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낙서범이 언급한 ‘미스치프’ 정말 성역 없을까? [영감 한 스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22일 10시 00분


서울 종로구 대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미스치프의 개인전 ‘Nothing is Sacred’ 입구 모습. 사진: 대림미술관 제공
“미스치프가 말하는 짓궂은 장난을 좀 치고 싶었어요.…전 예술을 한 것뿐이에요.”

12월 17일 경복궁 담벼락에 스프레이로 낙서를 한 20대 남성 A씨가 블로그에 쓴 내용입니다. A씨는 전날 경복궁 영추문 돌담에 ‘영화 공짜’ 낙서가 등장하고 하루 만에 ‘검정치마’ 등의 내용이 적힌 낙서를 하는 모방 범죄를 일으켰죠.

올해 4월 한 대학생이 리움미술관에 전시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바나나를 먹어 치우며 ‘예술’이라 한 데 이어 비슷한 주장이 또 등장했습니다. 미스치프가 누구기에 A씨의 ‘문화재 낙서’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언급된 것일까요?

예수·사탄 슈즈로 온라인 달궈
미스치프의 ‘예수 신발’(2019). 사진: 대림미술관 제공
미스치프의 대표적 프로젝트라고 하면 ‘예수 신발’, ‘사탄 신발’이나 ‘빅 레드 부츠’가 떠오릅니다. 사실 시각 예술보다는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는 디자인, 패션, 게임을 생산하는 창작 그룹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죠.

2019년 미국에서 결성한 미스치프가 큰 유명세를 받은 계기는 그 해 출시한 ‘예수 신발’이었습니다. ‘예수 신발’은 200달러짜리 나이키 에어맥스 97에 요르단강물 60cc를 넣고 십자가를 매달아 맞춤 제작한 것이었고, 1425달러 가격에도 공개되자마자 품절됐죠. 유명 가수 드레이크도 이 신발을 샀습니다.

그다음 2021년에는 더 나아가 팝 스타 릴 나스 엑스와 협업해 같은 나이키 신발에 피 한 방울을 넣은 ‘사탄 신발’을 출시해 논란을 일으키고 나이키와 법적 분쟁에까지 휘말립니다.

미스치프의 ‘사탄 신발’(2021). 사진: 대림미술관 제공
이 밖에 스마트폰 화면에 손가락을 떼지 않고 가장 오래 버티는 사람이 상금을 가져가는 게임 ‘핑거 온 더 앱’, 에르메스 버킨백의 가죽을 해체해 샌들로 만든 ‘버킨스탁’, 만화 속에 등장할 것 같은 과장된 형태의 ‘빅 레드 부츠’ 등 황당함과 웃음을 유발하는 프로젝트로 미디어의 조명을 꾸준히 받습니다.

‘바이럴’로 거액 투자 유치
미스치프는 2주마다 위와 같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한정판으로 공개했습니다. 한 땀 한 땀 공들여 만든 제품이 아니라 아이디어와 재치로 무장한 상품으로 꽤 큰 이익을 거두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러나 과연 프로젝트 판매만으로 운영이 이뤄졌을까요?

미스치프의 ‘빅 레드 부츠’가 전시된 대림미술관 전경. 사진: 대림미술관 제공
2020년 IT전문 매체 ‘더 버지’는 미스치프가 벤처캐피털 회사로부터 1170만 달러(약 150억 원) 투자를 받았다고 보도합니다. 뉴욕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디자이너는 물론 개발자, 변호사, 재무 담당자 등 30여 명 규모로 구성된 그룹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스타트업이라고 봐도 좋을 듯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투자를 유치한 비결은 무엇일까? 미스치프를 이끄는 CEO 가브리엘 웨일리는 어릴 때부터 온라인 콘텐츠 제작에 재능을 보였고, 바이럴 미디어 기업인 ‘버즈피드’에서도 일했습니다. 온라인에서 어떤 콘텐츠가 주목받고 저절로 공유되는지를 체득한 웨일리가 판을 키운 것이 ‘미스치프’였고, 투자자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본 것으로 추측됩니다.

스프레이 낙서 테러를 당해 임시로 가려진 경복궁 담벼락. 사진: 뉴시스
그리고 경복궁 담벼락에 낙서한 A씨는 ‘성역은 없다’는 슬로건만 봤지만, 실제로 많은 돈이 걸린 미스치프의 프로젝트들은 브레인스토밍부터 현실화, 그리고 변호사의 법률 검토까지 치밀한 과정을 거칩니다.

