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부. 국어사전에는 ‘같은 편’, 나아가 ‘어떤 경우라도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보충 설명이 달려 있습니다. 제아무리 모든 것을 갖춘 인생도 건전한 교감을 나누는 평생의 벗이 없다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미국 하버드 의대 로버트 월딩어 교수는 동아일보 신년 인터뷰에서 “행복을 결정하는 결정적 요인은 부도, 명예도, 학벌도 아닌 사람들과 따뜻하게 의지할 수 있는 관계”라고 했습니다. 좋은 인간관계는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깐부들 사이에 피어나는 ‘같이의 가치’를 소개합니다.
살다보면 무작정 좋은 사람이 있다. 특별한 끌림이 있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내 캐릭터에서 아주 편하게 작동이 된다. 그의 모든 것이 저절로 나에게 ‘ctrl+x’로 저장된다.
상대가 힘든 일을 겪어 행여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도 ‘나’라는 사람은 결코 위치 변경을 할 생각이 없다. 남들 눈치 안보고, 시선 안 따지고 그의 옆에 더 가까이 있으려는 의리가 발동한다. 다른 사람들이 눈치를 보느라 연락을 주저할 때 평소보다 더 극진히 그의 하루를 염려한다. 혹시 힘들어하고 있을 시간을 아예 주지 않으려 한다.
그 사람의 상황을 굳이 해결해주지 않더라도 그냥 만나자는 말 한 마디로 감동과 위안을 준다. 겪어본 당사자는 안다. 주변 사람이 떠나가는 공허함과 아쉬움이 확실한 한 사람의 존재감으로 채워진다.
‘호랑나비’로 가요계를 흔든 ‘영원한 10대 가수’ 김흥국 ‘김흥국장학재단’ 이사장(64)과 ‘흔들린 우정’의 인기 가수 ‘한국의 리키 마틴’ 홍경민 씨(47)의 관계가 그렇다.
무작정 좋은 둘의 교감은 전혀 흔들림이 없다. 가요계 선후배의 특별한 우정 정도로 소개하면 무척 아쉬울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먼저 ‘김흥국’의 마음이 되어주고, 먼저 ‘김흥국’의 몸이 되어주려는 ‘홍경민’이다. 그런 ‘홍경민’의 운동 에너지를 받아 자신의 지금 현재 위치 에너지로 변환시켜 흥을 잃지 않고 사는 ‘김흥국’의 관계를 설명하면 아주 그럴 듯하다.
김 이사장이 1989년 ‘호랑나비’로 전국을 강타했을 때 홍 씨는 중학생이었다.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신해철의 무대를 보고 가수의 꿈을 키운 홍 씨는 ‘김흥국’을 보고 문화적 충격을 크게 받았다. ‘호랑나비’가 히트를 치기 전 홍 씨는 김 이사장과 불치병에 걸린 한 소녀와의 인연을 다룬 다큐멘터리 방송(1988년 인간시대-정아의 겨울일기 편)을 봤다. 무명 가수 ‘김흥국’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던 그에게 180도 바뀐 ‘호랑나비’의 ‘김흥국’이 덮어쓰기 됐다.
● ‘흥궈신’의 진면목을 늘 소환하는 동생
“으아! 동아일보 때문에 오랜만에 터네. 경민아 들이대 봐.”
지난 4일 서울의 한 식당에서 만난 두 사람. 첫 만남이 언제인지 서로 기억을 못해 더 물을 필요가 없다. 둘에게는 인연의 시간이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서로 사는 얘기, 주변과 세상 흘러가는 얘기에 집중하는 일관성이 시간보다 중요한 우정의 포인트다. 친한 사람들끼리는 한 얘기 또 해도 재밌다고 하는데 둘은 늘 포복절도를 한다. 조곤조곤 만담이 이어지는데 범위를 알 수 없다. 여기서 둘이 아주 친하게 사는 의미를 찾으면 된다.
김 이사장은 노래 말고도 재치, 입담의 대가다. ‘전천 후 예능 1호 가수‘, ‘예능 치트키’ , ‘흥궈신’ 등 웃음을 보장하는 수식어가 많다. 웃음에 보수적인 사람들도 김 이사장의 기발한 예능 감에 여지없이 ‘웃참 실패’다.
