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세계 10위권, 기부는 88위… 부끄러운 현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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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운동 12년 이끈 손봉호 교수
‘유산 남기지 않기’ 캠페인 등 펼쳐
장애인들 위해 지난해 13억 기부
“새해엔 나눔 문화 널리 퍼졌으면”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새해에는 삶에 대한 가치관도 선진국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광주=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새해에는 삶에 대한 가치관도 선진국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광주=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우리나라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인데, 지난해 세계기부지수는 88위였다는 걸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경기 광주의 한 카페에서 11일 만난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85)가 우리 사회의 나눔 문화 부족을 지적했다.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 장애인 인권운동,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 등 활발한 사회운동을 펼쳐 온 그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실천하는 지식인이다. 12년간 맡았던 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에서 올해 8월 물러난 그는 “우리 사회가 커진 경제 규모만큼 나눔 문화가 확산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연말이라 아름다운 기부 뉴스가 심심치 않게 나는데 88위라니 의외입니다.

“‘세계기부지수’란 것이 있어요. 영국 자선구호단체인 CAF(Charity Aid Foundation)가 100여 개 나라에서 1000여 명씩 설문 조사해 발표하는 것인데, 지난해 우리나라는 88위를 했지요. 물론 자선단체에 기부한 적이 있는지, 도움이 필요한 낯선 사람을 도와준 적이 있는지,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는지 등 질문이 상당히 주관적이어서 의외라고 생각하는 나라가 앞쪽에 있기도 합니다. 그래도 미국, 영국 등 선진국들이 대체로 순위가 높지요.”

―그런 지수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우리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입니다. 월드컵, 올림픽에서 예선 탈락하거나 순위 안에 못 들면 난리가 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기부·나눔 문화가 꼴찌 수준이라는 것에는 아무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몇 년 전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 앞에서 장애 학생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애원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나눔 문화 부족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저도 그런 일 때문에 명예훼손으로 검찰 조사까지 받은 적이 있으니까요.”

―명예훼손이라니요?

“자폐 아동을 위한 특수학교를 설립할 때였어요. 지역 주민들이 기피 시설로 간주해 공사를 심하게 방해했죠. 그래서 주민들에게 편지를 썼어요. 절대로 학교 때문에 집값이 떨어지지 않으니 반대하지 말아 달라고. 그랬더니 자기들을 집값 때문에 반대하는 사람으로 매도한다고 검찰에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더군요.”

―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에서 스스로 물러나셨다고 들었습니다.

“8월 말에 물러났는데, 너무 오래 한 것도 있고 또 사회적으로 기부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제 능력이 부족한 건지 큰 열매를 거두지 못한 것 같았어요. 더 잘할 수 있는 분이 맡는 게 낫겠다 싶었지요.”

―지난해 13억 원 상당의 재산을 장애인을 위해 기부하셨습니다.

“제가 평소 강의에서 유산을 남기지 말자고 많이 말했어요. 그 강의를 들은 사람들이 유산남기지않기운동본부를 만들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참여하지 않을 수는 없잖아요?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건 행복한 사람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보다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줄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가장 고통을 많이 받는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장애인들이고요.”

―한 해가 또 저뭅니다. 나눔의 정신이 더 절실할 때인데 어떤 말씀을 하고 싶습니까.

“모든 부모는 자녀가 훌륭하게 자라길 바랄 겁니다. 그런데 부모가 집값 떨어진다고 동네에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학교가 들어오는 걸 반대하고, 임대아파트 아이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아파트 단지에 벽을 치는 걸 아이가 보고 자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대한민국은 선진국입니다. 하지만 삶에 대한 가치관도 선진국 수준이냐고 물으면 많이 아쉽지요. 새해에는 좀 더 달라진 사회가 됐으면 합니다.”

#나눔운동#손봉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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