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시간을 확인한다. 음식을 먹을 때는 칼로리에 신경 쓰고, 물건을 사기 전에는 가격을 비교한다. 일상에 스며들어 인식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매일 ‘측정의 세계’에 살고 있다.
측정의 역사와 기원, 그리고 측정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한 책이다. 영국 기자인 저자는 2018년 ‘kg’(킬로그램)의 기본 단위를 재정의한 프랑스 파리 소재 국제도량형국(BIPM) 총회 취재를 계기로 측정의 역사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측정에 관한 가장 오래된 증거는 약 3만3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늑대뼈다. 이 뼈에는 5개 단위로 파인 홈이 남아 있다. 고고학자들은 뼈에 새겨진 표시의 배열을 근거로 이것이 수를 세는 도구이며, 측정에 쓰였다고 봤다.
측정은 문명의 발달과 함께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이집트 나일강 유역의 기둥, 벽, 계단 등지에는 강의 범람 수위를 측정하는 ‘나일로미터’가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큐빗이란 단위를 사용해 나일강의 풍년과 흉년을 예측했다. 1큐빗은 대략 52cm가량으로, “16큐빗이면 기쁨이 이어지는 풍년이 온다”고 적힌 문헌이 전해 내려온다.
오늘날 길이를 나타내는 ‘m’(미터)는 프랑스 혁명의 산물이다. 당대 혁명가들은 구체제에서 길이의 기준으로 삼던 ‘왕의 발’이 아닌 공화정의 공정하고 평등한 가치를 나타낼 기준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지구 북극점에서부터 적도까지 길이의 1000만분의 1을 새 길이의 기준인 1m로 정했다. 그리고 질량의 단위인 1g은 물 1㎤의 무게로 정의했다.
측정이 긍정적 효과를 낸 것만은 아니었다. 인간의 특성을 모두 측정하고, 예측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에 근거한 우생학이나 애초 도움이 필요한 학생을 선별하기 위한 측정 도구였던 IQ 테스트가 열악한 교육 환경에 놓인 이들에 대한 차별의 근거로 변질되는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모든 것을 가늠하고 재보는 우리 삶의 모습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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