홍 씨는 그런 ‘김흥국’을 소환하는 시동 버튼이다. 깨알같이 ‘김흥국’이 웃긴 스토리를 다 꿰고 있다. 동생의 관심 저격에 김 이사장은 잊고 있던 관련 에피소드 등을 기억해낸다. 그러면서 그는 예능 소재를 다시 찾고, 재미도 더 풍성해진다.
-또 생각나는 게 있는 거죠? “예전에 형님이 ‘호랑나비’를 노래한 영상을 보면 ‘호랑나비야. 날아봐’하고 트레이드마크 춤을 출 때 댄서, 무용팀이 형님 동작을 못 맞추고 못 따라가더라고요. 형님은 이리로 몸을 날렸는데 댄서들은 저리로 가고, 하하.” “안무 팀이 헷갈린 거야. 내가 리허설 때하고는 완전히 다르게 추니까. 으아! 노래하다 말고 한 무용단한테 ‘당신이 왜 이리와’ 그랬다니까. 나는 리허설이 필요없다는 걸 그 때 알았어요.”
어떻게 연예계 생활을 해야할지 영향도 많이 받았다.
“제가 ‘흔들린 우정’을 낼 당시 가수들은 무조건 예능을 나가야 하는 분위기였어요. 저도 ‘흔들린 우정’을 발표하고 첫 방송을 나간 게 가요 프로그램이 아니라 ‘서세원쇼’였어요. 무조건 예능을 나가야 하는데 당시 형님은 ‘예능의 신’이었잖아요. 참고를 많이 했죠. 그래서 그 ‘서세원쇼’에서 토크 1등을 했죠. 덕분에 주목을 조금 끌었죠.”
많이 부럽기도 했다.
“예전에 형님이 하루에 라디오 방송을 두 개나 하신 적이 있어요. 오전, 오후로 하셨죠. 그간 연예계에서 하루에 DJ 진행을 두 번이나 한 사람이 있었을까요. 제 기억으로는 없어요.” “으아! 그것을 너가 어떻게 알아?”
“아니, 당시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 때 제가 형님한테 ‘어떻게 하루에 DJ를 두 번이 볼 수 있냐’고 했더니 형님이 ‘으아! 그러면 유재석은 프로그램을 왜 여러 개 하냐. 라디오는 왜 동시에 들이대면 안 돼’라고 하셔서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대단하네. 말 나왔으니 내가 라디오 두 개 할 때 심신(가수)이 방송 펑크를 냈잖아. 아마 오전 방송 라디오 작가가 섭외 전화를 했는데 심신이 ‘네. 흥국이 형님 좋아하죠. 나갈게요’라고 자신 있게 출연을 약속했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시간을 헷갈렸는지 오전에 안 나타났어. 하하하.”
● 노래 써주고 ‘가수 김흥국’ 찾아준 한국의 리키 마틴
흥이 넘치던 선배가 흥을 잃어 얼마전까지 당황스러웠다. 김 대표는 최근 몇 년간 불편한 구설수에 휩싸여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 의혹만 불거져도 연예인은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는다. 나중에 법적으로 억울함이 풀렸지만 김 이사장은 논란의 중심에 선 것만으로 도의적 책임감을 느끼고 방송 출연과 외부 노출을 최대한 자제했다. 활동을 중단하고 두문불출했다. 가깝게 지내던 주변인들과도 하나둘씩 소원해져갈 때 홍 씨는 김 이사장의 마음을 살폈다. 흔들릴 수도 있었던 우정의 중심을 잡았다.
-사람이 무서웠겠습니다. “연락 잘하던 동료, 지인들이 떠나는 게 힘들었죠. ‘호랑나비’ 한 곡으로 30여년을 잘 나가다 처음으로 추락을 했는데 단번에 사람이 끊겼어요. ‘한잔 하자’ 연락하는 사람들이 없더라고. 잘못 살아온 내 자신을 탓했지만 처음에는 ‘연예인 김흥국 타이틀만 보고 사람들이 친하게 다가왔던 것일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죠. 6개월에서 1년까지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 연락을 기다려봤어요. 안 오길래 휴대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를 거의 다 지웠어요. 지우느라 팔도 아픈데 마음은 더 찢어졌죠.”
-그럼에도 ‘홍경민’ 의리의 가치를 아셨겠어요. “하루하루 힘들었는데 거의 매일 ‘저랑 술 한 잔 하시죠’라며 연락이 오더라고요. ‘그래 와라. 아직 내가 너한테 술 한 잔은 살 수 있다’고 하면 경민이가 ‘절대 안 된다. 제가 산다’고 그러면서 꼭 와요. 고맙죠. 그런데 눈물나게 더 고마운 선물까지….”
