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3〉인문학, 엄마에서 사람으로
인천 갈산도서관 ‘… 엄마 사람 혜자씨’
글-그림 나누며 진짜 내 모습 찾아가
어두운 밤하늘 아래 이불을 뒤집어쓴 채 웅크리고 있는 여자, 오리발을 던져버리고 두 발과 두 손을 뻗은 채 수영장 한가운데 떠 있는 여자, ‘나의 두 번째 마흔’이라 쓴 진주가 들어있는 조개를 양손으로 고이 들고 있는 여자….
지난달 30일 찾은 인천 부평구 ‘문화공간 시소’엔 여성들의 고민이 담긴 그림들이 가득했다. 모두 육아하는 여성이 그린 작품이지만, 아이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여자 혼자가 주인공인 작품이 많았다. 그림 옆에 놓인 에세이집을 펼치니 마찬가지였다. 에세이집에서 여성들은 어린 시절 겪었던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하루 1만 원이 아쉬워 각종 아르바이트를 구했던” 기억을 털어놓았다. 병을 진단받은 뒤 “살얼음을 걷듯 시한부 인생을 살듯” 방황하고, “아이를 출산하고 약 1년의 육아휴직을 가진 뒤 복직했을 때 내 삶은 암흑 그 자체”라며 절망했던 때를 고백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아닌 삶을 버텨 나가는 한 여성이 겪는 외로움과 고통이 진하게 느껴졌다.
글과 그림은 부평구 갈산도서관이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 ‘부평에 사는 엄마 사람 혜자씨’의 결과물이다. 이 프로젝트는 갈산도서관이 올해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사업 공모에 선정되면서 올 6월 시작했다. 5개월 동안 글감 수집과 글쓰기, 그림 그리기를 27회에 걸쳐 배운 끝에 14명이 에세이집에 낼 글과 그림을 완성했다.
이날 만난 ‘부평에…’ 참가자들은 “‘독박 육아’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버티게 한 건 글쓰기”라고 입을 모았다. 조윤주 씨(46)는 “팬데믹을 거치며 목말랐던 대면 모임에 대한 욕구가 나를 프로젝트로 이끈 것 같다. 살면서 처음으로 엄마가 되기 전 여자로서의 이야기를 꺼냈다”고 했다.
글을 제대로 써보지 않았던 이들이 서로 마음을 여는 게 쉽지는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땐 어색해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꺼내놓지 못했다. 정은미 씨(40)는 “아이가 아픈 날이면 당연히 수업을 못 들었다.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라고 다짐했지만 어려운 과정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출산, 육아를 거치고 같은 동네에 사는 여성이라는 공감대가 이들을 이끌었다. 허지영 씨(42)는 “처음엔 ‘평범한 내가 글을 쓸 수 있을까’ 망설였다. 하지만 마음을 털어놓으면서 삶의 힘들고 빛나는 시간을 찾아나갔다”고 했다. 김양숙 씨(53)는 “서로의 글에 대해 피드백을 하면서 자극을 받았다. 프로젝트가 끝난 뒤 온라인 글쓰기 플랫폼에 따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부평에…’ 프로젝트는 일단락됐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자체적으로 후속 모임을 만들어 글과 그림을 창작하고 있다. “누구의 아내, 며느리가 아니라 내 이름 석 자로만 불리기 위해서”(허 씨)다. 이혜진 갈산도서관 사서는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글을 좋아하는 참가자들을 끈끈하게 뭉치게 했다. 기회가 되는 대로 지역 주민을 위한 비슷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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