금리 특정적 예술(?)
그렇다면 미스치프의 프로젝트를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예술의 정의는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냐는 사회와 시대가 결정합니다. 우선 최근까지 미스치프는 지난해 11월 페로탕 뉴욕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올해는 서울 대림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었으니 형식상으론 인정받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번엔 질문을 좀 더 정교하게, ‘미스치프를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예술이라 볼 수 있을까?’라고 해보겠습니다. 미술의 역사에 비춰보면 미스치프는 자본과 마케팅 기법을 업은 ‘보급형 뒤샹’에 가까워 보입니다.

대림미술관에서 열리는 미스치프 개인전 전경. 사진: 대림미술관 제공

마르셀 뒤샹은 인상파부터 추상미술, 그리고 모더니즘까지 미술의 역사 속 많은 경우의 수를 감안한 뒤 미술관에 변기를 놓으며 현대미술의 새 장을 열었습니다. 미스치프도 온라인 공간에서 트렌드, 관객 반응, 돈의 흐름 등 여러 요소를 치밀하게 고려해 프로젝트를 내놓습니다. 엉뚱한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체화하는 실행 능력과 과감함은 창작자이자 사업가로서 뛰어난 능력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미술의 역사로 따져보면 이미 100년 전 뒤샹이 한 일을 약간 다른 맥락에서 되풀이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마치 인상파가 처음엔 외면받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 대중의 사랑을 받고, 많은 예술가가 그것을 추종했듯 이제는 개념미술이 일반에도 유희로 즐겨지는 시대가 왔다는 생각도 듭니다.

미술계에서 한 때 구체적인 장소에서 주변 맥락을 고려해 설치된 ‘장소 특정적 예술’이 유행한 적이 있는데요. 미술계에서는 미스치프를 두고 팬데믹 시기 금리 인하로 자금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가능했던 ‘금리 특정적 예술’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옵니다. 미스치프의 유쾌 발랄한 도발 속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독자 여러분도 한 번 직접 만나보세요.

구독자 의견
🔸수묵화는 정말 직접 눈으로 담아야 하더라구요 선을 천천히 훑다보면 힘이 느껴지기도 하고, 가까이에서 그리고 또 멀리서 볼 때 각기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참 좋아합니다 그러는 와중에 새로운 전시를 소개받다니 아주 좋네요ㅎㅎ 새롭고 강렬한 스타일이라 반갑고 전시가 기대되고요.
요즘은 확실히 컴퓨터 기술을 이용한 작품들을 꽤나 마주치게 되더라고요 작품 만들 때 쓰이는 걸 넘어서 감상할 때 필요하게 되는 경우도 있어서 새롭다 느끼긴 했습니다 럭스는 지난 전시에 이어서 반응이 쭉 있는 것 같네요ㅎㅎ 관심이 크단 건 의미하는 바가 크단 거죠ㅎㅎㅎ
오늘도 좋은 글 그리고 많은 분들의 생각 또 읽어볼 수 있어 좋았습니닿ㅎ 전문성있게 피드백해주시니까 또 잘 읽어보게 되어 항상 알차다느낍니다ㅎㅎ 짧게 감상을 쓰려다보니 단편적인 것만 쓰게 되는 것 같아 아쉽지만 ㅜ 항상 잘 보고 있는 거 알아주시길 바라고ㅋㅋㅋ 다들 건강히 연말 마무리 잘 하셨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독자 여러분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애독자 입니다.
필묵변혁 전시를 다녀와서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황창배, 송수남 두분 의 작품이 그 어느 작품과 견주어도 손색 없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황창배 선생님 작품은 샤갈의 삶이라는 작품도 생각나게 할 정도로 훌륭하다고 생각 들더라구요. 두 분의 필력 이 대단합니다.
황창배 선생님 작품 중에 곡고댁 이란 작품이 있는데 이번 전시에서 볼수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늘 좋은 작품 설명 감사 드립니다. 많은 공부가 되고 있습니다. 저의 미천한 미술 지식이 날로 발전을 하는 것 같습니다. 감사 드립니다.(이재설)

🔸지방에서는 보기 어려운 전시일것같아 기대가 됩니다 정보 고맙습니다.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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