-김흥국 맞춤 노래를 만들어줬다면서요? “나를 위해 곡을 썼어요. 자기가 만든 노래를 자기가 안 부르고 나를 줬어요.”
지난 9월 김 이사장은 디지털음원을 발표했다. 제목은 ‘걸어간다’.
높은 곳에 오르는 게 전부인 줄 알았었다.
하지만 사는 건 웃으며 내려오는 게 더 어렵다는 걸 몰랐다.
그저 아무 탈 없는 게 최고라던 엄마 얘기 돈이냐 명예냐
모든 게 부질없단 걸 한참 지난 후에 알았다.
걸어간다 좀 늦어져도 결국 마지막까지 가야 할 길 한 걸음 또 한 걸음 걷다 보면 어디인들 못 갈까.
오 돌아본다 뒤 돌아본다. 후회로 가득했던 지나온 길 다시는 또 다시는 한 숨 속에 주저앉진 않겠다.
가는 길에 바람 불어 젖은 땀을 식혀 주면 이내 깨닫는다.
혼자 걷는 게 아님을 미소 짓고 다시 걷는다.
걸어간다 좀 늦어져도 결국 마지막까지 가야 할 길 한 걸음 또 한 걸음 걷다 보면 어디인들 못 갈까.
오 돌아본다 뒤 돌아본다 후회로 가득했던 지나 온 길 다시는 또 다시는 한 숨 속에 주저앉진 않겠다.
어디만큼 와 있는지 잠시 고개 들어보면 다시 깨닫는다.
아직은 끝이 아님을 망설이지 않고 걷는다. 쉬지 않고 간다.
김 이사장이 한참 힘들 때인 2년 전. 홍 씨는 그의 인생을 ‘걸어가는 중입니다’ 노래로 만들어 선물했다. ‘걸어간다’는 제목을 미래지향적으로 바꾼 거다. 더 애절한 리듬으로 편곡까지 했다.
-가사가 딱 ‘김흥국’표 같네요. “사사로운 인연에 미련을 갖기보다는 나를 돌아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타이밍에 경민이의 노래 선물을 받았어요. 한 줄 한 줄 정말 내 마음이더라고. 감동적으로 멜로디를 살려주지 못해 경민이한테 미안해요.”
홍 씨는 누구나 그리워하는‘김흥국’을 다시 찾아주고 싶었다.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며 몸을 숨긴 형의 노래를 누군가 들으면, 그들이 ‘김흥국’에 공감하고 함께 울어줄 것 같았다. 김 이사장의 복귀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김흥국’의 건재를 알리고 싶은 마음도 컸다.
“제가 한 포털에서 K팝 차트 방송을 하고 있을 때였어요.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형님을 모셨는데 그 공간에 전자드럼이 있어요. 드럼을 보는데 예전에 ‘판타스틱 듀오’라는 프로그램에서 (김)건모 형이 김흥국 형님의 ‘59년 왕십리’를 부른 게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 때 형님이 드럼을 치셨죠. 그 영상이 크게 화제가 됐거든요. 방송을 하는 공간에 노래방 시스템도 마련이 돼 있어서 형님에게 ‘59년 왕십리를 부르면서 드럼을 같이 쳐 달라’고 부탁을 했죠. 그런데 드럼을 치는데 세상 그렇게 행복한 표정이 없더라고요. 사람이 정말 즐거울 때나 나오는 표정이었어요. 형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사람들이 ‘김흥국’을 너무 예능하는 사람으로만 보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 좋다, 형님하고 노래를 같이 해보자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어요. 처음에는 듀엣으로 부르자고 했죠.”
-‘김흥국’ 이 대중에게 받은 사랑을 동생이 대신 갚아주고 싶은 마음이 보입니다. 김흥국의 마음으로 가사를 썼겠습니다. “곡을 쓰려고 작업실에 앉아 있는데 울컥하고 가슴이 미어지더라고요. 형님에게 풍파가 많았잖아요. 그런 형님의 삶은 이제 높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 웃으면서 내려와야 한다고 봤어요. 그 흐름으로 노래를 만들어서 녹음실에서 형님 파트를 녹음하고 같이 식사하고 헤어졌는데, 집에 와서 노래를 들어보니 둘이 나눠 부르기에는 너무 아깝더라고요. 형님에게 전화를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부르시는 게 좋겠다’고 말씀을 드렸죠.”
