한 계통 문화인의 수장으로 계실 때 그분의 봉사정신은 나로 하여금 (나 역시)영화계를 위한 꽃과 꿀만을 따는 배우가 아니라 단체에 기여하며 사랑 받은 것에 대한 커다란 보답해야한다는 생각에 영향을 주셨다”고 덧붙였다.
김수용 감독은 지난 3일 오전 노환으로 별세했다.
1929년생인 김수용 감독은 1960년대와 70년대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1958년 ‘공처가’로 데뷔해 90년대까지 약30여년 넘게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다.
대표작으로 ‘굴비’(1963) ‘혈맥’(1963) ‘갯마을’(1965)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 ‘산불’(1967) ‘사격장의아이들’(1967) ‘안개’(1967)를 비롯하여 1970년대의 ‘야행’(1977), ‘화려한 외출’(1978), 1980년대 작품으로는 ‘도시로 간 처녀’(1981) ‘만추’(1982) ‘저하늘에도 슬픔이’(1984) ‘허튼소리’(1986)등 다수의 작품이 있으며 1990년대에는 ‘사랑의 묵시록’(1995)과 ‘침향’(1999)이 있다. 김수용 감독의 연출작은 극영화 109편, 문화영화 12편으로 총121편이다.
고인은 1981년부터 1993년까지 청주대학교 영화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1992년까지 서울예술대학 영화학과 특임강사 겸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특임교수로 후학을 양성했다. 1989년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었고, 영화감독으로는 최초로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에 오르기도 했다.
김수용 감독의 장례식은 영화인장으로 치러졌다. 아들 김석화씨와 배우 안성기 이장호 감독, 배우 장미희, 정지영 감독이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았다. 또한 장례위원으로 김혜수, 류승완 감독, 문성근, 문소리, 민규동, 봉준호 감독, 윤제균 감독, 이영애, 이정재, 최민식, 황정민 등 유명 영화인들이 이름을 올렸다.
이날 영결식에서는 배우 신영균, 제작자 황기성, 이장호 감독, 양윤호 한국영화인총연합회 이사장, 배우 장미희, 김성수 감독, 김경식 청주대학교 예술대학교 학장 등이 추도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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