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소신 사라지고 정보는 과잉… 옥석, 가리고 계십니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30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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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의견 맹목적으로 따르는 현상
하루 종일 SNS 접하는 현대인
◇동조하기/캐스 R 선스타인 지음·고기탁 옮김/256쪽·1만8000원·열린책들
◇TMI: 정보가 너무 많아서/캐스 R 선스타인 지음·고기탁 옮김/360쪽·2만 원·열린책들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올해 유세 중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 캐스 R 선스타인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6년 당선된 이유로 동조 현상을 꼽는다. 선스타인은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 국가의 제도는 동조자들에게 반대자들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한다”고 말한다. 동아일보DB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올해 유세 중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 캐스 R 선스타인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6년 당선된 이유로 동조 현상을 꼽는다. 선스타인은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 국가의 제도는 동조자들에게 반대자들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한다”고 말한다. 동아일보DB
“임금님, 옷이 정말 멋집니다.”

덴마크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1805∼1875)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신하들은 임금에게 이렇게 말한다. 재봉사가 ‘어리석은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옷’을 임금에게 바치자 신하들은 옷이 안 보이는데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아이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소리친 뒤에야 진실이 드러난다. 개인이 집단에서 다른 의견을 제시하거나 행동하지 못한 채 쉽게 동조하고 그로 인해 집단적 무지에 이르는 상황을 풍자한 이야기다.

행동경제학적 관점에서 사람들의 선택을 유도하는 개입을 소개한 베스트셀러 ‘넛지’(2009년·리더스북)의 공저자인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펴낸 책 2권이 연달아 국내 출간됐다. 그는 행동경제학과 공공정책을 결합한 연구로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정부에서 정책 고문으로 활동했다. 두 책은 ‘정보 부족’과 ‘정보 과잉’이 가져오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다룬다.


‘동조하기’는 정보 부족이 불러온 문제를 지적한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정치, 경제, 법률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해 우리는 제대로 된 정보를 취득하기 힘들다. 그럴 때 이른바 ‘전문가’라 불리는 이들이 강한 주장을 펼치면 이에 쉽게 휩쓸린다. 동조가 벌어지는 데엔 남들과 다른 의견을 내면 유별난 사람으로 비칠까 걱정하는 탓도 있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이런 동조 현상은 커지고 있다.

문제는 동조가 집단적이고 급진적으로 일어나면 ‘폭포 현상’처럼 막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나치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당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대표적 폭포 현상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온라인에서 허위 조작 정보가 들불처럼 번지고, 음원 사이트에서 다운로드 횟수가 많은 노래가 계속 선택되는 것도 폭포 현상의 대표적 사례다.

그는 타인의 의견에 따라 자신의 의견을 자주 바꾸는 이들이 늘어나면 사회가 ‘다원적 무지’에 빠진다고 우려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이 남들과 다를지 자체 검열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견해를 밝혔을 때 뒤따라올 반대에 직면하고 싶지 않아서 침묵한다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그는 반대 목소리나 내부 고발자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이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서로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를 고안한다면 동조 현상을 막아낼 수 있다고 제언한다.


반면 정보가 너무 많아도 문제다. ‘TMI: 정보가 너무 많아서’는 정보 과잉의 문제를 다뤘다.

현대인들은 종일 스마트폰, TV 등 다양한 기기를 통해 수많은 SNS에서 쏟아져 나오는 정보에 둘러싸여 있다. 물론 정지 표지판, 청구서 납부 기한 같은 정보는 이롭다. 하지만 정보를 취득하는 데 애쓰다 보면 사실 정보를 소화하진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꼭 이런 정보까지 알아야 하나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해외여행 계획이 없는 이에게 세계의 날씨는 불필요한 정보다. 영화관에서 팝콘을 먹는 모두가 팝콘의 열량을 알고 싶어 하진 않는다. 결국 지나치게 많은 정보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어쩔 땐 “‘모르는 게 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저자가 정부와 기업의 정보 공개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꼭 필요한 정보를 친절하게 공개해야 정보가 제대로 활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넛지’에서 강조했듯 사람들이 적절한 선택을 내리도록 부드럽게 이끄는 건 리더들의 몫이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정보 공개는 사람들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해서 그들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개입이며, 일종의 넛지다.”

#소신#정보 과잉#동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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