김 이사장은 “나는 경민이에게 잘해준 것 없다. 그런데도 내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나의 노래를 남겨줬다. ‘휼륭한 후배’라는 말 이상의 표현이 지금 생각이 안 나서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 김 이사장의 지인과 아는 음악 관계자가 이 노래를 우연히 듣고 반해 트로트 스타일로 편곡을 추진했다고. 홍 씨는 편곡과 제목 변경 요청에 흔쾌히 승낙을 했다. 홍 씨는 “예전 ‘59년 왕십리’도 당시의 기성세대들이 술 한 잔 마시고 노래방 가서 많이 부르면서 마음의 스트레스, 응어리를 풀었던 노래다. ‘김흥국’ 역사에 제가 만든 노래가 담겨 뿌듯하다”고 했다. 홍 씨는 “내가 나오는 뮤지컬(볼륨업)에도 ‘걸어간다’ 가 나온다. 상식적인 삶을 사는 분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사”라고 말했다.
-의리의 재발견입니다. “어떻게 이 좋은 노래를 나한테 주냐고요. 김건모 이후에 처음 나를 배려해준 후배 같아. 원래 탁재훈이 이래야 되거든(폭소가 터진다). 걔가 가수면서 후계자인데…. 예전에는 다른 연예인들이 ‘왜 둘만 그리 좋아하냐’ 고 한 소리씩 하고 그랬어요. 의리 있는 ‘홍경민’이라는 사람의 가치를 알게 돼 기뻐요.”
곡 홍보가 얘기가 나오니까 ‘흥궈신’으로 돌아온다.
“음원 나온 지 두 달이 넘었는데, 얼마 전에 편곡도 해주고 관심을 가져준 관계자한테 그랬어요. 홍경민이가 나를 위해 만들었고, 또 ‘10대 가수’가 몇 년 만에 곡을 낸 건데 방송 섭외 어떻게 돼 가냐고 물었죠. 그런데 ‘계속 (섭외) 돌고 있습니다’고만 그러는 거예요. 하하. 그럼 어디까지 돌 작정이냐고 그랬더니 ‘이사장님은 큰 방송만 나오셔서…’라고 하더라고. 맞는 얘기인데. 하하. 그래도 ‘내가 여기저기 가릴 처지가 아니다’라고 했어요. 그런데 아직도 돌고 있대. 그 분 요즘 돌아버릴 거야. ㅎㅎㅎㅎ. 동아일보 이 기사 보시는 음악 PD, 작가분들 부탁합니다.”
“하하. (지)상열 형이 형님 곡 나오면 본인이 방송국 돌아다닌다고 했습니다.”
● 들이대면 더 재밌는 ‘김흥국’을 아는 동생
홍 씨는 ‘김흥국’의 흥은 인간 관계에서 불편함을 지우는 도구, 대표 유행어인 ‘들이대’는 사람을 크게 포용하는 그릇으로 본다. 홍 씨는 “형님의 흥과 말은 곧 배려다. 지나가는 사람이 길거리에서 웃겨달라고 하면 바로 웃겨줄 수 있는 분이다. 내가 망가질 수 있어도 상대방이 웃고 좋으면 그만이다. 사람의 사이즈, 클래스가 다르다”고 했다.
동생의 칭찬에 김 이사장은 “요즘은 옷 치수가 105에서 110으로 늘었어. 크게 입어야 돼”라며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웃음을 준다.
그런 김흥국의 면모를 세상 사람들이 알기 때문에 재미에 관한 한 거를 게 없다는 말이 나온다.
“여러 프로그램에서 웃겨보려다 실패도 많이 했는데, 한 번 잘하면 칭찬을 엄청 해주세요. ‘오늘 타율 좋다’ 이런 식으로요. 형님이 대단하다 생각을 많이 해요. 계산해서 웃기는 게 아니고, 그냥 막 던지는데 터지는 거예요. 부럽죠. 만약 라디오 방송에서 제가 ‘터보(김종국)’가 부른 ‘사이버 러버(Cyber lover)’를 형님처럼‘시버 러버’라고 말했어 봐요. 당장 DJ 자리에서 하차했겠죠.”
