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급변하는 시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책이 건넨 지혜와 위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23일 01시 40분


동아일보 선정, 올해의 책 10



북극 한파 같은 경기 침체, 삶을 옥죄는 고물가, 최악의 폭염…. 팍팍한 현실 때문일까요. 출판인, 학자 등 30명이 뽑은 ‘2023년 동아일보 올해의 책’엔 현실 문제를 다룬 책이 많았습니다. 집중력, 돈, 비혼처럼 삶에 밀착한 사안은 물론이고 자본주의, 생태, 환경, 기술에 대한 담론도 주목했죠. 소설과 에세이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경향도 있었습니다. 선정위원마다 3권씩 추천을 받아 그 가운데 상위 10권을 추려 소개합니다.


동아일보 문화부 출판학술팀》

올해의 책 선정위원 투표1위 도둑맞은 집중력

◇요한 하리 지음·김하현 옮김/464쪽·1만8800원·어크로스
스마트폰과 태블릿PC, TV에 집중력을 빼앗긴 세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멀티태스킹에 대한 신화를 부순 인문학서 ‘도둑맞은 집중력’이 각계 전문가들에게 6표를 받아 1위에 올랐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정치학·사회학을 전공하고, 2003년 ‘올해의 젊은 영국 기자상’, 2007년 국제앰네스티 ‘올해의 신문기자상’을 수상한 저널리스트가 썼다. 저자는 현대인의 집중력 부족을 개인의 의지 부족이 아닌 사회 시스템의 문제로 접근한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250명의 인터뷰를 통해 현대인은 집중력을 잃는 게 아니며, 거대 테크기업에 의해 도둑맞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출판인들은 집중력을 잃어버린 시대를 저격한 시의성을 높게 평가했다. 박상준 민음사 대표는 “시의적절한 문제 제기에 치밀하고 폭넓은 취재, 전문가의 호쾌한 통찰이 탄탄하게 전개된다. ‘도둑맞은 집중력’도 되찾아놓는 책”이라고 했다. 김효형 눌와 대표는 “소리 없이 겪던 집중력 위기를 시의적절하게 끄집어냈다. 문제를 발견하고 원인을 폭넓게 탐구한 것만으로도 빛난다”고 했다.

온라인 서점 예스24 이용자들이 투표로 선정한 ‘올해의 가장 사랑받은 책’, 교보문고 ‘연간 베스트셀러’ 인문 분야에서 각각 1위에 오르는 등 독자 반응이 좋은 점도 언급됐다. 황서현 휴머니스트 주간은 “독자들의 반응이 증명하듯,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관심이 모일 수밖에 없는 키워드를 정확히 포착해냈고 적중했다”고 했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이 시대의 가장 널리 퍼진 전염병, 즉 산만함에 대한 백신을 제공한다”고 했다.

문제의식을 사회구조로 넓힌 점도 높게 평가받았다. 안병현 교보문고 대표는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 경쟁을 요구하는 주변 환경 등 저자가 새롭게 파악한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롭다”고 했다.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우리 모두가 지금 이 문제로 고통받고 있음을 깨달으면서도 다행히 이 책에는 집중과 몰입이 된다는 사실에는 위안을 받는다”고 했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홍은주 옮김/768쪽·1만9500원·문학동네
“하루키 마니아로서 그의 신작이라는 것만으로도 추천한다.”(김기중 더숲 대표)

한국에서도 폭넓은 팬층을 보유한 일본 소설가가 6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이다. 30대 남자 주인공 ‘나’가 10대 시절에 글쓰기라는 취미를 공유했던 여자친구를 떠올린 뒤 ‘사방이 높은 벽에 둘러싸인, 아득히 먼 수수께끼의 도시’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누군가의 청춘, 누군가의 나이 듦을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체 불가능한 작가”(양은경 허블 편집주간)라는 추천이 꺼지지 않는 ‘하루키 신드롬’을 뒷받침한다.

세계 끝의 버섯

◇애나 로웬하웁트 칭 지음·노고운 옮김/544쪽·3만5000원·현실문화
“인류학 연구의 모범이 될 만한 책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직장과 공장에 속하지 않고 소나무가 베어진 산을 돌아다니며 일확천금이 될 만한 송이버섯을 찾아다니는 이들을 추적한다.”(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산림 산업, 송이버섯 채집인의 역사와 현재를 담았다. 채집, 임업, 균류학, DNA 연구까지 다양한 주제를 넘나든다. “송이버섯 나는 소나무 숲과 시골 장터를 다녀보고 싶다”(조재은 양철북 대표)는 말처럼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시각이 돋보인다.

이토록 굉장한 세계

◇에드 용 지음·양병찬 옮김/624쪽·2만9000원·어크로스
“동물의 세계를 동물의 관점에서 생생하게 체험하게 해준다. 동물이 바라본 세계는 우리가 일상을 경험하는 세계와는 확연히 다르며, 엄청나게 풍부하다.”(권은희 까치글방 편집팀장)

과학저널리스트가 동물들이 지닌 화려하고 장엄한 ‘감각의 제국’을 펼쳐놓았다. 앞다리에 있는 긴 냄새 센서로 길을 찾는 채찍거미, 열한 쌍의 더듬이가 돋아난 별 모양의 코를 지닌 별코두더지 등을 소개했다. “이 책을 읽으면 지구를 조금은 더 사랑하게 될 것”(표정훈 출판평론가)이란 말처럼 세계를 인식하는 시각을 확장한다.

