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인 1595년 6월 선조(1552∼1608)가 조총(鳥銃)을 일컬어 한 말이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해서 조총이라고 불렸던 이 무기는 15세기 유럽에서 처음 등장했다.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점화되는 방식으로, 흔들림이 적고 가벼워 적중률이 높았다. 일본은 1543년 다네가(種子)섬에 온 포르투갈인으로부터, 명나라는 1548년 왜구로부터 조총 제작법을 습득했다. 조선은 임진왜란 발발 이듬해인 1593년부터 투항한 일본군을 동원해 국산화에 나섰고, 조총은 17세기 이후 조선의 주요 무기가 됐다.
국립진주박물관(경남 진주시)은 임진왜란 이후부터 조선 말까지 화약 무기 발달사를 다룬 특별전 ‘화력조선Ⅱ’를 5일 개막했다. 앞서 이 박물관이 고려 말부터 조선 전기까지 화약 무기사를 조명했던 ‘화력조선Ⅰ’의 후속 전시다. 17세기 이후 조선 군영에서 제작한 조총 15점과 화기 50여 점을 비롯한 유물 총 150점을 선보인다.
전시는 조선 화약 무기의 면면과 함께 한계를 조명했다. 서구 열강과 화력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한 분기점은 18세기다. 김명훈 국립진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18세기 동아시아에 찾아온 평화의 시대가 역설적으로 서구 열강과 군사적 격차를 벌렸다”고 했다. 같은 시기 유럽에선 여러 국가가 연합한 대규모 전쟁이 발발했고, 그 과정에서 ‘군사혁명’이 일어났다.
전시는 ‘화력 조선의 끝’으로 면제배갑(綿製背甲)을 꼽았다. 면제배갑은 무명을 여러 번 겹쳐 만든 방탄복으로 1860년대 제작됐다. 하지만 1871년 신미양요 광성보 전투 때 병사들이 입은 면제배갑은 미군이 사용하는 유선형 탄환을 막을 수 없었다. 당대 미군은 연속 발사가 가능한 강선(腔線)총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조선군은 참패했다. 이후 조선 역시 강선총 등 신식 무기를 국산화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1907년 일제에 의해 군대가 강제로 해산됐다.
2021년 전시 ‘화력조선Ⅰ’ 은 팬데믹 와중에도 6만7000명가량이 찾았다. 박물관이 조선 화약 무기 발달과 전쟁사를 주제로 만든 유튜브 콘텐츠 ‘화력조선’은 조회 수 880만 회를 기록하는 등 인기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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