김 이사장이 이제 사람들을 피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흥국’의 흥과 말로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일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예전 어록 애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들이대’면 더 재밌는 뒷이야기들이 나올 것 같습니다. “(박)미선(개그우먼)이가 어록을 다 터트렸다고 보면 돼요. 방송 섭외 전화 스토리가 많지. 한 번은 SBS ‘스타킹’ 프로그램 작가가 연락이 와서 같이 있던 미선이를 바꿔줬어요. 미선이가 섭외 전화라고 그러길래 아무 생각없이 ‘스타킹이 나한테 왜 있어. 집에 스타킹도 없고. 안 나간다’고 그랬죠. 그 얘기를 미선이가 작가한테 전하니까 너무 재밌다고 하는거야. 그러더니 미선이를 섭외하더라고.”
시동이 걸린다.
“한 번은 또 KBS ‘스케치북’에서 전화가 왔어요. 마침 옆에 또 미선이가 있어서 물었지. ‘스케치북이 뭐냐’고. 미선이가 ‘스케치북 몰라’라고 하길래 ‘나 어릴 때 그림도 못 그렸는데 무슨 스케치북이야. 잘 몰라. 네가 나가’라고 했죠. 미선이가 방송 작가한테 통화를 하면서 ‘안녕하세요. 박미선인데요. 흥국 오빠가 그림을 못 그린대요’라고 한 거야. ㅎㅎㅎㅎ. 또 그래서 자기가 방송에 나간거지.”
‘줄줄이 사탕’이다. 흐름이 끊기질 않는다.
“한두 개가 아니에요. ‘나는 가수다’에서 연락이 와서 한 번 나오실 의향 있냐고 묻길래‘저기요, 나는 이미 가수인데’라고 해버렸어. ‘아는 형님’ 섭외 전화도 미선이를 바꿔줬죠. 전화가 왔다고 해서 ‘내가 아는 형님이 한두 명이야. 아는 동생도 많다’고 했지. 미선이가 ‘오빠. 그래. 이 방송은 오빠한테 안 맞으니까 내가 나갈게. 내가 방송 나가서 오빠의 마음을 전달할게’라고 했어요. 하하. ‘냉장고를 부탁해’도 마찬가지에요. ‘안녕하십니까, 냉장고를 부탁해입니다’고 섭외 전화가 와서 ‘뭐, 내가 이삿짐센터도 아니고. 우리 집 냉장고나 바꿔줘’라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또 박미선이 해결했죠. ㅎㅎㅎㅎ.”
-정말 상황과 사람을 솔직하게 대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네요. “‘시버 러버’ 사건도 그래요. 솔직히 저도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형님이 이해가 돼요. ‘Cyber’에서 C가 S로 쓰여 있다면 사고가 안 났을 수도 있었다고 봐요. 또 그 단어가 그 시대에 막 나왔으니까 보는 사람은 어색할 수도 있었죠.”
홍 씨가 예전 사건을 ‘들이대’자 잊고 있던 상황이 떠오른다.
“생방송이니까 실수가 안날 수 없죠. 아무리 생각해도 엔진(터보)이 어떻게 노래를 하냐고. 원래 그 라디오 방송 코너에서는 젊은 가수들 노래를 잘 안 틀었거든요. 나는 그게 팝송인줄 알았어. 모르니까 같이 진행을 하던, 대학 나온 박미선한테 슬쩍 소개를 넘겼는데 ‘오빠 나 몰라요’라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온 에어 신호는 들어와 있고, 어쩔 수 없이 사고를 친 거지. 그러니 방송국에 항의 전화가 엄청 오고, PD가 사장실로 불려가고 했죠. 그 다음날 박미선이 사과 방송을 하고, 나도 국장실에 불려가서 ‘네, 다음부터는 실수 없이 잘하겠습니다’하고 정말 각오를 하고 나왔죠. 그런데 바로 더 큰 게 터졌죠. (차도균의 ‘철없는 아내’ 노래 제목에서 ㅊ을 ㅌ로 발음해 난리가 났다). 왜 그날따라 PD가 볼펜으로 제목을 흘려 써서 주냐고. ‘시버 러버’는 아무 것도 아니야. ‘김흥국’은 녹음 방송해야 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고 하더라고요.”(김흥국)
-거미의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를 바꿔 소개한 사건이 연이어 터졌죠(홍경민). “거미가 무슨 노래를 해. 그렇지 않냐고요. 거미가 거미줄을 쳐야지. 방송 중에 노래 제목이 적힌 쪽지가 왔는데 또 감이 이상하더라고. 그런데 미선이가 또 모른 체를 해. 보통 ‘오빠. 이 노래 알아요’라고 물어봐야 되는데 그날은 가만히 있더라고. 나중에는 정말 모르는 가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너는 아는 가수가 도대체 누구냐’하면서 티격태격했지. 그러니 스튜디오 밖에서는 난리가 난거야. 생방송에서 노래 소개를 안 하면 징계를 받을 수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해야 되는데, 거미가 노래를 하는 건 내가 살면서 본 적이 없잖아.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친구가 부릅니다. 거미라도 될 걸 그랬어’라고 했지. 그렇게 말하면서 이번에는 내가 맞았다고 확신을 했죠. ‘PD가 틀렸다. 내가 최고의 DJ다’라고 뿌듯해했죠.”