편집자의 시간

◇김이구 지음/264쪽·1만5000원·나의시간
“편집자라는 존재에 대해, 편집의 사명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책의 본질을 새롭게 각인해줄 것이다.”(김태희 사계절출판사 총괄팀장)

1984년 창비에 입사한 후 30여 년간 수많은 작가의 책을 편집하다 2017년 세상을 떠난 편집자의 유고 에세이다. “오랜 시간 자신의 일에 묵묵히 복무해온 편집자의 기록이다. 일체의 화려함 없는 글이 책의 세계에 직업을 둔 우리의 본령을 깨닫게 한다”(이현화 혜화1117 대표)는 평가처럼 직업인의 사명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

◇기욤 피트롱 지음·양영란 옮김/364쪽·1만8500원·갈라파고스
“이 책을 읽지 않고서 환경 담론을 제대로 논할 수 있을까?”(박성열 사이드웨이 대표)

디지털 환경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행위가 막대한 양의 전기와 다른 자원을 소모하고 지구 환경은 그만큼 파괴된다고 강조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수없이 누르는 ‘좋아요’나 e메일 전송을 위해서는 복잡한 정보 처리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정보가 많아질수록 자원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디지털은 물질로 인한 오염이나 훼손으로부터 결백하다는 상식을 깬다”(주연선 은행나무 대표)는 말처럼 신선한 시각이 눈에 띈다.

권력과 진보

◇대런 아세모글루, 사이먼 존슨 지음·김승진 옮김/736쪽·3만2000원·생각의 힘
“기술이 많은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는 낙관주의를 통렬히 전복한다. 미래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와 관점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김형보 어크로스 대표)

기술 진보로 인한 풍요가 공동체보다 소수의 엘리트와 권력자들의 주머니를 불렸다는 걸 손꼽히는 경제학자들이 지적한다. “인공지능(AI)과 자동화 시대에 대처해야 할 길을 제시한다”(박성열 사이드웨이 대표)는 말처럼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세이노의 가르침

◇세이노 지음/736쪽·7200원·데이원
“아들에게 선물하는 책이다. 돈, 성공, 삶의 지혜 등 세상의 거의 모든 아버지가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거의 모든 이야기가 잘 정리돼 있다.”(주연선 은행나무 대표)

세상의 통념에 ‘세이, 노(Say, no)’ 하라는 의미로 세이노란 필명을 쓰는 작가가 삶의 태도에 대해 거침없이 직설적으로 조언한 자기계발서다. “재야에서 전설처럼 전해지던 고수의 인생 지침서다. 정가 7200원, 무료 전자책도 놀랍다”(고세규 김영사 대표)는 고백처럼 출판계에 충격을 선사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352쪽·1만6800원·문학동네
“소설가의 맑은 눈이 우리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섬세하게 묘사되는 인물들의 상실감과 어긋나는 관계가 읽는 가슴에 들어찬다.”(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관계의 시작과 부서짐을 섬세하게 그린 단편 7편을 모은 소설집이다. “낮고 작고 연약한 여자들의,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이웃의 목소리를 특유의 조곤조곤한 문장으로 들려준다”(주연선 은행나무 대표)는 평가처럼 작가만의 따뜻한 문체가 두드러진다.
에이징 솔로

◇김희경 지음/332쪽·1만6800원·동아시아
“혼자 사는 40, 50대 비혼 여성 19명의 솔직 담담한 삶의 이야기다. 우리의 현실, 시대의 단면이 개인의 삶을 통해 생생하게 펼쳐진다.”(표정훈 출판평론가)

‘이상한 정상 가족’(2017년·동아시아)을 통해 우리 사회 아동 인권과 가족 정책을 정면으로 들여다보며 문제점을 파헤쳤던 저자가 중년 비혼 여성에게 돋보기를 들이댔다. “전직 저널리스트답게 다양한 인터뷰와 취재를 통해 비혼 중년의 삶에 대해 분석했다. 혼자 나이 들어가는 모든 이에게 추천한다”(김기중 더숲 대표)는 말처럼 비혼 여성이란 시의적절한 주제를 치밀하게 파고들었다.

올해의 책 선정위원(30명·가나다순)
강성민(글항아리 대표) 강인욱(경희대 사학과 교수) 고세규(김영사 대표) 권은희(까치글방 편집팀장) 김기중(더숲 대표) 김태희(사계절출판사 총괄팀장) 김형보(어크로스 대표) 김효형(눌와 대표) 박상준(민음사 대표) 박성열(사이드웨이 대표) 박윤우(부키 대표) 박정재(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서현(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안대회(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안병현(교보문고 대표) 안지미(알마 대표) 양은경(허블 편집주간) 이구용(KL매니지먼트 대표) 이기진(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치억(공주대 윤리교육과 교수) 이현화(혜화1117 대표) 장은수(출판평론가)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정재찬(한양대 국어교육과 교수) 정지혜(업커밍스토리즈 기획실장) 조성웅(유유출판사 대표) 조재은(양철북 대표) 주연선(은행나무 대표) 표정훈(출판평론가) 황서현(휴머니스트 주간)
#올해의 책#동아일보 선정#급변하는 시대#책이 건넨 지혜#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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