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아침 개그맨 전유성 씨(74·사진)에게 후배가 전화해 “형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했다. 전 씨는 답했다. “지금 먹고 있어.” 그는 실제로 그날 아침 복국을 먹었다.
최근 출간된 전 씨의 산문집 ‘지구에 처음 온 사람처럼’(허클베리북스)에 나오는 얘기다.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19일 만난 그는 머릿속 유머를 담은 책처럼 ‘쓸데없는 잡담’을 늘어놨다. “언제 추수하는 줄 알아요? ‘쌀쌀’할 때….”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오는 ‘아재 개그’에 기자와의 44세 나이 차가 무색하게 단숨에 분위기가 풀어졌다.
“이 책은 ‘쓸데없는 잡담집’이에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들 하는데, 내 생각은 달라요. 정작 우리를 위로하는 말들은 그런 말들이거든요. 심심할 때 지루함을 달래주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피식 한 번 웃을 힘을 주잖아요.”
산문집에서는 기발한 발상도 엿볼 수 있다. ‘고속도로를 타고 남원 시내에 나가는데 터널 구멍이 돼지 콧구멍처럼 보이는 거다. 지리산이 흑돼지가 맛있으니 터널을 흑돼지 모양으로 만들어 그 구멍으로 자동차들이 들어가게 하면 어떨까?(‘돼지 코 터널’)
희극인, 작가, MC, 공연 기획자, 교수…. 54년 차 현역 코미디언인 그는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그는 “모두 한 뿌리에서 나온 다른 줄기들”이라며 “나의 뿌리는 희극”이라고 했다. “희극이라는 땅에 뿌리를 내리지 않았다면 50년 넘게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나는 일생을 희극적으로 살기 위해서 살아왔어요.”
‘희극적으로 산다’는 건 뭘까. 전 씨는 “지구에 처음 온 사람처럼 사는 것”, “남들이 당연하다 여기는 것에 물음표를 붙이는 것”이라고 했다. 서울 토박이인 그가 2009년 경북 청도군으로 이사 간 이유도 “다르게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살기로 결심한 그는 그해 7월 청도군과 손잡고 반려동물과 함께 즐기는 ‘개나소나 콘서트’를 기획했다. 그는 “청도는 소싸움의 고장으로 불리는데 사람들을 위한 축제만 있지, 정작 동물을 위한 공연은 없었다. 관점을 바꿔 동물과 같이 즐기는 공연을 떠올렸다”고 했다.
2011년엔 청도군 풍각면에 ‘코미디 철가방 극장’을 열었다. 그는 “철가방에 짜장면을 넣어 배달해주는 중국집처럼 코미디를 철가방에 실어 지방에 배달하는 상상에서 출발한 일”이라고 했다. 2018년 그가 청도군을 떠나 전북 남원시로 거처를 옮기기 전까지 65석 규모 공연은 거의 매회 매진됐다. 7년간 누적 관람객이 20만 명에 달했다. 그가 ‘아이들이 떠들어도 화내지 않는 음악회’로 구상한 ‘얌모얌모콘서트’ 역시 2001년부터 2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그는 “폐광 앞에서 펼치는 ‘광물을 위한 음악회’를 구상 중”이라고 했다. “평생 자기 속을 다 내준 광산에게 ‘그동안 고마웠다’고 말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는 것. 늘 색다른 공연을 상상하는 이유는 “공연은 누구나 봐야 한다”는 그의 철학 때문이다. “지방 사람도, 개도, 고양이도, 우는 아이도. 누구에게나 웃음이 필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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