-계속 고개 숙이고 싶은 상황이 이어졌네요. “그래도 DJ의 전설 이종환 선생님께서 당시 내 방송을 보려고 본인 방송 나오는 시간보다 1시간 일찍 나오셨다고 하더라고요. 소문을 듣고 어떻게 방송을 하는지 보고 싶었다고 하셨어요. 이 선생님이 저에게 ‘프로그램 재밌다. 계속 그렇게 방송해라. 당신이 실수 안 하고 안 틀리면 방송을 안 들을 거다’고 말씀해주셨죠. 그 말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경민아, 너는 기억으로 너무 들이댄다. ㅎㅎㅎㅎ”
“‘들이대’라는 말이 나중에 역사의 단어로 기억되지 않을까요? 100여년 쯤 지나 사람들이 ‘들이대’라는 말은 어떻게 생겨난 것이냐고 궁금해 했을 때 거슬러 올라가 찾을 수 있는 자료가 너무 많죠. 그래서 형님이 더 대단한 역사의 인물로 남지 않을까 싶어요.”(홍경민)
“안 그래도 어떤 사람이 ‘들이대’ 학교를 설립하자고 연락이 왔더라고.(또 한 번 폭소가 터진다). 교육부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나만 허락하면 학생도 뽑고 하겠대. 최고위 과정으로 만들면 될까. ㅎㅎㅎㅎ.”
● ‘홍경민’ 이 만든 ‘나비 효과’
‘홍경민’으로 인해 나라는 사람이 어떤 존재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하는지를 알게 됐고, 그래서 살맛이 난다. 팬들이 바라는, 있는 그대로의 날 것 ‘김흥국’을 홍경민 때문에 찾고 또 찾고 있다.‘김흥국’ 안에 숨겨진 ‘김흥국’이 계속 나온다.
“자기 방송을 하다가도, 또 어떤 자리에서든 ‘김흥국’의 진면목을 자랑하는 동생이에요. 방송에서 현철 선배님의 노래를 하다가도 ‘사랑은 얄미운 나비인가봐’라는 대목에서 ‘무슨 나비? 호랑나비’라고 하면서 그 자리에 없는 ‘김흥국’의 존재감을 끌어내는 동생입니다. ‘김흥국’을 나보다 더 잘 읽는 것 같아요. 홍경민의 작은 ‘날개짓’이 사람 김흥국을 태풍으로 밀어 올릴 것 같아요. ‘홍경민’으로부터 시작된 ‘나비 효과’, 그 혜택을 앞으로 톡톡히 볼 것 같습니다.”
홍 씨는 쭉 계속 ‘인간 김흥국’의 ‘보증수표’가 되고 싶다. ‘걸어간다’의 가사에서 김흥국이 가는 길에 불어주는 ‘바람’이 홍 씨의 존재감 같다고 하자 고개를 끄덕인다. “많은 분들의 행복을 위해 다시 활발하게 활동하셨으면 좋겠어요.”
바라는 건 하나다. 김흥국 다운 김흥국, 하지만 전보다 카메라를 더 진정성 있게 대하고 싶은 김흥국이 다시 세상에 유쾌한 웃음을 주었으면 한다. “열심히 산다”는 말을 제일 듣고 싶어 한다는 김 이사장을 팬들 앞으로 끌어내기 위해 홍 씨 본인도 내년 1월 가수로서의 스타일을 바꿔 무대에 선다. 헤비메탈 락커로 깜짝 변신할 예정이다.
“경민아. 나도 예전에 락 음악을 했잖아. 락을 하려면 일단 머리를 길러 들이대고 털어야 돼. 마이크도 그냥 잡으면 안 되고, 꺾어야 돼. 그리고 무대 물 뿌려야 돼. 소방차 협찬 받아.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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