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출비채’ ‘은수자’ 등 고전설화 속 요괴
드라마 콘텐츠 이어 연구-출판도 활발
“욕망간의 갈등-선악 다루며 인간성 사유”
‘K요괴’들의 전성시대다. 최근 네이버 웹툰 ‘호랑이형님’, 올해 6월 종영한 tvN 드라마 ‘구미호뎐1938’, 영화 ‘외계+인’(2022년)을 비롯해 고전 설화 속 요괴들이 콘텐츠로 되살아나고 있다. 이무기와 구미호, 반인반요(半人半妖), 식인충(食人虫)…. 한국 전통 요괴가 한국 크리처물을 구현하는 상상의 밑바탕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전통 요괴를 본격적으로 조명하는 연구와 출판도 덩달아 활발해지고 있다. 김용덕 한국전통예술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불화 등 우리 문화재 속 도상에서 환상 동물 8가지를 추려 ‘문화재에 숨은 신비한 동물 사전’(담앤북스)을 최근 펴냈다. 앞서 ‘한국 요괴 도감’(위즈덤하우스·2019년)과 고전소설 속 요괴 20종을 추린 ‘요망하고 고얀 것들’(눌와·2021년)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분야 신진 학자들이 꼽은 한국 요괴의 매력을 살펴봤다.
● 남성 중심 가치관 전복한 ‘올출비채’
요괴는 전통 가치관과 욕망의 충돌을 드러내는 존재다. 한국 고전소설 76편에서 요괴 157종을 찾아낸 ‘K요괴 전문가’ 이후남 전주대 인문과학종합연구소 연구교수는 “‘올출비채’야말로 조선 최악의 여성 요괴”라고 했다. 이름도 생소한 이 요괴는 고전소설 ‘삼강명행록(三綱明行錄)’에 나온다. 첫 등장부터 파격적이다. “푸른 저고리 사이로 붉은 살이 드러났고, 누런색 머리는 불이 붙은 것과 같았다. 두 귀밑에 드문드문 난 귀밑머리는 송곳과 같았고, 매섭게 뻗은 눈썹에선 살기가 느껴졌다. …허리는 기둥처럼 두꺼웠고 팔은 방망이같이 튼실했다.” 올출비채는 사람을 잡아 죽여 만두를 빚어 먹는 요괴로 무거운 기둥뿌리를 뽑아 남편을 때려눕히고, 도련님들을 무자비하게 호령한다.
이 교수는 “올출비채는 남성 가부장이 지배했던 조선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했던 여성성을 완전히 전복시킨 요괴”라며 “당대를 지배했던 윤리와 여성의 욕망, 남성의 공포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전소설 ‘황장군전’에 나오는 요괴 ‘은수자’는 키 50척(약 15m)에 4개의 눈과 6개 팔이 달린 은행나무다. 원래 평범한 나무였으나, 악인 엄평을 만나 이름을 얻고 요괴로 탈바꿈했다. 엄평을 따르며 그의 뜻대로 발을 굴러 지진을 일으키고, 분신술로 자신과 닮은 요괴들을 복제해 사람을 죽인다. 이 교수는 “비록 악한 요괴지만, 자신에게 이름을 지어준 이와의 의리를 지키는 면모가 은수자의 매력”이라고 했다.
● “요괴엔 욕망 간 갈등, 선과 악 경계 담겨”
김용덕 한국전통예술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한국 요괴에 대해 “선악을 선택할 수 있는 양면적 존재로 그려지는 것이 매력”이라고 했다. ‘뇌공신(雷公神)’이 대표적이다. 뇌공신은 번개와 천둥을 일으키는 능력을 가진 존재로, 일본과 중국 불화에선 석가모니의 깨달음을 방해하는 요괴로 나온다. 반면 조선 불화에선 18세기 후반부터 석가모니를 방해하는 악을 처단하는 조력자로 그려진다. 김 연구원은 “악인을 다면적으로 바라보는 당대 조선의 관점을 엿볼 수 있다”며 “이 같은 측면이 K요괴의 복잡다단한 매력을 더한다”고 했다.
도깨비 연구의 권위자인 김종대 국립민속박물관장은 “요괴에는 당대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공포의 근원뿐 아니라 지배 윤리와 욕망 사이의 갈등, 선과 악의 경계가 담겨 있다”며 “우리 요괴를 연구하는 것은 인간성을 사유하는 통로가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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